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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 cool Sep 14. 2021

빌어먹을 힘

30대에 꿈을 꿔도 될까요?

지난여름, J를 처음 만났다. 


J는 많은 일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영상 촬영과 편집도 하다가, 글도 썼다가, 돈 벌 수 있고, 시간이 보장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했다고 했다. 좋게 말하면 재능이 많고 적응력이 남다른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뭐 하나 진득하게 한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방랑 시인 같은 사람이라 이곳에서 하는 반복적인 일이 영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내 예감처럼 그는 때론 지쳐했고 버거워했다. 


여름날, 축 늘어진 솜이불 같았다. 


'빌어먹을. 그놈의 돈이 뭐기에' 딱 이 말이 J의 등에 크게 새겨 있었다. 저렇게 지내다 찬바람이 불면 또다시 훌쩍 떠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가 끝나고 사무실에 들린 날, 오랜만에 만나 J의 얼굴이 사뭇 달라 보였다.


"얼굴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었어?"

질문을 던져놓고도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냐니. 아차 싶었다. 너무 못된 심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어떤 대답이 듣고 싶었던 걸까?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거든

"뭔지 물어봐도 돼?"

"밥집."

"응. 밥집."


뭐라고? 밥집?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밥집이라니. 그것도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뚱한 내 표정을 읽은 듯,


"내가 정성껏 지은 밥을 손님이 깨끗하게 비우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J가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 다시 말을 해왔다. 부끄러웠다. 30대에 꾸는 꿈이라면 적어도 좀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속물인지 J에게 다 들킨 것 같았다. 

“이제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 축하해.” 


 J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탈출을 하려면 아직 더 견뎌야 하지만, ‘꿈’이라는 한 글자가 그에게 버텨야 할 이유를 만들어줬다고 했다.  J는 이제 빌어먹어도 웃을 수 있고,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어른도 꿈을 꿀 때, 웃을 수 있다는 걸 J를 통해 배웠다.


그런데 내 꿈은 뭐지? 갑자기 책상 앞에 앉아 주섬주섬 메모지를 꺼낸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사람인지 적어볼 차례다. 가만있어보자. 내가 꿈이 있었나? 내 꿈은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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