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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안테스 Feb 14. 2024

기억의 심연으로 떠나는 여행

부디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길.

"누구세요"라고

당신께서 말한 날.

내 세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느 순간

어떤 최악의 순간에도

언제나 나의 울타리가 되어줄 거라

착각했나 봅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다시 어려진다는 말인가 봅니다.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고

잠시라도 안 보이면

두리번거리며 찾고

불안해하는 것이

어린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럴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깄잖아

엄마 어디 안 가

천하에 둘 도 없는

내 새끼 두고

어딜 가겠어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내가 그럴 때마다

당신께서는

그렇게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셨는데,

당신께 나는 어떤 얼굴인가요?

괜찮아. 엄마.

아들 어디 안 가하는

내 표정이 어떤가요.

당신처럼 하려는데,

당신처럼 이 안됩니다.

못 난 자식의 얼굴은

지쳐있지는 않나요.


새로운 기억이 더해지지 않으니

당신과 여행을 떠나도

함께 쌓여가는 추억이

생겨나질 않습니다.


당신께서

언젠가 떠났을 때

나 혼자 기억하는 추억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기억의 심연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현재보다 과거의 시간으로

더 또렷해지는

기억 속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오늘은

당신의 오십 살

내일은 사십 살

그다음은 내가 그렇게 말썽 피우던

그때로 여행을 떠나요

그 여행 중 당신께서

이놈 자식 그때 속상했어하시며

내 등짝 한번 후려치셨으면 합니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으려면

그 기억이 끝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함께 다녔어야 했는데,

그때 함께 보냈어야 하는데,

기억의 여행을 떠나고 떠나도

또 갈 곳이 남아있게 했어야 하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다음에

다음에

그랬나 모릅니다.


내가 태어나

당신의 느낌을 기억하고,

감정을 느끼고,

당신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고,

엄마라는 소리를 처음 하고,

사랑해라는 말을 배워나가듯,

당신께서 내 이름을 잊고,

내 얼굴과 목소리를 잊고,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태어난 순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심은

당신의 부모가 되어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주시려 하시는 건지요.


내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를 잊어도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건,

본능은

나를 기억하고 있음인가요


치매로 기억을 잃어

내 딸로

내게 온 당신.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아들이어서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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