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다듬은 머리카락

2024년 6~9월의 기록

by 안다훈



2023년 10월 26일.

출근하자마자 백혈병이 의심된다며 바로 응급실로 가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중간에 한 번 퇴원한 이 주일쯤을 제외하고는 2024년 4월 3일까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암이요? 제가요?’는 혈액암(급성 골수 백혈병) 환자로서 쓰고 기록한 글을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1화와 2화는 시기별로 정리한 기록을 다듬은 글입니다.

1화는 2023년 11월에 기록한 내용이, 2화는 2024년 6월~9월에 기록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기록이 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보여 드리고 싶은 글 2편만 실험적으로 공개합니다.








2024.06.14.금 (퇴원 D+72)


- 외래 진료 #12

- 골수 검사


체념하고 긴장을 덜면 골수 검사도 받을 만하다. 마취 주사를 맞기 직전이 제일 긴장되지만, 그 순간만 넘기면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어차피 '아는 느낌'이다. 골반을 세게 누를 때마다 '어유, 세게도 누르시네' 하다 보면 끝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억!"이다. 저번까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양팔을 베고 엎드렸다. 이번엔 이 자세로 있다가 양팔을 늘어트린 채 몸에 힘을 빼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선 건지 걱정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간호사 선생님이 내 팔을 건드리며 괜찮으시냐고 물어보셨다. 여러 번 해 보니 받을 만하네요라고 말씀드렸다.





2024.06.26.수 (퇴원 D+84)


- 외래 진료 #13


#메모

· (오른쪽 허벅지 수술 부위) 검은색 점과 함께 움푹 파임. 내려다보면 잘 안 보이는데 거울로 보면 티가 많이 난다.

· (오른쪽 허벅지 수술 부위) 눈에 띄게 부어서 왼쪽 허벅지와 차이 나는 게 보일 정도다.

· (오른쪽 허벅지 수술 부위) 지난주 토요일(06.22)에 폼 롤러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통증이 확 줄고 호전된 것 같다.

· 히크만 카테터 시술 부위에 문제가 없는지 조금 신경 쓰인다.

· 가슴 쪽에 빨간색으로 점점이 뭐가 났다.





2024.07.16.화 (퇴원 D+104)


- 외래 진료 #15


#메모

· 퇴원하고 나서 몸 상태가 가장 안 좋은 것 같다. 앉아서 책 읽기 어려울 정도고 운전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 가만히 있어도 피곤하고 힘들다.

· 여전히 얼굴이 간지럽다.





2024.07.26,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았습니다.





2024.08.09.금 (퇴원 D+128)


- 외래 진료 #17


#메모

· 손톱이 많이 상했는데 가벼운 후유증인지 궁금하다.

· 양쪽 귀 위 피부에 오돌토돌하게 뭐가 났다.





2024.08.16.금 (퇴원 D+135)


#403번째 꿈 일기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알게 된 간호사 선생님과 우연히 만났다. 지금은 육아 휴직을 하시는. 궂은일도 티 안 내고 하시며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던. 고마웠다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때 감사했다고 말씀드리니 웃으며 아니라고, 괜찮다고 대답하신다. 바쁘신 와중에 마주친 상황이라 말을 더 이어 갈 수 없었다.





2024.08.30.금 (퇴원 D+149)


- 외래 진료 #18


#메모

· 열흘인가 일주일쯤 전에, 자려고 할 때 가슴에 강한 통증이 십 분 넘게 느껴졌다. 통증은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했고 상황을 지켜보다 보니 괜찮아져서 응급실까진 가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이후에도, 통증은 없었다.

· 눈썹 위쪽, 이마가 많이 가렵고 머리와 얼굴도 종일 가렵다. 팔도 가렵다. 크림을 바르긴 하는데, 사월부터 쭉 바르던 거라 상관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얼굴이랑 몸에 뭐가 많이 났다. 모기 물린 것처럼 곳곳에 조금씩 부어오른 자국이 있다.

