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by 연승

나는 정말 여러 사업에 도전했다. 어떤 제품은 직접 투자해 제조와 판매까지 해봤지만, 시장조사 실패로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또 어떤 시도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멈췄다. 실패와 좌절은 늘 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다시 배우고 주변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이 책은 그 여정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무모했던 도전, 부끄러웠던 경험, 그리고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솔직하게 담았다. 나처럼 막막한 시작 앞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무모하게 시작했고, 왜 번번히 좌절했으며, 결국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예전에 내가 아는 비즈니스란, 비행기에서 이코노미보다 한 단계 높은 좌석이라는 것 정도의 개념이었다. 사업이 무엇인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군 전역 직후, 나는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렸다.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오갔고, 실제로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2016년 2월 18일 나는 다시 태어났다. 백혈병 치료의 마지막 단계인 골수이식을 마친날, 병원에서는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며 축하해 준다. 그렇게 내 인생에는 두개의 생일이 만들어졌다.


직접 죽음의 문턱을 경험해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불확실한 내일이 두려웠고, 잠을 자면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반대로 무기력하게 하루 종일 잠만 자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며 나는 '시간'이라는 자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나 물건과 달리, 시간의 공급은 완전 비탄력성으로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생산'이 불가능한 세상 유일의 자원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자원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질문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더 이상 이 시간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죽는다는건 '시간'이라는 자원의 배분이 끝난다는 의미였다. 어린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매일 늦잠 자고, 게임하고, 놀러 다니고, 목표 없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하루라도 시간을 잃을까 두려워 밤을 지새웠는데, 그들은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낭비하는 듯 보였다. 그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완치 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을지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50살까지만 산다면, 주어진 시간 안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다. 결론은 명확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돈이 없으면 시간의 질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의 기반은 아빠가 조금 도와주었다. 독일 회사에서 수입한 중장비 스위치 부품을 대기업으로 납품하기 전 소규모 벤더들에게 조립해서 파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출은 잘 나오지 않았다. 혼자 주식에 투자해 버는 수익이 훨씬 많았다.


결국 내가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돈을 벌어야만 시간을 더 잘 사용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최소한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남는 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을 돕는 데 쓰고 싶었다.

학부 시절, 나는 한 학기 장학금을 반납한 적 있다. 투병 생활 중 병원에서 주식 공부를 시작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운 좋게 몇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래보다 조금 일찍 경제적 자유를 맛봤던 나는, 당장 돈이 절실하지 않았다. 정말 돈이 필요한 친구는 따로 있었다. 그래서 학과 사무실에가서 “장학금을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학과에 누군가 장학금을 포기해서 자기에게 들어왔다는 것이다. “공돈이 생겨 밥 한번 사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는 웃으며 기뻐해 주었다. 그 장학금을 포기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내게는 작은 선택이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절실한 도움이었다. 그날 결심했다.


‘돈을 벌면 반드시 누군가를 돕는 데 쓰겠다’


법인 설립 이후, 막막함은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이커머스에 대해 하나하나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무작정 서점으로 달려가 온라인 사업 관련 서적을 닥치는대로 찾고 읽었다. 그리고 '스마트 스토어', '위탁판매', '쿠팡', '해외직구'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걸 배웠다.


인터넷,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월 몇 천만 원을 벌었다”는 말들이 넘쳐났다.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사람들의 말이 정말 달콤해 보였다.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강의를 결제했고, 그들의 방식 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월 3천만 원을 보장”이라는 말만 믿고 미친 듯이 상품을 찾아 업로드했지만, 주문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금방 포기하는 사람 제외', '꾸준히 하실 분', '절박한 사람'을 모집한다는 문구에 마음이 흔들려 다시 한번 결제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첫 주문이 들어왔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몇 개월간 나의 스토어는 조용했다. 또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1대1 대면으로 진행되는 강의를 결제했다. 100만 원이었다. 다른 강의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금액이지만, 배우고 실천하면 목표달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강사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사람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다.


강의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상세페이지의 문구조차 판박이었다. “나는 흙수저였지만 지금은 포르쉐를 탄다. 부모님 빛을 다 갚았다.” 강사들의 얼굴만 다를 뿐, 내용은 늘 똑같았다. 심지어 서로를 저격하며 “저 강의는 가짜고 내것이 진짜다”라며 싸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절박한 마음으로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전형적인 구조였다. 여전히 이러한 강의들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실력이 없으면 이곳에서 살아남기엔 정말 희박하단 생각이 들었다.


시중에 떠도는 온라인 강의 핵심은 단순했다. 국내 온라인 도매 사이트나 중국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찾고, 제목과 상세페이지, 썸네일만 바꿔서 업도르 한다. 그리고 마진 계산기를 돌려 세금과 같은 비용을 계산해서 수익률을 계산한다. 그게 전부였다.


