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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ug 12. 2019

시간의 민첩성(敏捷性):: 웹드라마, 인스타그램 비평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수록 도리어 시간에 예속되는

조선 시대의 시간 개념이 지금 우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널널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자시는 밤 11시에서 그다음 날 새벽 1시, 축시는 새벽 1시에서 3시. 시간의 기본단위가 우리처럼 한 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이었다. 즉 조선 시대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한 방식으로 지금보다 느렸다.


반대로 역사가 흐를수록 시간의 단위는 점점 촘촘해지고 더 빡빡해졌다(아무래도 생산력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시간은 더 세밀해지고 더 유연해지고 있으며 더 빨라지고 있다. 모두에게. 말하자면 우리 공동체는 가마솥으로 밥을 짓던 시대에서 전자레인지로 밥을 지어먹는 시대로 이행해왔고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의 민첩성’은 항상 진행 중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주인공이 오히려 그 타임머신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영화처럼, 시간의 민첩성은 우리를 어떤 불행으로 밀어 넣고 있을까?





                         증거물들





1. 웹드라마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는 최근 시즌4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명실상부한 웹드라마 전성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장년층에게는 다소 생경한 장르일지 모르나 청소년과 20대를 중심으로 TV 드라마보다 영향력 있는 컨텐츠가 웹드라마다. 웹드라마는 한 편당 10여 분에서 길게는 20여 분 정도의 길이로 기존의 TV 드라마에 비하면 확연히 그 분량이 짧다. 이제 드라마는 출퇴근하는 시간 동안 적어도 몇 편은 몰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장르가 되었다.


웹드라마가 다루는 소재와 TV 드라마가 다루는 소재 사이에도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웹드라마의 경우 가벼운 소재가 많다. 주제도 가볍다. 웹드라마라는 장르의 태생적 한계다. 한 편당 10여 분에서 20여 분 사이의 분량에 담아낼 수 있는 서사는 얼마나 되겠는가?


예를 들어 몇 년 전 히트를 친 tvn의 드라마 ‘비밀의 숲’을 웹드라마로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그 아무리 유능한 연출자라고 하더라도 플롯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하지 않는 이상 웹드라마화(化)는 불가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를 웹드라마로 만든다 해도 비슷할 것이다. 요컨대 시간의 흐름이 빨라짐에 따라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극인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도 그 속도를 맞춰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점점 우리는 가볍게 보고 가볍게 울고 웃으며 가볍게 금방 잊을 것이다.



2. 인스타그램


딘은 사회’관계’망 속의 ‘공허’를 다룬 노래 ‘인스타그램’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인스타그램이 과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다른 점은 ‘휘발성’이다. ‘스토리’ 기능은 인스타그램의 휘발성을 잘 보여준다. ‘스토리’ 기능으로 사진을 올리면 24시간 후에 자동으로 노출이 중단된다. 하루가 지나면 그 사진을 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시간의 민첩성이 심화되는 것은 사건의 휘발성도 심화됨을 의미한다. 물이 담긴 그릇을 촬영한 비디오가 있다. 비디오를 2배속으로 돌리면 물도 더 빨리 증발한다. 시간의 민첩성은 더 빠른 망각을 요구하고 인스타그램은 스토리 기능을 통해 그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인스타그램이 사진 기반 SNS인 점도 시간의 민첩성과 무관하지 않다. 글과 달리 사진은 직관적이고 파악하기 쉽다. 타임라인을 죽죽 내려가는 손가락의 속도를 눈이 따라가려면 타임라인에 올라가는 내용물의 성격은 어떠해야 할까? 초창기 트위터가 140 자라는 글자 수 제약을 둔 것과 인스타그램이 사진 기반인 점은 그리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둘 다 시간의 민첩성이 던진 질문에 자본이 응답한 결과물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인스타그램이 유행하자 ‘허세충’, ‘인스타 감성’ 같은 말도 유행했다. 완곡한 표현으로는 ‘swag’가 유행했었고. 과거 SNS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했기에 자신의 감정이나 최근의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는 기능을 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사진 기반의 특성상 개인의 감정이나 사유가 아니라 ‘대상(material)’만 강조되었다.


페이스북에는 좋아요, 싫어요, 화나요, 슬퍼요가 있지만 인스타그램에는 오직 좋아요만 있다. 게시자의 감정이나 사유가 아닌 사물과 대상만이 타임라인에 오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도 좋아요 이상의 기타 다른 감정표현은 불필요하다. 시간의 민첩성이라는 환경 변화가 낳은 인스타그램은 현재 전 국민의 70%가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소외감은 더욱 증대되었다. 시간의 민첩성이 사물과 대상만을 남기고 사유와 감정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부질없이 올려 놓은 사진 / 뒤에 가려진 내 마음을 / 아는 이 없네 나는 또 헤매이네 / 저 인스타그램 속에서”(딘의 노래 ‘Instagram’ 중에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쓴다는 믿음




증거물들은 차고 넘친다. 동영상 분석 플랫폼 ‘WISTIA’의 분석에 따르면 유튜브 동영상의 길이가 2분을 넘기자마자 시청자 이탈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긴 글만 보면 ‘세 줄 요약’을 외치는 세태도 단순히 문해력의 저하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시간의 민첩성이 심화되고 있음이 그 기저에 있음을 인지한 채로 이해해야 한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상 자체도 시간의 민첩성에 예속된 결과다. 갑자기 사람들이 멍청해지기라도 했다는 식의 주장이야말로 현상만 보고 이면을 보지 못하는 멍청한 주장이다.


시간의 민첩성이 심화되면서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착각에 살고 있다. 알튀세르가 지적한 것처럼 시간에 대한 우리의 믿음 역시 무의식 중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처럼 기능한다.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열차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타고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증대되는 소외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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