· 목, 턱, 가슴 위쪽, 배, 옆구리, 등에 뭐가 났다.

· 면역 억제제를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구월?





2024.08.30.금 (퇴원 D+149)


- 생착 여부 확인하는 날까지 D-22


다음 달에 외래 진료 가면 생착 여부를 검사한다고 한다. 이상 없기를 바란 적이 세 번 있었다. 일 차 관해와 이 차 관해 그리고 조혈모 세포 이식을 진행할 때. 림프샘이 부어서 난리 나고 수술할 때는 그냥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히크만 카테터를 제거하니 사람답게 사는 듯했고 퇴원 후 석 달 지나서 골수 검사를 할 때도 익숙하게 받고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생착 여부는 늘 하던 채혈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잘됐으면 좋겠다. 안 됐을 때는 생각 안 하는 게 낫겠지. 안 그래도 파문이 끊이지 않는 마음에 나까지 돌을 던질 필요는 없으니. 완전 관해됐고 조혈모 세포도 백 퍼센트 일치했으니 괜찮겠지. 외래 진료 열여덟 번 가는 동안 큰 문제없었으니. 여태 이상 없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겠지.





2024.09.16.월 (퇴원 D+166)


어제는 거의 일 년 만에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렸읍니다. 오늘은 퇴원하고 나서 처음으로 미용실에 다녀왔읍니다. 가기 전에는 솔직히 이게 무슨 소용인가, 가나 마나 아닌가, 모자 쓰고 잘라도 될 정도가 아닌가, 어차피 모자 쓰고 다닐 건데 하는 생각들로 회의적이었지만 역시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눈을 감았다 뜬 순간 감격했읍니다. 이십 대 초반에 군대에서 짧게 잘랐을 때보다 조금(보다는 많이) 짧은 느낌이었읍니다. 안 그래도 짧게 유지했기에 그 시절과 약간이지만 겹쳐 보였읍니다. 먹먹하고 어쩌면 울컥했는지도 모릅니다. 기분이 좋아졌읍니다. 머리카락을 감고 나서 마무리를 해 주셨는데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모자를 벗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앞으로 지저분해졌다 싶으면 참지 말고 와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읍니다. 다른 데보다 저렴한 만 팔천 원을 치르고 잘랐지만, 삼만 원을 주고 잘랐어도 불만 없이 만족스러웠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동안 기분이 좋았읍니다.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얌체 운전을 하는 차를 봐도 그러려니, 뭘 해도 그러려니 웃어넘겼읍니다. 집에 와서 오랜만에 캉골 버킷 햇을 썼읍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상담하러 갈 땐 이 모자를 쓰고 가 보려고 합니다. 조만간 생일 선물을 미리 받으러 백화점에 갈 예정입니다. 딥 티크, 조 말론, 바이레도 세 브랜드를 보려고 합니다. 생애 첫 향수. 마음에 드는 향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까진 아니겠지만 하여간 기쁠 듯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생착 검사를 해서 이상이 없으면 완치에 한층 더 가까워질 듯합니다. 그러면 다시는 미용실에서 삭발할 일이 없을 테니. 예전의 내 모습이 조금 보였읍니다. 볼살이 빠지고 피부가 상한 티가 나고 아프고 나서 인상이 바뀐 듯하지만, 그래도 내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대로 쭉 이상 없이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2024.09.20.금 (퇴원 D+170)


- 외래 진료 #19


피를 열세 통인가 뽑았다. 징하다.





2024.09.25.수 (퇴원 D+174)


#405번째 꿈 일기

발적이 그때처럼 옆구리에 큼직하게 서넛쯤 생긴 꿈.

다시 입원해서 옆구리에 굵은 바늘을 꽂는 꿈(세 번 더 꽂아야 한다).

요즈음 그런 꿈을 꿈.









인스타그램: @anda.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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