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보여준 앎의 조건들
SF 영화를 볼 때 항상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과학적 묘사가 내가 아는 방식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에 들어온다. 이는 공연을 볼 때와 비슷하다. 프로의 무대는 마음 놓고 볼 수 있지만,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공연에 대해서는 자꾸만 깐깐해지고, 실수하진 않을까 걱정되고, 사소한 어긋남에도 괜히 보는 내가 민망해진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그런 긴장이 설 자리가 없었다. 생물 수업에서 배운 내용, 실험실에서 직접 겪은 절차들이 거의 그대로, 올바른 방식으로 스크린에 구현되어 있었다. 분광분석을 통한 물질 규명, 미생물 배양 조건의 설정, 환경변수의 통제, 가설과 검증의 반복까지, 이 영화는 과학을 소재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을 과학의 방법으로 다루고 있었다. 잘하는 사람의 공연은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처럼, 2시간 36분 동안 나는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은 과학적 정합성에 대한 만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에 대해 제대로 논하려면 과학과 함께 인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 그레이스가 에리디언 외계인 로키와 처음 조우하는 장면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처음으로 풀어주는 경험이었다. 인간이 아닌 지적 생물체를 만났을 때, 소통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영화는 이 질문에 매우 설득력 있는 순서를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는 상대의 감각기관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레이스도 "수학은 우주 만물의 공통 언어"라는 격언에 따라 자와 시계를 가져와 인간의 숫자를 알려주려 하지만,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에리디언에게는 시각이 없고, 대신 음파를 기반으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는 음파로 숫자의 형태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일대일 대응을 통해 숫자를 공유하고, 그 위에 단어를 하나씩 쌓는다. 감각 → 수학 → 언어. 상대의 감각 양식을 먼저 파악하지 않으면 수학조차 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순서는 논리적으로 불가피한 경로였고, 나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지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 소통 과정은 동시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낸다. 에리디언은 빛을 감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의 과학 체계에는 광학이 존재하지 않으며, 광속을 기반으로 한 상대성 이론은 정립되지 않았다. 이때, 정립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립할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과학은 감각기관이 세계와 접촉하는 방식에 일차적으로 의존하며, 감각이 다르면 과학의 출발점 자체가 달라진다. 그레이스를 포함해, 우리는 로키를 만나기 전까지 이 당연한 논리를 잊고 있었다.
우리는 과학의 발전 과정을 마치 게임의 스킬트리처럼 상상하는 데 익숙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문명 시뮬레이션 게임도 그렇게 과학 발전을 구현한다. 기초역학에서 시작하여, 열역학을 거치고, 전자기학을 지나, 결국 로켓 기술에 도달하는 규격화된 경로. 이 경로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만이 ‘유일한 경로’라고 착각한다.
에리디언은 이 착각을 깨뜨린다. 그들은 인류가 밟은 기초과학의 상당 부분 없이도 우주선을 만들었다. 완전히 다른 본위에서 출발하여, 완전히 다른 이론과 소재로, 인류와는 전혀 다른 설계의 로켓을 조립했다. 같은 기능에 도달했지만, 그 밑의 이론 체계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내게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다.
반면 인류는 에리디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재인 제노나이트를 발견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총량으로 따지면 인류가 그들을 압도함에도, 환경과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 있다는 사실. 이것은 과학적 발견에 위계도, 필연적 순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우연과 필요가 있을 뿐이다.
