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벙커 트릴로지>, 베개를 통해 읽는 죽음과 안식의 메타포
※이 포스팅은 연극 <벙커 트릴로지> 중 <아가멤논>과 <모르가나>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겨우 한 번씩 봤다. 심지어 트릴로지 중 <맥베스>는 아직 보지도 못한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극을 보고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을 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최근 꽤 연약해진 뇌세포를 꽉 조이기 위해서다. 지금 써두지 않으면 내일의 나, 아니 당장 세 시간 후의 나는 이 몰아치는 생각의 파도를 제대로 기억해서 써낼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벙커 트릴로지>. 극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하기엔 제목이 너무나 많은 것을 드러낸다. 말 그대로 '벙커'를 배경으로 하는 '삼연작'이다. 아더왕 이야기를 베이스로 한 <모르가나> 아가멤논과 클리템네스트라의 이야기를 베이스로 한 <아가멤논> 그리고 유명한, 너무나도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트릴로지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원전들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야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아더왕이나 맥베스 역시 영미문학권에선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이야기들이지만, 이걸 어떻게 '벙커' 안에 녹여낼 지는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트릴로지를 챙겨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티켓팅부터가 쉽지 않았다. 겨우 100명 남짓 들어가는 홍아센(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내 자리 하나 확보하기 위해선 치열한 피켓팅이 필요했다. 내가 성공한 건 겨우 두 자리, <모르가나>와 <아가멤논>뿐. 만약 근시일 내에 <맥베스>의 자리를 구한다면 전체적인 후기도 '트릴로지'식으로 새로 쓰는 일이 벌어지겠지만, 우선은 내가 본 두 극, <모르가나>와 <아가멤논>에 대해 쓰려고 한다.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었다."
벙커라는 제목은 특별한 은유가 아니다. 벙커는 말 그대로 벙커이며, 장소적 배경이자 심리적 배경으로 병사들과 관객들을 이 극에 잠기게 만드는 장치이다. 우리는 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제1차 세계대전의 어느 참호 속에서 병사들과 함께 갇혀있다. 좁고 퀴퀴하고 가끔은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불편함이 어른거리는 그 공간은 '편안한 관극'이 불가능하게끔 만드는 극의 전제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천만 명의 병사들의 진실을 알아달라'고 얘기하는 이 극의 목소리는 '우리와 함께 참호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지켜봐달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참호 속에 떠도는 100여 명의 유령들처럼, 함께 숨쉬고 지켜보고 듣고 때론 눈물지으면서도 현실에 개입할 수 없는 죽은 병사들의 영혼처럼 참호 안에서 병사 1, 2, 3, 4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대업을 받아 들인다.
전쟁이 극의 배경인 순간 이 극은 필연적인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구시대적 영웅서사(모두 전쟁에서 비롯된 신화 속 영웅들의 탄생처럼)와 같이 전쟁을 다룬 극이라도 누군가의 용기와 누군가의 희생이 극을 관통하는 주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참호 속을 떠도는 유령들은 처음부터 이 트릴로지를 '아름답게' 볼 수 없는 조건에 처해있다. 이 작은 참호 밖은 당장이라도 내 머리에 총알을 퍼붓고자 하는 적들로 가득하고 안에는 절망과 비애만이 스모그처럼 자욱하게 깔려있다. 적군으로 가득한 들판을 미친 사람처럼 혼자 내달리는 것과 어두운 참호 안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르고-"시간을 알아야 지금이 몇 시인지, 밤인지, 아침인지, 내일이 오는지, 이번 달이 지나고 다음 달이 오는지,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오는 지 알지!!"-갇혀서 적군의 저격수에게 머리가 날아갈 공포에 떠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정신 건강에 좋을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사는 현실은 그들의 전쟁터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참호 속의 유령인 나는 참호 안의 이들이 서서히 좌절과 절망 속에 미쳐가는 것을 보며 이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공포인 전쟁이 벙커라는 공간으로 협착되는 것을 목격한다.
