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사다리병창길에서 만난 사람들
준비(準非)
사다리병창길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해본 결과, '매우 고되지만 그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도 준비는 최대한 철저히 하자는 마음으로 당일 아침 물품을 미리 사놓았다. 에너지바와 물과 샌드위치를 챙기면서 나는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準備가 아니라 準非였다. 등산화도, 아이젠도, 지팡이도 없었고 — 무엇보다 이 산에서 사람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혼자 가는 산이니 오롯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예측이 얼마나 빗나갈지는 아직 몰랐다.
오전 10시 20분에 기숙사를 나서 10시 45분쯤 42번 버스에 올라탔다. 종점인 구룡사까지 쭉 이동하는 동안, 나와 같은 목적지를 공유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는 달리 등산복을 완전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었다.
1시간가량의 버스 이동 후 마침내 등정이 시작되었다. 세렴폭포 부근까지는 일반적인 동네 뒷산 산책 코스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길은 잘 닦여 있었고, 중간에 구룡사까지 들를 수 있어 볼거리는 충분했다.
계단 지옥
그러나 지옥은 세렴폭포를 건너는 다리 이후에서 시작되었다. '탐방구간 매우 어려움'이라는 빨간색 경고 문구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영상과 글에서 무수히 본 그 계단 지옥이 펼쳐졌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계단만이 유일한 역경일 줄로만 알았다. 후에 목숨을 걸어야 할 극한의 구간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소문대로 사다리병창길은 시작부터 압도적인 기세로 나를 몰아붙였다. 끝날 기세가 보이지 않는 계단의 향연. 젊음을 과신한 나는 빠른 템포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예견된 결과지만 얼마 안 가 숨을 헥헥대며 멈추어 섰다. 심박수는 188을 찍었다. 나는 곧바로 이 전략이 지속 불가능함을 깨닫고, AI에게 조언을 구했다. 심박수가 180을 넘으면 젖산이 다리에 급격히 축적되어 체력이 떨어지며, 160을 넘기면 130 정도까지 낮추고 천천히 등반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에 따라 한 걸음에 한 호흡씩, 내뱉는 숨에 한 걸음 — 침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하산하시는 어른 한 분께서 곧 정상이라고 하셨지만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전략이 예상외로 훌륭했다. 다리 근육이 풀리기 시작하자, 더 이상 심박수를 낮추기 위해 쉴 필요 없이 안정된 호흡을 반복하며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상 밖의 재앙
이제 무한의 계단 지옥만 통과하면 무난히 정상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던 나는, 약간의 쉬어가는 구간 이후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재앙을 마주했다. 끝없는 눈길 철봉 구간. 지금까지 본 자료에서는 눈이 쌓이지 않은 상태의 사진과 영상만 존재했고, 모든 길이 눈으로 뒤덮인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길은 일반적인 눈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밟고 올라간 뒤 약간 녹고, 거기에 다시 눈이 쌓이는 과정이 반복되어 정지마찰계수가 극한으로 낮아진 자연이 만든 함정이 죽 깔려 있었다.
등산화도, 아이젠도 없던 나에게 눈 위를 무작정 밟고 올라가는 것은 목숨이 아깝다면 꿈에도 못 꿀 일이었다. 최대한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많이 의존한 것은 철봉이었다. 철봉은 세로로 세워진 기둥에 가로로 된 두 줄의 봉이 이어진 형태였는데, 나는 오른발을 철봉 기둥 앞쪽에 놓아 고정한 후, 마치 클라이밍을 하듯 왼발로 약간 녹아 드러난 바위 끄트머리를 필사적으로 찾아 밟고 올라섰다. 그마저도 없으면 두 팔의 힘으로 몸을 끌어올려 억지로 왼발이 놓일 곳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한두 번씩 발이 미끄러지는 위험은 매번 감수해야 했다. 하체 운동을 기대했던 나는 어쩌다 전신 운동, 그것도 최악의 운동인 오른팔만 과도하게 사용하는 운동을 해야만 했다. 이 구간이 얼마나 고되었는지는 워치 데이터가 증명한다. 구간 4(4~5km 구간)에서 1km를 이동하는 데 1시간 43분이 걸렸다. 속도는 시속 0.5km. 걸어간 것이 아니라 기어올라간 것이다.
