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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Sep 03. 2024

김단이, 소심하고 내향적인, 그러나 야망 넘치는 배우

2024-07-10, 뮤지컬 배우 김단이 인터뷰

열심히 안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에요. 물론 당연히, 아직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고 그럴 연차지만요. 춤도 몸치였고 노래도 음치, 박치였는데 하고 싶다는 이유, 열망 하나만으로 노력해서 지금까지 온 거니까, 끈기랑 인내는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을 것 같아요.

여우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한여름이라 햇빛은 따가운데, 아주 잠깐 사이 여우비가 스치고 지나가면서 땅이 물에 푹 젖어 습기가 훅훅 피어오르던 날. 작고 깜찍한 정원이 마련되어 있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단이를 인터뷰한 날이 바로 그런 7월의 여름날이었다.


이날도 역시 반차를 쓰고 나온 탓에 인터뷰 시간 간당간당하게 카페에 도착했다. 사진 촬영을 먼저 하라고 얘기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인터뷰이보다 늦는 게 싫어서 안달복달했는데, 카페에 도착하자 테이블에 사이좋게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사진기자와 랑 홍보팀, 그리고 김단이 배우가 보여 마음을 놓았다. 사진 촬영은 신속하고 깔끔하게 끝난 모양인지 프리뷰 파일을 보여주는 사진기자 친구의 눈빛에 의기양양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확실히 재기발랄하고 에너지 넘치는 어린 친구들은 사진을 찍을 때도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는 김단이를 잠깐 바라보았다. 어려보인다, 앳되다, 동안이다... 그런 게 아니라 김단이는 실제로 '어리다'. 그래서 나는 질문지를 준비하며 꽤나 고군분투해야 했다. 생각보다 정보도 너무 적고, 소위 말하는 MZ의 끝판왕격인 나이대의 신인 배우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서울자치신문
왜 당신을 인터뷰해야겠냐고 생각했냐면

뮤지컬 <비아 에어 메일>의 막공 무대인사 영상이 한동안 타임라인을 떠돌았다. 메일보이 역을 맡은, 앳되기 짝이 없는 배우가 비장하게 걸어나와 인사를 하다가 표현 그대로 '뿌앵!'하고 울어버리는 영상이었다.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훌쩍이면서 더듬더듬 인사를 해나가는 배우의 목소리가, 그 표정이, 눈물범벅이 된 뺨 위로 부서지는 조명빛보다 더 반짝이는 눈빛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아, 이 배우 한 번 인터뷰해보고 싶다.'


@JINGIIPIC

그 영상이 어디 있을텐데... 못 찾아서 트위터에서 사진으로 가져왔다(트위터 외 재업로드 가능한 사진임). 정말 말 그대로 뿌앵, 아닌가. 그리고 이날 무대인사에서 뮤지컬을 그만두려고 했다는 얘기도 했다고 들어서 사연이 궁금해진 것이다. 세상 어려보이는 이 신인 뮤배는, 어떤 고민과 어려움들이 발목을 잡았길래 무대를 떠나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어떤 사람이길래 무대 위에서 저렇게 솔직하고 천진하게 자기 감정 그대로 울어버릴 수 있는 걸까.


어쨌든, 그래서 김단이 배우의 차기작이 뜨면 인터뷰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블데드> 캐스팅이 타이밍 좋게 뜬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안영수 대표 인터뷰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라 인터뷰 컨택하는데 부담이 덜한 점도 있었고, 이래저래 일사천리로 일정이 세팅됐다. 그리고 인터뷰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대와 어떤 식으로 대화하며 인터뷰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쓸데 없는 고민이었다.


보기와 다르게 소심하고 내향적인 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당신은 역시 MZ야

김단이는 말을 잘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해보자면, 말을 '씩씩하게' 한다. 서두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비아 에어 메일> 막공 무대인사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막공 때 우는 모습을 보고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김단이는 흡사 만화 캐릭터처럼 웃고, 의성어를 쓰며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을 들이밀어도 머뭇거리거나 난감해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이 어린 친구, 심지어 푸릇푸릇 자라나기 시작한 새싹같은 친구를 곤란하게 할 질문 같은 걸 할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지. 그래도 '주어진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씩씩하게 대답하는' 김단이의 모습에 나는 무대 위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솔직하고 발랄한, 전형적인 Mbti 'E'인 배우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한 편이에요(웃음).
지금까지 맡아왔던 캐릭터들은 밝고 꿈과 희망이 있고 생기발랄한 캐릭터가 많았지만 저는 생각보다 생긴 거에 비해 차분하거든요.
애늙은이 같다는 얘기 자주 들어요."

