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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ug 06. 2019

<버닝> 편견이라는 창문

버닝(이창동, 2018)

차별과 혐오가 항상 아래만을 향하지는 않는다. ‘기생충(봉준호, 2019)’에서 기택(송강호 ) 박사장(이선균 ) 죽인 것도 극빈층의 상류층에 대한 편견과 그로 인한 혐오가 낳은 결과다.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혐오는 아래에서 위로 흐르기도 한다.


제대로 보려면 창을 열어젖혀야!


‘종수(유아인 분)’는 ‘벤(스티븐 연)’을 볼 때마다 이유 없는 열등감에 사로 잡힌다. ‘해미(전종서)’와 함께 벤의 집에서 파스타를 해 먹을 때, 종수는 화장실에서 여성용 화장품들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생업에 시달리는 종수와 달리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경계가 희미해진’ 벤은 포르셰를 몰고 집에 많은 여자를 들인다. 벤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종수도 알고 있기에, 종수는 벤의 일상을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그를 개츠비(Gatsby)처럼 여기는 장면이 그러하다. 또한 집에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벤의 말을 듣고 으레 ‘그럼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겠네요?’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벤은 각자 음식을 가져오는 포틀럭 파티임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종수는 추상적으로 알 뿐 정확히 알지 못한다. 미스터리 하면서도 찬란한 벤의 일상을 마주하며 종수는 그에 대한 편견만 점차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영화 말미 종수는 벤이 해미를 살해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벤을 살해한다. 정시우는 버닝에 대해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고 평했다. 벤이 해미를 죽였다는 물증은 없다. 심증이라고 하지만 그 심증 역시 벤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 것이다. ‘비닐하우스는 해미겠지?’ 대체 무슨 근거로?



종수의 집은 국경선 근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으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종이 한 장 차이다. 철책선 하나 차이다. 五十步百步.


종수 집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트럼프의 연설도 편견과 그에 기반한 혐오라는 감독의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이민자 정책도 전면 수정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연설.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과 그에 따른 혐오는 국가의 경제난마저도 그들의 등 위에 지울 수 있게 만든다.


벤이 가족들과 모여 식사를 하는 공간 저편에는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그림이 전시 중이었다.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권리금이 몽땅 날아간 세입자들의 억울함은 그 누구로부터도 공감받지 못했고, 우리 사회는 경찰이 ‘떼법’을 응징했다며 철거민들의 죽음에, 그들의 ‘버닝’에 일종의 카타르시스 마저 느꼈다.


철거민들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되지도 않은 요구를 하다 죽었다는 편견만을 공유했다. 언론은 철거민들이 쏜 새총만을 보도하고 그들이 재개발 정책으로 입은 피해는 보도하지 않으며 그러한 ‘편견’을 확대 재생산했다. 널리 퍼진 편견 위에 혐오는 공고히 자리 잡았다.


곡성(나홍진, 2016)의 쿠니무라 준


누군가는 이 영화를 ‘곡성(나홍진, 2016)’과 일견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의심하지 말라’는 주제의식도 결국 누군가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지인은 동굴에서 ‘나는 악마다(와카시가 아쿠마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관객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외지인 캐릭터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에드워드 머로는 ‘모든 사람은 자기 경험의 포로이며 그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 수수께끼 같은 세상이라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는 종수는 해미가 벤에게 살해당했다는 편견에 기초한 판단을 내리자마자 소설을 쓸 수 있게 된다. 편견이라는 견해마저도 없다면 불완전한 우리가 세상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창(혹은 프리즘)’은 없다. 편견이란 그런 의미에서 필요악이지 싶다.




#버닝 #영화버닝 #이창동 #전종서 #유아인 #스티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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