결과는 전부 실패였다. 내가 여기서 배운 건 '강의팔이'에 대한 경멸뿐이었다. 물론 그 방식을 따라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대다수와 함께 실패에 속했다. 차별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 천에서 수 만개의 동일한 제품이 이미 경쟁하고 있었다. 사무실까지 얻으며 시작했으나, 끝은 '쇼핑몰 퇴점'이었다. 사유는 이미테이션(가품) 판매였다. 1년간 동일 계정과 사업자로 입점이 불가능했다. 강의에서 시킨 그대로 했는데 최고 월 매출은 70만 원, 실제 영업이익은 7만 원대 수준이다.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말보다, 나의 경험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사업엔 왕도가 없다’ 그런데, 강의팔이 대부분은 노력 대비 짧은 기간 큰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사기랑 다를게 무엇일까? 그들의 사업은 지속가능할까?


지난 2년간 수많은 온라인 강의, PDF 전자책, 유튜브 등 많은 돈을 썼다. 시키는 대로 해봤고, 나만의 방법으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참혹했다.


나는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아닌,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사업은 현금 흐름이 일정했지만, 내가 꿈꾸던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돕는 삶’이라는 비전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우연히 한 대표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커머스 사업으로 매출을 일으키고 있었고, 침체된 경제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온라인 펀딩에서 역대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커머스란 도대체 뭘까?

’그동안 내가 접했던 사기꾼 강의팔이들과는 전혀 다른 향기가 났다. 그래서 나는 대표님을 따라다니며 밥 약속을 잡고, 나도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연승아, 그냥 해봐!"

문제는 나였다. 두렵다는 이유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아무리 기회가 눈앞에 와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어느날, 나를 보던 대표님이 답답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연승이는 1년째 같은 말만 하고 있네, 정말 두려운 게 뭔지 시각화해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그려졌다. 팔리지 않은 내 제품이 창고에 쌓여있고, 투자금을 잃은 채 그 재고를 바라보며 한숨 짓는 내 모습, 내가 두려워한 건 실패가 아니라, 실패한 후의 내 모습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주저하는 건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도전하는 추진력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러나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한 내가 사업을 시작하려니,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무작정 온라인에서 가장 잘 팔리고, 요즘 핫한 제품이 무엇인지 찾았다. 그러던 중 어떤 의자를 발견했고, ‘똑같이 만들어서 팔면 비슷한 매출을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금형, 사출, 목업, MOQ 등 어떠한 용어 하나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경쟁업체 문을 두들겼다.


"어떻게 오셨어요?"


비즈니스 미팅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백팩 하나 메고 오른손엔 수첩을 든 채 "대표님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을 열어준 직원이 미리 약속을 했는지 물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아니요”라고 말했다. 잠시후 대표가 직접 나왔고, 나는 “1시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라며 허겁지겁 문을 열고 도망쳤다.


당황한 나는 곧장 아버지 회사 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1시간 뒤에 여기로 와주실 수 있냐”고 부탁했다. 제조업계에 오래 계신 분이니 최소한의 조언을 해줄 거라 기대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부장님이 “올라가서 무슨 대화를 하려는 거냐”고 묻자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그 제품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장님은 내에게 나름 계획이 있는 줄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떤 계획도 없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대표’ 명함을 들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준비가 없는, 풋내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대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도 똑같은 제품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셨어요?”


대표는 황당한듯 웃으며 되물었다.


“판로는 있습니까?”


나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일단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대표는 “많이 팔 자신만 있으면 총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얼떨결에 “다시 연락 드리겠다”며 자리를 나왔다.


회의실에서 오간 말들은 부끄럽고 창피했다. 총판, 금형, 사출, 목업, MOQ 같은 단어가 쏟아졌지만, 나는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제조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동안 애플, 스타벅스, 맥도날드, 현대, 삼성과 같은 대기업 상장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책을 통해 배웠지만, 그들의 거대한 의사결정은 나 같은 1인 기업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무모한 미팅은 실패였지만, 동시에 값진 배움이었다.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OEM,ODM이 무엇인지 책으로만 접했던 개념들을 현실에서 마주하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의 의미를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의자 사업은 초기 비용 장벽에 부딫혀 포기하고 말았다. 금형 하나 만드는데만 3천만 원이 들었다. 설령 제품을 만든다 해도 어떻게 판매해야 막막했다. 마케팅은 커녕 어느 플랫폼에 업로드해서 판매할지도 말랐다. 또다시 ‘막막함’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대표님이 나에게 조언했다.


“연승아 너 주변 환경을 이용해서 새로운 사업을 찾아봐”

그 말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배웠고, 주변 환경에서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책으로 배운 지식도 중요했지만, 직접 부딪히며 얻은 경험이 훨씬 값지다는걸 알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