이제 나는 오히려 계단 지옥이 보이면 환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단은 힘들지언정 생명의 위협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 정도를 꾸역꾸역 넘어가던 차에, 맨 처음 버스에서 보았던 빨간 상의를 입은 여성분을 다시 뵙게 되었다. 그분께서는 나의 차림을 걱정하시며 여분의 지팡이를 손에 쥐어주셨다. 혼자 올라가는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산은 자꾸 사람을 보내주었다. "곧 정상이라"고 말해준 어른도, 빙판 조심하라고 경고해 준 분도, 전부 내가 요청하지 않은 도움(?)이었다.
그리고 계단 연옥을 오르며 다시 기고만장해진 나에게, 하산 중이던 어른 한 분께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셨다. 이 앞은 거의 다 빙판이라고. 아이젠이 없으면 힘들 거라고.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말 그대로 끝도 없는 빙판의 향연이 이어졌다. 몇 번의 생명의 고비를 지팡이의 무게 분산 능력에 의존해 넘기고, 생명줄 같은 철봉, 이따금씩 등장해 반가움을 주는 바위 끄트머리, 그리고 제2의 철봉인 나무 기둥들에 매달리며 올라갔다. 그 와중에 젊은 남자 넷이 웃으면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특별한 장비를 갖춘 것도 아니었다.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차림이었는데, 나는 철봉에 매달려 한 발짝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동안 그들은 대화를 하면서 올라왔다.
계속해서 지도를 확인했다. 300미터 남았다. 드디어 300미터. 그런데 그 앞에는 나를 좌절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지금까지 본 모든 길보다 더 험한 50도 수준의 빙판 경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100미터, 나는 다시 계단 연옥을 올랐다.
정상
그리고 마침내, 정상.
다만 경치는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다. 미세먼지인지 황사인지 정체 모를 희뿌연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짧았고, 솔직히 말해 개성 있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 직전의 조망대에서 뒤를 돌아본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등정 내내 수많은 나뭇가지들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 않던 채로 묵묵히 여정을 계속해야 했던 나에게, 뒤를 돌았을 때 비치는 드넓은 천지의 광경은 순간 '와'라는 소리가 무조건 반사로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
부부
정상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신 부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학과 고등학교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원주의과대학 1학년이라고 밝히자 의대 진학 동기를 물으셨다. 고교 시절부터 가졌던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과, '선(善)'을 실천할 수 있는 직군으로서 의사가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했다는 답을 드렸다.
어머님께서는 나와 동갑인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평가 방식부터가 의문스러웠다. 수행평가가 전체 점수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인데, 보통 30~40% 선에서 결정되는 변별력이 그 지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위 말하는 학부모들의 영향력이 학교 운영에 개입되어 지필고사 성적과는 동떨어진 내신 등급이 산출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구체적인 사례들은 더 심각했다. 지필고사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는 반면, 특정 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이해하기 힘든 성적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평가 관리의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어도 학교와 교사들이 이를 묵인하며 무마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학업 역량 개발에 집중하던 나의 경험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교육 현장의 단면이었다.
대화는 반수 여부로 옮겨갔다. 수도권 의대의 인프라를 강조하며 고려해 보라는 어머님과, 의대라면 학과가 중요하지 대학 간판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아버님의 의견이 갈렸다. 대화가 공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님께 위로 섞인 내 생각을 전했다. 사회적 시선에서는 대학과 성적이 중요할지 몰라도, 결국 남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며 고등학교에서의 치열한 경험은 인생 전반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그런데 정작 아드님은 원래 희망하던 전공을 찾아 포항공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주변의 높은 기준 때문에 생긴 아쉬움이었을 뿐, 결국 본인의 길을 간 셈이라 결론은 다소 허무했다.
하산하는 청년들
대화 중에 아까 보았던 청년 네 명이 사다리병창 방향으로 다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올라올 때의 험난함을 생각하면 하산은 훨씬 위험한 선택이었으나,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발을 뗐다. 어머님께서는 그 뒷모습을 보며 "젊으니까 가능하지"라고 덧붙이셨다.
어른 두 분
정상에서 사진 찍기를 부탁드렸다. 처음에 비석 위로 올라가려고 했더니 벌금을 물고 문책을 당할 수 있다며 말리셨다(이후 이분들의 재담을 경험한 후로는 이 말조차 사실인지 의심이 가긴 한다). 그 뒤 두 어른께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유쾌하시고 다양한 재치 있는 포즈를 취하셔서 먼저 찍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하산할 때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여쭤보니 황골 방면이 제일 편하고 기숙사와 가깝다고 하셔서 그리로 갔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지팡이를 건네주셨던 빨간 상의의 여성분을 다시 만나 지팡이를 돌려드렸다.
