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문뜨문이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필사를 했습니다. 이십 년 가까이 되어 가는 '필사 역사'를 가벼이 다뤄 보려 합니다.
1. 고교 시절 (2009~2011)
불안해 할 필요는 없어
네가 날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
나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만큼
나의 마음도
널 생각하거든.
너와 나 둘뿐인
그런 '우리'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 있지만
서로의 손을 콱 잡은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해….
이 손은
절대 놓지 않을게.
- 샐리 S 디지툰
여러 번 옮겨 적은 글입니다. 필사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좋아서 옮겨 적었던' 시절이죠. 아쉽지만 고등학생 때 남긴 필사 기록은 이뿐입니다. 이제는 안 그러지만, 이땐 부끄러워서 노트를 버렸거든요.
2. 군 시절 (2013~2015)
"살아 있으라. 부디 죽을 때까지는 죽지 마라."
그저 오늘도 길고양이들의 안녕을 빌어본다.
- 잡지 PAPER 中
아마도 100권 넘게 책을 읽었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라 읽고. 버티기 위해서 읽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수첩에는 일기와 필사와 To Do List 같은 게 뒤섞였습니다. 지금은 들여다보지 않지만, 벌써 12~10년 가까이 지난 흔적이지만, 나름의 추억이 깃들어 보관하는 중입니다.
3-1. 클립보드 #필사1 (2013~2016)
작가는 다른 사람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 토마스 만
어쩐지 클립보드에 꽂혔습니다. A4 종이에 써서 클립보드에 보관하는 방식이죠. 전역한 직후라서 가능했겠지만, 수첩 13개에 있는 모든 글을 훑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고 싶은 글만 옮겨 적었습니다. 크게 나누면 에세이와 필사이죠. 그렇게 '필사 클립보드'에 종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3-2. 클립보드 #필사2 (2016~2017)
네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문장이다
- 이훤, 욕심
이 클립보드에도 마찬가지로 100장쯤 있습니다. 한 면에만 썼으니 100쪽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합니다.
3-3. 클립보드 #필사3 (2017~2018)
3-4. 클립보드 #가사 (2015~2019)
옮겨 적은 가사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타블로, <Airbag>, <집>
에픽하이, <Wordkill>, <낙화>, <선물> <Girl Rock>, <말로맨>, <Slow Motion>, <빈차>, <Breathe>
김진표, <그림자놀이>
패닉,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스윗 소로우,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최정철, <초심으로>
거북이, <비행기>
이그니토, <life>
Heritage, <Starlight>
비바소울, <Cry>
처진 달팽이, <말하는 대로>
'가사를 쓰듯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서인지, 그저 마음에 담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래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쓰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4. 영화 <괴물> 시나리오 필사 (2015)
필사를 하며 영화 감상을 병행해서 했다. 옮겨 적는 행위를 통해서 얻어진 많은 생각들이 단순하게 ‘본다’라는 개념 위에 덧씌어졌다. 감정도, 생각도, 몰입도, 그 깊이가 훨씬 깊어졌고 영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 2015.08.06에 쓴 글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강두. 현서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달라진 계절, 새까만 머리칼, 사랑을 줄 대상.
하지만 현서만은 변함없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새하얀 눈과 홀로 불빛을 켠 채 남아 있는 매점.
그 안 곳곳에 남아 있는 현서의 사진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강두.
이 모든 것들이 더해져 현서에 대한 빈자리의 크기를 나타낸다.
묵묵히 담아 두고 있기에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현서의 자리에는 이제 세주가 들어앉아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여 강두는 아빠가, 세주는 아들이 됐다.
세주를 볼 때마다 현서에 대한 기억이 그림자처럼 따라올까?
둘이서 밥을 먹는 장면과 함께 끝나는 영화.
많은 말을 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들이 생각난다.
일상에서 어긋났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모습이,
그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화로운 모습이 짙은 여운과 함께 먹먹함을 남긴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조금씩 망가져 버린 것 같은 두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좋아질 수 있을까.
- 2015.08.14에 쓴 글
새벽에 일어나서 막노동을 하고 집에 와서 시나리오를 필사했던 시기입니다. 이때 영화를 병행해서 봤습니다. 옮겨 적은 해당하는 부분만 봤던 거죠. 그러면서 시나리오와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적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블로그엔가 메모장에 필사하며 느낀 점을 적기도 했습니다.
5. 독서 노트 (2016~2018)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쓰기의 말들》 p.11
삶을 떠난 빈 글을 경계하게 되었다.
《쓰기의 말들》 p.15
옮겨 적은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신정철, 《메모 습관의 힘》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웨인 다이어, 《행복한 이기주의자》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고영성·신영준, 《완벽한 공부법》
은유, 《쓰기의 말들》
저도 다른 사람들 다(?) 하는 독서 노트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띄엄띄엄 쓰다가 결국 관뒀지만요. 형식적일 뿐 '정말 내게 도움이 되는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아니었습니다. 더 단순하고 편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인스타그램: anda.h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