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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 cool Sep 25. 2021

나는 얼마짜리 사람일까?

내 노동력에 대한 가격을 책정하는 일

프리랜서는 혼자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그중 제일 중요한 일은 바로 내 노동력에 대한 가격을 정하는 일이다. '저는 한 건의 프로젝트당 천만 원을 받겠어요.' 하면 제일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돈을 줄리가 없다. 어느 정도 정해진 페이는 있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1n연차가 되다 보면, '페이는 얼마 정도 드려야 될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접하게 된다. 


글의 값어치를 어떻게 매기면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음식 장사를 한다면 재료값에 나의 인건비를 적절히 더해서 팔 것 같은데, 글을 쓰고 나서는 얼마를 받아야 적절한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글 한 편에 내가 들인 시간과 몸과 마음은 어떤 기준으로 셈하여 돈으로 환산하면 좋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몰라도 공짜로 기고할 수는 없었다. 돈을 받지 않고는 오랫동안 지속할 힘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프리랜서 작가이고, 다양한 종류의 원고를 쓴다. 모바일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내레이션 원고를 쓰기도 하고, 기획안을 만들기도 하고, 또 광고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영상에 따라 촬영 현장에 나가서 직접 참여해야 할 경우도 있고, 여러 차례 회의를 해야 할 경우도 있고, 여러 차례의 수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은 정기적으로 해오는 일이라 메일로 자료만 받고, 나는 원고만 작성해주고 넘기면 끝인 비교적 간단한 일도 있다. 즉,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고 그에 따라 페이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얘기다. 어렵고 복잡하고, 셈해야 할 게 많지만 '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프리랜서로 살면서 일과 나를 지켜나갈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보통 2가지 기준의 페이가 있다.

방송 프로그램과 모바일 콘텐츠 


방송 일은 내가 고사하는 경우가 많으니, 대부분의 원고 청탁은 모바일 콘텐츠 관련 업무이고, 분량은 10분 내외로 내가 생각하는 기준의 페이를 먼저 제시한다.

 

저는 모바일 콘텐츠 10분 내외 분량은 1편당 얼마를 받고 있는데요.
생각하시는 예산과 페이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렇게 내 기준이 정해져 있으면 페이를 조정하기도 편하다. 의뢰하는 쪽에서도 터무니없는 페이를 제시하지 않고, 만약 내 기준보다 한참 적은 액수의 페이를 제시해야 할 경우엔 내가 수긍할 수 있는 다른 조건을 함께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예 말도 안 되는 액수를 생각한 경우엔, 클라이언트 측에서 이번엔 예산이 너무 적어서 의뢰하지 못할 것 같다고 물러서는 경우도 있다. 


일을 못하게 될 경우에 손해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보다 훨씬 적은 페이를 받으며 일로 굉장한 보람과 만족을 느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믿고 거르는 것이 정신 건강에 훨씬 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처음만 어렵지, 몇 번 하다 보면 당연한 절차와 과정이 된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페이 문제가 원만하게 정리되지 않는 곳과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노하우(?)도 생기게 된다. 보통 이런 문제가 깔끔하지 않은 곳은 나중에 입금 시에도 잡음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받는 일 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 내가 믿고 거르는 멘트가 있다. 

이번은 좀 싸게 해 주시면, 다음에 잘해드릴게요!


일거리를 잡겠다는 욕심에 이번에 내가 좀 저렴하게 잘 마무리하면, 다음엔 제대로 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한다면, 과감하게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말했던 곳 중 다음에 제대로, 혹은 더 두둑이 페이를 받은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지난번에도 그 가격에 해주셨잖아요! 사정 아시면서! 좀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들으며, 잘못 끼워진 그 첫 단추가 나의 발목을 잡은 적이 더 많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첫 시작부터 이런 멘트를 하는 곳과는 다정한 거절을 통해 잘 마무리하는 편이다.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한 기준보다 형편없는 돈을 받고 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떻게 들어온 기회인데,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다가 돈도 못 벌고, 다시 일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할 때가 나도 있었다. 그들도 내가 아니라도 일할 사람이 충분한 만큼, 나 역시 열심히 두드리면 밥벌이할 충분한 거래처가 있다는 자신감으로 살면 된다. 가뜩이나 팍팍한 세상인데, 나까지 기죽이며 살지 말자. 나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날 지지하고 믿어줘야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페이를 받았다면, 성심 성의껏 그에 합당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란 것도 잊지 말자. 프리랜서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건 결과물과 페이로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직업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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