7. 하산 — 태양과 진창
하산을 시작하고 처음 깨달은 사실은 태양이었다. 내가 택한 황골 방면 루트는 진창은 있을지언정 눈은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태양이 직사 하는 방향이기 때문이었다. 올라갈 때는 생명의 보전을 위해 눈을 피해 돌을 밟았던 것처럼, 내려갈 때는 찜찜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진창 범벅의 흙길을 최대한 피해 걸으려 노력했다.
사실 하산 과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끊임없이 놓인 가파른 돌계단에서 순간순간 빠른 두뇌 회전으로 발을 놓을 곳을 계산하고, 소중한 무릎 연골을 최대한 오래 쓰기 위해 충격을 완화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길고도 짧은 돌계단이 끝나고 비로소 나무 계단과 아스팔트 도로가 나를 반기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전화해 나의 성과를 자랑했다.
8. 산채비빔밥, 막걸리, 그리고 택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갔더니 출발까지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옆의 식당에 들어가 산채비빔밥과 막걸리를 시켰다. 비빔밥은 리뷰대로 매우 훌륭했고, 단점 아닌 단점이 하나 있었다면 막걸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3명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양의 막걸리가 조그마한 항아리에 한가득 담겨 나온 광경을 보고, 나는 빚에 쫓기는 저신용자처럼 비빔밥 한 숟갈에 막걸리 반 사발을 변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비빔밥이 소진되기 전까지 막걸리를 반 이상 마실 수 있었는데(사발로 치환하자면 5사발 이상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든 나는 그 즉시 내가 취했음을 자각했다. 고개를 돌릴 때 미묘하게 시야가 늦게 따라오는 감각 — 과음의 신호였다.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왔고, 이미 지나간 버스 대신 택시를 불렀다.
9. 택시 기사님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약간 취한 상태로 택시에 탔는데, 생각보다 소중한 경험이 되어 글로 남긴다.
치악산에 갔다 왔는데 정말 힘들다고 운을 뗐더니 왜 갔냐고 물어보셨다. 전인활동 과목에 대해 잠깐 소개해 드리고, 어쩌다 의대생이라는 사실도 알려 드렸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더니 좋은 마인드라고 칭찬해 주셨다.
기사님께서는 본인도 봉사활동이나 재능기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동안 궁금했던, 그리고 약간은 몰라서 두려웠던 점에 대해 솔직히 여쭤보았다. 사람을 대하는 종류의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노인회관 등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일단 참여해서 공연자를 돕는 과정에서 그분들이 선택하시는 곡을 잘 살펴보고, 그 곡들을 나중에 부르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주셨다. AI로는 얻을 수 없는, 현장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였다.
기사님께서는 가족 내력도 소개해 주셨다. 형제자매가 굉장히 많으신데, 한 분은 건국대 총장이 원래 되실 분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병으로 돌아가셨고, 한 분은 미국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본인을 빼고 친척 대부분이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셨는데, 들어 보니 기사님 본인도 경찰로서 활동하시다 정년퇴임하신 분이었다. 게다가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계발을 이어가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버스에서 본 빨간 상의의 여성분, 정상의 부부, 유쾌한 어른 두 분, 그리고 이 택시 기사님까지. 혼자 올라간 산이었는데, 돌아보니 혼자였던 순간이 거의 없었다.
10. 남은 것
어제 한지테마파크에서 수십 초 만에 끝난 체험의 허무함을 느꼈다. 몸이 고된 과정 없이는 습(習)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치악산행의 직접적인 동기였다. 그리고 치악산은 그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았다. 심박수 188, 정지마찰계수가 바닥인 눈길, 50도 빙판 경사 — 이번에는 저항이 확실히 있었고, 그 저항 속에서 전략을 수정하고 몸을 적응시키는 과정이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번 활동에서 가장 남는 것은 등산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지팡이를 건네준 여성분, 활기차게 등반하던 청년들, 정상에서 아들의 교육 경험을 토로하신 부부, 유쾌하게 포즈를 취하시던 어른 두 분, 봉사활동의 실마리를 건네준 택시 기사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그 대화들이 등산만큼, 혹은 그보다 더 깊은 것을 남겼다.
택시 기사님의 조언 덕분에, 막연하기만 했던 음악 재능기부의 방향이 조금은 구체적으로 잡혔다. 먼저 참여해서 관찰하고, 그분들의 취향을 파악한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얹는 순서. 이것이 다음 활동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