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우리 영재새끼(초등 편)-
다섯 번째 이야기

책에 다른 추억을 가진 아내

by 위안테스

책에 대해 어떤 추억을 가졌길래

TV 대신 책을 사자고 했을까.

그녀는 스스로의 학창 시절을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매번 반장을 도맡아 했고,

친구들과 다툼이 전혀 없었고,

초등학교부터 행사 사회를 도맡아 했고,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딱 하나 하지 않았던 것이 독서...

대학입시가 전면 수능으로 개편되고,

수시가 생기기 전까지

오직 수능성적으로 대학을 가는 시대가 되었다.

고등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학교 생활이 우수해도,

수능을 망치면 입시에 좌절을 겪어야 하는 시대였다.


시대는 돌고 돌아

현재는 수시(학교 내신과 학교생활)가

입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녀는 수능에서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 이유를

독서에서 찾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긴 지문을 읽고

5개의 선택지 중에 정답을 찾아내는 것은

훈련이 필요하고,

독서야 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그리고 학교 내신이 본인보다 높지 않았음에도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았던 친구들의

공통점을 나름의 방법으로 유추해 본 결과

만화책, 소설책 등 항상 무언인가를

열심히 읽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일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도

편식이 심했던 내신 성적에 비해

수능점수가 잘 나온 편이다.


중학교 때 수포자(수학을 포기)의 길을 걸었음에도

수능 2세대의 덕을 본 케이스이다.

1993년 수능이 처음 시작 되던 해는

두 번의 수능 시험이 있었다.

하지만 난이도 조정에 실패하면서

시험의 유불리에 큰 편차가 나타났다.

결국 1994부터 수능이 11월에 한 번만 치르게 되었다.

당시 수능은 국어 60, 수학 40, 사탐+과탐 전체영역 60,

영어 40, 총 200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서의 영향 덕분인지

수능 국어는 크게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60점 만점을 받았다.

참패에 가까운 수학성적에도,

희망하는 대학을 무난하게 합격을 했다.

당시에 대학들이 본고사 폐지와 수능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부분 논술시험을 봤다.

논술시험도 결국 국어영역의 범주이고,

지금으로 치면 비문학 지문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쓰는 형태로 큰 어려움 없이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결국, 아내는 자신이 새로운 입시제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를 독서의 부재에서 찾았다.

그래서 한국외대에서 석사를 하면서,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본인의 자녀에게는

똑같은 실패를 안겨주지 않겠다고...

영어도 한자도, 기타 학문도 언어영역이

탄탄하지 않으면 큰 성과를 낼 수 없다고.


이때 이렇게 결심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TV를 처음부터 갖지 않고,

언제든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겠다고.


말은 쉽지만...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것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 집은 첫 아이가 태어나고

13년 동안 TV가 없었다.

4년 전부터 유선기능이 없는,

핸드폰 미러링용 모니터가 있을 뿐이다.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나 콘텐츠는 주말을 이용해

핸드폰 OTT(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등)를

모니터에 미러링을 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

TV에 대한 갈증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책만 읽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강과 필요한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는

인터넷 환경이 필수고,

아이가 꼭 보라는 것만 보겠는가.


우리 아이는 TV 스타(가수, 탤런트, 연예인)는

거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데,

도티, 허팝 등 유튜버 스타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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