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심연으로 떠나는 여행
부디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길.
"누구세요"라고
당신께서 말한 날.
내 세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느 순간
어떤 최악의 순간에도
언제나 나의 울타리가 되어줄 거라
착각했나 봅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다시 어려진다는 말인가 봅니다.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고
잠시라도 안 보이면
두리번거리며 찾고
불안해하는 것이
어린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럴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깄잖아
엄마 어디 안 가
천하에 둘 도 없는
내 새끼 두고
어딜 가겠어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내가 그럴 때마다
당신께서는
그렇게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셨는데,
당신께 나는 어떤 얼굴인가요?
괜찮아. 엄마.
아들 어디 안 가하는
내 표정이 어떤가요.
당신처럼 하려는데,
당신처럼 이 안됩니다.
못 난 자식의 얼굴은
지쳐있지는 않나요.
새로운 기억이 더해지지 않으니
당신과 여행을 떠나도
함께 쌓여가는 추억이
생겨나질 않습니다.
당신께서
언젠가 떠났을 때
나 혼자 기억하는 추억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기억의 심연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현재보다 과거의 시간으로
더 또렷해지는
기억 속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오늘은
당신의 오십 살
내일은 사십 살
그다음은 내가 그렇게 말썽 피우던
그때로 여행을 떠나요
그 여행 중 당신께서
이놈 자식 그때 속상했어하시며
내 등짝 한번 후려치셨으면 합니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으려면
그 기억이 끝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함께 다녔어야 했는데,
그때 함께 보냈어야 하는데,
기억의 여행을 떠나고 떠나도
또 갈 곳이 남아있게 했어야 하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다음에
다음에
그랬나 모릅니다.
내가 태어나
당신의 느낌을 기억하고,
감정을 느끼고,
당신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고,
엄마라는 소리를 처음 하고,
사랑해라는 말을 배워나가듯,
당신께서 내 이름을 잊고,
내 얼굴과 목소리를 잊고,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태어난 순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심은
당신의 부모가 되어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주시려 하시는 건지요.
내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를 잊어도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건,
본능은
나를 기억하고 있음인가요
치매로 기억을 잃어
내 딸로
내게 온 당신.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아들이어서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