미운 우리 영재새끼(초등 편)-
네 번째 이야기

책에 대한 다른 추억을 가진 남편

by 위안테스

TV예찬까지 읽은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TV 중독,

그녀는 독서인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거를 기준으로 정반대이다.


나는 온갖 책을 끼고 살았고,

그녀는 교과서를 끼고 살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맞벌이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

삼대독자였던 내가 TV 소리로

위안을 삼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켜져 있는 TV만 본건 아니다.


TV 소리는 나 혼자 집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했고,

TV 앞에 엎드려, 누워, 벽에 기대어 책을 봤다.


용돈의 대부분을 만화방에 탕진하였고,

당구, 골프, 배드민턴 등 손으로 하는 운동 이외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거의 모든 스포츠 룰을 만화를 통해 배웠다.


각종 의학 만화

다양한 직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를 통해

잡학 다식한 배경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이란 책의 내용을

나는 무수한 만화를 섭렵하며 익혔다.

그렇지만, 만화를 보면서도 책을 놓지는 않았다.


독서를 통해

활자의 횡간에 숨어 있는 의미와 이미지를

상상하는 재미는 만화를 통해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한번 본 만화를 또 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독서만은 다르다.


좋아하는 책은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

이유는 간명해 보인다.

그때의 지식으로 한계가 있던 상상이

지식이 쌓여가며 구체화되고,

그때는 마음과 인격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던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심정이

나의 성숙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군대 시절...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병장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복학준비를 위한 공부나 자격증을 따는 부류,

갑자기 복근을 만들겠다면

운동에 매진하는 육체파가 있다.

나는 특이한 부류였다. 굳이 분류하자면 독서파...

굳이 딱딱한 몸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복학해서 공부하면 될 임용고시(교사임용시험)를

미리 공부할 생각은 1도 없었다.

그러니 남아도는 무료한 시간...

특히 나는 최전방 휴전선을 지키는 부대에

있어하는 일이 철조망 너머 북한땅을 바라보는

부대에 있었고,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반복을 책을 읽으면 버텨냈다.

각 소대별로 책이 200권 정도 비치되어 있었다.

원래 군부대에 있던 책도 있었고,

군인들이 휴가 나가서 가지고 온 책을

두고 제대하면서 중대 전체에 비치된 책이 1000권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책은 마음만 먹으면

1~2시간에 읽는 편이라

하루에 몇 권씩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하니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읽었던 책들과

이렇게 읽은 책의 내용이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글을 쓰거나

사회를 보거나

발표를 할 때 사람의 감성적인 부분을 짚어낼 줄 안다거나

여러 가지 분야를 조합하거나

어떤 일이나 행사를 기획할 때

아이디어와 응용으로 발현된 적이 많다.


상상과 공상과 창의력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상상력을 키우는 매체 중

단연 으뜸은 독서다.

여기서 독서란 활자로 된 책을 읽는 것이다.


활자로 된 책은 장면, 장면을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심정을

끊임없이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몰입이 되고 빠져서 읽게 된다.


만화는 상상했던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해 주니 상상이 구체화되는 효과가 있다.


영상은 결말과 전개에 대한 추론과 상상을 제외하고

이미지를 상상할 여지가 없는 매체다.


그러니 영상에 익숙해진 아이는

만화가, 특히 소설이 재미있기가 쉽지 않다.


독서의 장점은 활자로 되어 있는 모든 상황과

감정과 이미지를 상상해야 한다.

그리고 긴 호흡이 필요하다.

아무리 짧은 책도 결말을 보기 위해서는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유튜브 영상이 한 시간, 30십 분, 15분...

사람들의 인내력에 점점 들어 들더니

이내 5분짜리 콘텐츠가 가득해졌다.

그것도 길다고 느꼈는지

최근엔 1분 이내의 쇼츠가 유행이다.


만화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영화, 유튜브로 갈 수는 있어도...

쇼츠와 유튜브에서 독서로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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