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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ep 07. 2020

불멍과 물멍

믿어 의심치 않는 변주

불멍, 모닥불 타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멍 때린다는 뜻이다. 물멍은 유사품인데, 물 흐르는 모습 보면서 멍 때린다는 뜻이다. 멍 때리는 일이야 물불 없이도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을 보며 물을 보며 멍을 때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묘한 안정감 때문이다.


사진출처 토목신문


모닥불도 강물도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닥불은 제 테두리를 조금이라도 가만 두지 않고 춤을 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미야자키 하야오, 2004)’의 ‘캘시퍼’처럼, 모닥불은 정신없이 움직인다. 강물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흐른다. 모닥불은 고여있지 않고 강물도 꺼지지 않는다.


다만 둘의 움직임에는 규칙이 존재하는데, 모닥불은 제 아무리 춤을 춰도 장작 너머로 벗어나지 않고 강물 역시 제 아무리 흘러도 역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모닥불도 강물도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범위 하에서만 움직인다.


캘시퍼(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으로부터 안정감을 얻노라 착각하며 산다. 글쎄, 우리는 오히려 ‘다소’의 변주에서 오는 안정감을 향유하지 않았을까. 변하긴 변하되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변화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강물은 흐르되 역류하지 않는다. 모닥불이 춤추되 장작 넘어 큰 불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한에서의 변화에 도리어 안정감을 느낀다.


불멍도 물멍도 ‘믿어 의심치 않는 변주’다. 저기 가만히 있는 산자락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이유도 그 산등성이가 매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기 때문이다.


Three Studies of George Dyer(프란시스 베이컨, 1966)


그러므로 다소 약간만의 변화에 믿음을 얹어 불안한 내심을 날려보려 한다. 불멍 앞의 불안은 열기에 녹아내리고 물멍 앞의 불안은 강물 속에 흘려보내면  일이다. 그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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