영화 후반, 타우메바를 품종 개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타우메바는 아스트로파지를 잡아먹는 미생물로, 이것을 지구와 에리드 양쪽에서 쓸 수 있도록 질소 내성을 갖추게끔 진화시키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변이가 함께 일어났다. 타우메바가 제노나이트 용기를 투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헤일메리호에서는 다른 용기에 담으면 그만이었지만, 선체 전체가 제노나이트로 이루어진 로키의 우주선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인상 깊게 본 블랙박스 문제이다. 블랙박스란 입력과 출력 사이의 메커니즘이 불투명한 상태를 말하는데, 결과는 나오지만 왜 그 결과가 나오는지는 모른다. 이 상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부작용 자체가 아니라 부작용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이다. 알려진 위험은 관리할 수 있지만, 존재조차 파악되지 않은 위험은 애초에 관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예과 학생의 관점에서 이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약물의 기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효과만 확인하고 사용하는 치료법의 구조와 같다. 물론 현실의 의학은 임상시험이라는 안전장치를 두고 있지만, 그 임상시험조차 블랙박스의 출력을 통계적으로 검증하는 것이지, 블랙박스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는 그레이스의 심리에 공감이 갔다. 그는 과학적 역량만으로 보면 어떤 연구기관에서든 핵심 인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권위에 대한 불복이 그를 학계 밖으로 밀어냈고 결국 중학교 교실에 안착시켰다. 스트라트가 처음 찾아왔을 때 그가 자신을 "난 중학교 과학교사일 뿐이에요"라고 규정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사회적 좌절이 굳어진 자기 인식이고,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온 관성의 발로이다.
그런데 이 인물을 관통하는 진짜 갈등은, 과학에 대한 열의와 그 열의가 요구하는 책임의 무게 사이에 있다. 그는 아스트로파지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품은 생물의 특성상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실험에 기꺼이 나선다. 즉, 그는 실험자이자 실험체이길 자처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연구의 논리적 귀결인 자살 임무,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망설인다. 과학자로서는 이 임무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객관적으로 임무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 인간으로서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트라트가 결국 그를 마취시켜 우주선에 태운 것은, 그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우주선에서 깨어난 직후의 그레이스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영상 기록을 거부하고, 파일럿 자리에 앉고 싶으면서도 실제 파일럿 권한을 얻는 것은 극도로 꺼리는 모습, 즉 주체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주체성 자체는 회피하는 모순이 반복된다.
이 모순이 깨지는 계기가 로키와의 만남이다. 만남 이후의 그레이스는 영상 기록도 남기고, 매우 어려운 기동까지 결과적으로 해내는데, 야오 사령관이 건넨 말이 이 변화의 이유를 정확히 설명한다. "용기 유전자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용기를 내게 해줄 사람이 있으면 돼요."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그레이스는, 인류 전체라는 추상화된 집단보다 눈앞의 외계인 한 명에게 더 진심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 절반을 구하는 데 동참해 달라는 부탁에도 승선을 끝내 거부했던 그가, 같은 종족도 아닌, 감각기관도 전혀 다른, 언어조차 처음부터 쌓아 가야 했던 존재와 그 종족을 위해 진심으로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한다.
영화는 말한다. 내적 성숙이란, 지키려 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에서 타인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이는 비단 그레이스뿐 아니라, 그를 구하기 위해 유해한 공기를 무릅쓰고 원심력 장치를 작동시키는 로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과학은 우주의 공통 언어"라는 말을 자주 하며, 이종 지적 생물체와의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수학과 물리학을 통해서일 것이라고 자부한다. 이 영화도 실제로 수학을 소통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고, 그 설정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준 것은 동시에 그 자부의 한계이기도 하다. 과학은 인간의 감각기관에 일차적으로 의존하고, 발견의 경로는 환경과 필요에 의해 우연적으로 결정되며, 그 원리의 실용적 집약체인 기술조차도 결국에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존재의 심리에 종속된다. "과학"은 인간의 학문이다. 그리고 에리디언의 과학은 에리디언의 학문이다. 우리가 "우주의 공통 언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히 무슨 과학인지는, 끝없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서면서, 나는 이 질문이 나의 공부와도 닿아 있다고 느꼈다. 의학도 인간의 학문이다. 인간의 감각이 설정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 통계가 구획한 질병의 범주, 그리고 그 모든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순간에 개입하는 의료인 개인의 심리. 이것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나 역시 블랙박스의 출력만 읽게 될 수도 있다.
아직 답은 없다. 다만 질문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