하지만 김단이는 이런 나의 섣부른 추측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자신은 ISTP였는데, 최근 설문이 바뀌었다는 말에 다시 해봤더니 INFP가 나왔다는 거다. I는 변함이 없고 나머지가 다 절반. 내향인인 건 확실하다는 김단이는 자신의 성격이 어릴 때부터 꽤 소심하다고 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동료 배우들과(<이블데드>에서 특히)어울리고 대화하는 것을 보면 천상 인싸 같은데, 극내향 I라니. 김단이는 이런 자신의 성격이 어린 시절 최연소 걸그룹 '걸스토리'로 데뷔하면서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한 영향도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연예부에서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가끔 회식자리에서 연예부 선배들에게 귀동냥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게 '연예계'란 어떤 거대한 소용돌이(by 이토 준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곳에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활동을 하고, 일찍 해체도 하고, 그리고 또다른 삶을 준비해서 이렇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니. 뮤지컬 배우가 되어 일찌감치 인생 제 2막을 시작한 이준우(피겨 선수 이준형이 아직도 내게 더 익숙하다는 건 어쩔 수 없다) 배우나 이렇게 내 눈 앞의 김단이 배우 같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감탄을 넘어 존경심까지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이런 똘똘하고 악바리 같은 면모를 인터뷰에 가감 없이, 그리고 애정을 담아 녹여내기 위해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좀 많이 끙끙거렸다. 어떻게 해도 이 조금 소심하고 내향적이지만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MZ 소녀의 문법을 기사체로 완벽히 재현해낼 수 없어서 말이다.


ⓒ서울자치신문
이렇게 기특한 99년생이 또 어디있지

인터뷰 도중, 본인이 직접 말해줬다고는 해도 아이돌 활동에 대해 묻는 게 어쩐지 조심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걸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를 묻는 게 '어른의 나쁜 호기심' 때문처럼 보일까봐서?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뮤지컬 배우 김단이'에 대해 대화할 때 과거의 비중이 그렇게 높을 필요가 있겠냐는 내면의 브레이크 때문이기도 했다. 인터뷰이의 사적 영역을 어디까지 언급하고 끄집어낼 것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그렇게 수없이 인터뷰를 했음에도 여전히 인터뷰를 할 때마다 고개를 드는 의문이 이날 또 한 번 나를 괴롭힌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걸스토리' 시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단이의 본명은 김채영이다. '단이'라는 이름이 흔한 느낌은 아니라 예명인가 싶었는데, 김단이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불릴 단(鍛)에 이로울 이(利)를 써서, '단이'. 조심스럽게 이름을 바꾼 이름을 묻자 시원시원하게 답변이 돌아왔다. "예전 활동 때문도 없지 않아 있지만, 뮤지컬을 하면서 새로운 나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라고. "이름이 엄청 안 좋은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묘하게 제 이미지와 잘 붙는 느낌이 아니었다고 해야 하나... 뭔가 좀 쉽게 잘 부를 수 있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이름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 단이로 바꿨어요." 참고로 원래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이름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무척 상심하셨다고(ㅋㅋㅋ)



덧붙여, 쉬는 날은 집에 누워있는 걸 좋아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사람들 연기하는 모습에 집중해서 보게 되는 바람에 잘 안 본다는 김단이의 취미는 애니메이션과 만화 감상이다. 요 근래 재미있게 본 만화가 있냐는 질문에 김단이는 눈을 데굴 굴렸다. "이거 그거죠, 오타쿠를 향한 머글의 순수하지만 잔인한 질문... 제가 대답하면......." 아아. 사진기자 친구와 나는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마세요, 당신 앞의 이 기자 언니도 오타쿠랍니다. 차마 그렇게 대답은 못했지만 표정에서 어떤 희미한 신뢰를 읽은 것일까. 김단이가 첫 손에 꼽은 '최애작'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였고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그래요, <보쿠아카>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훌륭해.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 뒤, 기사를 쓰기 위해 노트북에 앉아 녹취록에 앉은 나는 문장 하나하나 사이에서 기특함이 뚝뚝 흘러내리는 김단이의 '말'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군더더기 없이 알차고 즐거운 대화로 가득찬 녹취록을 이리저리 뜯어내고 재조립하면서 버릴 말이 거의 없는 점에 대해 곤란해하던 나는 문득 인터뷰가 끝난 뒤 곧바로 오디션을 보러 가던 김단이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분명한 건, 이 내향적이지만 씩씩한 99년생 신인 김단이는 정말 똑부러지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배우 너머 한 '사람'이 주는 느낌이 그랬다. 아직 어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한히 긍정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자신을 숨기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며 순수하게 울어버릴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이제 정말 소처럼 일할 모든 환경이 갖춰진 자칭 '야망가' 김단이의 필모그라피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 듣자하니 <이블데드> 막공에서도 또 '뿌앵'하고 울었다던데, 과연 언제까지 막공에서 '뿌앵단이'를 볼 수 있을지도 기대해 본다! 


▶인터뷰 전문 보러 가기

[캐스팅보드] ‘소심하고 내향적인 야망가’ 김단이를 소개합니다①

[캐스팅보드] '이블데드' 만난 김단이, “인생에서 키 크다는 얘기 처음 들어봤어요”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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