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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l 27. 2019

<박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박열(이준익, 2017)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박열(이준익, 2017)은 확실히 특이한 영화다. 박열도 확실히 특이한 인물이다. 박열은 조선 민중들만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의 운동은 천황제라는 비상식적 통치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일본 민중들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폭넓은 저항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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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 민중과 싸우고 있던가”

“충군애국 사상은 권력이 이익을 탐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형용사로 포장한 것이다. 이는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민중을 희생시키려는 잔인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은 특권계급의 노예가 되는 것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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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은 본인을 아나키스트로 규정한다. 그에게 있어 일본 민중은 적이 아니다. 그의 동지 후미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칼날은 천황제와 군국주의로 향하지 결코 그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들의 아나키즘은 그래서 아나키즘 이전에 휴머니즘이었다. 히틀러 정권에 저항했던 백장미단 사건으로 남매를 잃어야했던 잉게 숄의 소설 제목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처럼, 후미코의 죽음 역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었다.

오직 구조의 모순만을 짚어내며 인간에 대한 불필요한 혐오를 지양하는 그들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요컨대 영화 박열은 이준익이 제작에 참여한 아나키스트(유영식, 2000)에서 아나키즘을, 라디오스타(이준익, 2006)에서 휴머니즘을 추출해내어 잘 버무린 웰메이드 시대극이다.

일본의 금수조치에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주차장내 일본 차량에 대한 주차금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일본 차량의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조선인에게 ‘십오엔 오십전’을 발음시키는 자경단원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가 되기는 어려워도 모두를 미워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지어다. 칼끝은 땅바닥이 아니라 허공을 향해야!

덤: 아이캔스피크(김현석, 2017), 박열(이준익, 2017), 고지전(장훈, 2011). 내가 이제훈을 애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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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글쓰기’는 영화 리뷰가 아닙니다. 작가가 영화를 빌어와 본인이 평소에 하고 싶던 잡소리를 하는 공간입니다. 쓸데 없는 소리를 할 자유를 허락한 브런치에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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