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지만, 아직 그 정확한 정의는 합의된 바가 없다. 그저 4차 산업혁명의 수단으로서 기계학습과 인공지능이 거론될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정의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4차 산업혁명이 우리 노동법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4차 산업혁명에서 초연결을 구축하고 초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플랫폼(platform)이다. 4차 산업혁명, 결국은 플랫폼이 주인공이다. 플랫폼은 승객이 타고 내리는 승강장을 의미한다. 플랫폼 기업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광장 또는 시장을 제공한다.
- [객원칼럼]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전찬열, 경남일보, 2018.11.12
'타다'는 플랫폼 기업의 전형이다. 운송수단이 필요한 고객과 손님이 필요한 운전자는 타다라는 플랫폼 위에서 '초연결'에 합류한다. 손님은 편안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어 편하고 운전자는 손님을 쉽게 찾을 수 있어 편하다.
문제는 '타다'에 있다. 손님과 운전자를 연결해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은 타다 측에 근태를 일일이 보고해야 하며,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다. 그저 운전자와 손님을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법인 택시처럼 운전자를 고용하여 사실상 사용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타다는 더 이상 4차 산업혁명의 선구자, 혁신이 아니라 노동법 위반 기업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노무 제공자가 근로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사용 종속성'의 유무를 따져야 한다고 판시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기준들에는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할 것',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인 업무 지시 등을 받을 것' 등이 있다(대법원 2006.12.7, 대법2004다29736).
앞에서 언급했듯 타다 운전자들은 타다로부터 출퇴근 시간을 부여 받고 근태도 보고해야 한다. 업무 지시를 받는 셈이다. 또한 타다 근로자들은 손님을 태우든 태우지 않든 시간 당 만원의 임금을 받는데, 이는 타다 운전자들이 개인 사업자가 아닌 근로자 신분임을 방증한다. 치킨집 사장님이 치킨을 몇 마리 팔던지간에 매 시간마다 프랜차이즈 본사로부터 시간당 얼마 간의 급여를 받는다면 더 이상 그는 자영업자라고 불리기 힘들다. 타다 운전자들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타다를 기소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정부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그 당황한 기색이 당황스럽다.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이다. 타다는 노동법을 위반했고, 검찰은 타다를 기소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인사들이 당황하는 것은 타다가 노동법을 위반했다는 사실 관계 자체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노동법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머신러닝이나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 발전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혁명'은 나빴던 것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타다가 4차 산업혁명의 모범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혁명도 아니다. 최저임금법도 지키지 않는 기업이 우리의 모범이라면 나빴던 것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빴던 것이 더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아닌가? 그걸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