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 아들! 또 어디다 정신을 빼놓고 있어? 오늘 학교 일찍 가야 하는 날이라고 했잖아!"
현관문 앞에서 멍하니 서있던 예준이는 아버지의 호통에 놀라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에요. 아빠. 준비해서 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서 그랬어요"
아버지는 한 소리 하시려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다, 이내 내가 먹은 아침상을 치우는
일을 하시기 시작했다. 출근길이 더 지체되면 지각을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이내 상을 치우는 손길이 빨라진다.
우산함에서 하얀색 우산을 하나 꺼내 들고,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린다.
"예준아... 오늘 어떤 날인지 알지? 오늘은 학교 끝나고 어디 가지 말고 일찍 와라"
"네, 알겠어요"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아침에 비가 오고 있어, 우산함을 열었는데 하얀색 우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에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비가 오면 그렇게 온 동네를 걸어 다니다 옷이 흠뻑 젖어 들어오기 일쑤였다.
"예준! 개구리도 아니고, 무슨 애가 비만 왔다 하면 그렇게 좋아하니?
자! 이거 받아. 우산이 꼭 헬멧처럼 생겼지? 엄마가 특별히 주문했다.
헬멧처럼 생겨서 옆 부분은 어깨까지 쏙 들어가고 앞부분은 옆 보다 짧아서
앞은 잘 보일 거야. 이제 비 오는 날 걸어 다녀도 어깨가 다 젖어서 들어오지는 않겠지?"
"와~ 엄마.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런 우산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내 특별히 우리 아들을 위해 열심히 인터넷 검색 좀 했지."
우산함을 열었는데, 하필 그 우산이 보였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떠 올라,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고
결국 아버지한테 한소리를 들은 것이다.
학교에서도 집중이 안된다.
하루종일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렇게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
결국 담임선생님께 불려 가서 잔소리를 듣고 말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갈수록 마음이 진정이 안된다.
두려운 건지, 설레는 건지... 알 수 없는 마음에 하루 종일 혼란스럽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빠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신다.
"우리 예준이 왔구나... 평소에 오는 시간보다 일찍 온 거 보니
오늘은 어디 들렀다가 오지 않고 바로 왔나 보구나?"
"아빠는 내가 뭐 매일 늦은 것처럼...., 오늘 같은 날 늦으면 안 되잖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빠가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신다.
"그래, 기다릴 테니. 어서 가자꾸나. 저기 네가 갈아입을 옷 꺼내놨으니,
어서 갈아입어. 오랜만에 보는 건데 이쁘게 하고 가야지"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가지고 조용히 내 방으로 가서 갈아입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참 경치가 좋다.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아 그런지 시원스럽게 차가 달린다.
올림픽 대로를 달리 던 차가 춘천방향으로 고속화 도로를 타자 더욱 속도를 낸다.
1년 만이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양평 000 공원... 목적지의 정문이 보인다.
정문을 통과해 잘 꾸며진 공원을 한참이나 오르고서야 아빠는 한 건물 앞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예준아... 안 막히고 왔다. 그렇지. 엄마 기다리겠다. 얼른 들어가자"
"네, 아빠. 그런데 저 잠시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그래. 일층에 화장실이 있었던 것 같구나. 같이 갈까?"
"아니에요. 저도 어디 있는지 알아요. 금방 갔다 올 테니 아빠 먼저 가있으세요"
아빠가 물 끄러니 내 눈을 쳐다본다.
이내 알겠다는 듯이 늦지 말라는 당부를 하시고 돌아서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향해 걸어가신다.
1층 화장실 거울을 보며 심호흡을 한다.
'가장 멋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자. 할 수 있지. 절대로 울면 안 돼. 알았지.
그럼 엄마도, 아빠도 속상하실 거야'
거울 속의 나를 보면 다짐에 또 다짐을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저 쪽 끝에 아빠가 서 계신다.
조심히 아빠 뒤로 가서 손을 잡는다.
"아빠. 엄마는 그대로네. 그렇지. 여전히 이쁘고..."
"그러네. 엄마 미모는 여전하구나. 오늘 예준이 본다고... 그런지.
더 이쁜 것 같구나"
아빠와 나는 케이스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사진을 말없이 쳐다본다.
오늘은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급하게 수술날짜가 잡히고 나한테는 해외 연수를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근무하시던 대학교에서 교환연구원으로 선발되어서 해외로 3개월간
연수를 가신다고 말이다.
"예준아... 그만 화 풀면 안 되겠니.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엄마가 꼭 가야 한데.
나도 우리 준이 때문에 안 가려고 했는데, 마침 엄마 대신에 가려고 했던 분이
다치셔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단다.
딱 3개월만 참으면 되니까... 응... 이번 한 번만 예준이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한동안 시위하듯 엄마랑 말을 안 했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예" "아니요"라고만 했다가, 아빠한테 제대로 혼이 난 적도 있다.
"엄마... 그러면 학급발표회 전에는 꼭 돌아오는 거지?
담임 선생님이 내가 쓴 글이 최종 선정이 돼서, 학부모 참관일에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하라고 하셨단 말이야..."
"그럼... 엄마가 꼭 그전에는 돌아올게. 우리 예준이 이제 마음 좀 풀렸어?"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헝클어트린다.
"됐어... 어차피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잖아.
엄마한테 중요한 일인 거잖아... 나 만큼..."
"말도 안 되지. 세상에 우리 예준이만큼 중요한 일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지.
우리 예준이...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는... 음 안 해도 되니까,
절대로 절대로 아프면 안 된다. 알았지"
이내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뭐 어린앤가... 걱정 마. 잘 먹고. 게임도 조금만 하고, 공부도 알아서 할 테니.
엄마야 말로 아프지 말고. 거긴 간호해 줄 사람도 없잖아"
"ㅎㅎ 우린 예준이 장가가도 되겠는데. 다 컸네. 엄마 안심하고 갖다와도 되겠네"
"꼭이야. 무조건 학부모 참관일에는 돌아오는 거야.
엄마 오면 아빠랑 외할머니랑 다 같이 오는 거야. 알았지"
"그럼. 약속할게. 우리 다 같이 예준이 발표하는 거 들으러 가야지"
그렇게 돌아서는 엄마에게 외친다.
"뭐... 굳이 선물을 사 온다면 받아는 줄게~"
그렇게 엄마는 해외로 연수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