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꿈을 만들어내는 리얼리스트적 대안
근로기준법은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 말한다. 그동안 살아온 노력의 대가가 아니다. 사실 당연하다. 그동안 살아온 노력이 많았으면 일 덜 해도 돈 많이 줘야 할까? 그동안 살아온 노력이 적었으면 일 더 해도 돈 적게 줘야 할까?
살면서 해온 노력에 따라 돈을 주는 사회, 그저 일 한 만큼 돈 주는 사회. 어느 사회가 더 공정할까? ‘그동안 살면서 노력한 사람에게 정규직을 주는 것이 공정하다’ 실상 그 주장이야말로 가장 불공정한 주장이다. 일한 만큼 대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공정한 주장 아닐까?
- 지난 글에서 발췌
노력과 정규직은 무관하다. 돈은 일한 만큼 받는 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살면서 누가 더 노력 많이 했는지 상 주려고 만든 구분이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 자본이 스스로 살아 남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불행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감히’ 정규직 자리를 넘봐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 노력해야만 정규직이 될 수 있어서 불행한 것이다. 지난 글을 거칠게 요약해보면 이렇다.
지난 글을 읽고 독자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을지 짐작이 간다. ‘작가 양반, 그러면 다 정규직으로 뽑으라고?’ ‘아니, 다 정규직으로 뽑았다가 그중에 문제사원 있으면 제때 자를 수나 있어? 대한민국 노동법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특히 작은 사업이라도 해보신 독자들은 더더욱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질문부터 해결하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뽑을 수는 없다. 다만 비정규직은 노력을 덜 했으니 돈도 덜 받아야 하고, 정규직은 살아온 세월 내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니 더 많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의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된다면 지난 글의 일독을 권한다).
당연히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를 하루아침에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는 없다. 현재 정규직 전환의 선봉에 서고 있는 공공기관의 경우 총 332곳 중 231곳이 적자를 기록중이다. 이런 와중에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란 꿈만 같은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은 필요하다. 재정 상황으로 인해 완전 정규직 전환은 힘들어도 자회사를 만들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이른바 ‘중규직’ 전환) 사례가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규직 전환은 임금 차별을 해소하지 못한다. 정규직 전환과 달리 중규직 전환은 임금 인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면 사실상 해고당하는 기존 비정규직과 달리 중규직의 경우 고용 관계가 무기한 지속된다. 우리 공동체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대우에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의 흐름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중규직에 대한 차별에 문제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중규직 전환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자본의 방식으로 길들인 것일지 모른다.)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 ‘정규직으로 뽑았다가 문제사원으로 드러나면 어떡하냐, 함부로 자를 수도 없는데 뭘 알고서나 하는 소리냐!’ 맞는 말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해고의 요건을 엄격히 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근로자의 해고가 합법이 되기 위해서 ‘정당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그 요건이 부족하여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부당해고 결정을 내리면 사업주가 막대한 금전적 배상을 해야만 한다. 실제로 몇몇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비정규직의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의 일반 해고가 어려워서 비정규직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이미 우리 대법원은 사용자들을 위해 ‘시용’ 근로자라는 신분을 인정하고 있다. 시범적으로 일을 시켜보고 마음에 들면 정식으로 채용한다. 시용의 사전적 의미다. 대법원은 시용 근로자의 경우 일반 근로자의 해고보다 그 요건을 넓게 인정한다. 정규직으로 뽑는 게 불안하면 그전에 시용 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사용자가 선발 과정을 더 중요시 여길 필요성도 있다. 합격시켜야 할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을 제1종 오류라 한다. 반면 떨어트려야 할 사람을 합격시키는 것을 제2종 오류라 한다. 우리나라처럼 일반 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국가에서는 일선 현장에서 2종 오류로 인한 사용자의 비용이 자칫 막대할 수 있다. 특히 지난 몇십 년간 한국의 대기업은 학벌 등의 스펙만으로 주먹구구식 채용 정책을 운영했다는 비판이 있다. 좋은 학교 나왔으니 일도 잘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뽑았다가 수많은 2종 오류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잘못된 인재를 채용할 경우 그 연봉의 5배에 달하는 손실이 회사에 가해진다고 한다(매일경제, 2012). 그만큼 사용자에게도 인재를 가리는 절차를 개발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 절차를 개발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자 그간 많은 기업에서 위험부담이 덜한 비정규직 채용으로 이를 대신한 것이다.
지난 글에서 우린 기존의 정규직-비정규직의 카테고리에 노력이라는 기준이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러자 곧장 현실적인 문제제기들이 들어왔다. 모두를 정규직으로 뽑으라는 이야기냐, 함부로 정규직으로 뽑았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냐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실시되고 있는 무기계약직 전환도 살펴보았다. 사용자들에게 적합한 채용 프로세스를 개발할 의무가 있음도 살펴보았다.
물론 무기계약직은 고용안정성만 보장받을 뿐이다. 만약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근로자에 비해 임금을 적게 받는다면 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 처우 조항 위반 문제의 소지도 있다.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더 큰 변화를 위해 항상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할 이유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의식을 뜬구름 잡는 소리라 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노동 현실의 발전은 ‘불가능한 꿈’을 가졌던 시민들의 ‘리얼리스트’적 대안의 연속으로 이루어졌음을 언제나 상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