공포는 인간을 단숨에 지배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럽고 숨막히는 공포는 흡사 손과 발끝이 썩어드는 것처럼 서서히 찾아온다. 공포의 냄새를 맡는 것, 공포가 좀먹어드는 몸뚱어리를 자각하는 것. 군화 안의 부은 발을 끊임없이 주무르는 가웨인처럼, 손발 끝부터 잠식해드는 공포가 기어코 심장을 뜯어먹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우리가 미쳐가는 시간, 고통받는 시간과 비례해 우리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든다. 가장 큰 공포는 가장 오래된 공포와 늘 같은 선에 서있다. 그래서 극의 처음은 우리도 웃으며 지켜볼 수 있다. '우린 살아돌아갈 수 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
<아가멤논>의 노래하는 저격수와 아돌프 가 그랬고 <모르가나>의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그랬듯, 주인공에게 기대하는 생존 서사가 힘을 발휘한다면 참호 속의 유령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극 속에서 처음과 같이 영원히-아멘-웃으며 벙커를 떠나는 병사들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희미하게나마 걸어본다. 그러나 70분의 시간 동안 우리가 품었던 그 희미한 기대는 점점 휘발되고 빛이 바래 끝끝내 절망에 뒤덮이고 병사들은 공포를 끝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도망치게 된다. 죽음, 혹은 광기로. 좌절과 절규에 몸부림치는 병사들의 비통함은 군번줄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참호 안에 울려퍼진다. 그리고 누군가 무대의 바닥, 참호에 드러누워 대자로 죽어나간 뒤에야 우리는 맥베스의 그 유명한 독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었다".
▶나의 안식이여, 나에게 구원을 주소서, 죽음이라는 구원을.
다시 한 번 거듭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맥베스>를 보지 못한 자의 후기임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아가멤논>을 처음 보고, 오늘 <모르가나>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느낀 가장 큰 궁금증은 '과연 <맥베스>에선 누가 베개로 죽임을 당할 것인가?'였다.
<벙커>는 트릴로지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법칙'이란 자의적인 개념이다. 내가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 쓰는 사람도 아니지만, 트릴로지라고 할 때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그런 법칙 말이다. 연작을 관통하는, 혹은 연결하는 배경이나 소품, 혹은 장면들이 있을 것. <아가멤논>만 보곤 알 수 없었던 그 연결고리가 <모르가나>를 보고 나니 명확해졌다. 물론 작품 안에는 더 많은 연결고리들-군번줄과 휘파람, 촛불 등-이 있겠지만 <아가멤논>과 <모르가나>를 보고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연결고리가 바로 베개였다.
<아가멤논>에서 크리스틴은 자신의 아기를 살해한 침입자를 베개로 눌러 죽이려다 실패한다. 그리고 클리템네스트라가 된 크리스틴은 결국 황금 마스크를 뒤집어 쓴 아가멤논-알베르트-의 얼굴을 베개로 덮어 짓눌러 살해한다. "이제야 겨우 내가 알던 얼굴이 됐네." 황금 마스크를 벗겨낸 아가멤논의 맨 얼굴을 바라보는 클리템네스트라 역시 그제야 마스크를 벗고 크리스틴의 얼굴로 돌아온다. <모르가나>에서도 마찬가지다. 턱이 날아간 가레스는 자신의 얼굴을 베개로 짓눌러 스스로를 죽이려다 실패한다. 그래서 가레스는 휘파람 같은 소리로 가웨인에게 죽음을 부탁하고, 절대 그럴 수 없다 고개를 젓던 가웨인은 친구의 얼굴 위로 베개를 짓누른 채 주기도문을 외운다.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맥베스> 역시, 이런 장면이 나올 것이라 추측해본다. 아니, 추측이라기보단 확신이다.
베개는 '낮과 밤의 경계'에서 사람들을 밤의 안식으로 인도하는 도구다. 잠들고 싶을 때 인간은 베개에 머리를 뉘이고 그렇기에 크리스틴은 아기를 위한 베개를 만들고, 가웨인의 어머니는 전쟁터에 떠나는 아들을 위해 베개를 만들어 들려보낸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베개는 단 한 번도 제 용도로 쓰인 적이 없다. <아가멤논>의 알베르트는 등을 기대고 잠들지 못하는 지친 병사다. <모르가나>의 가웨인은 누군가 잠들기 전까지는 결코 잠들 수 없는, 그래서 아무도 그가 잠든 모습을 볼 수 없는-심지어 그 자신을 포함하여- 예민한 병사다. 잠들 수 없는 곳,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진 베개가 쓸모있는 순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이 영원한 잠에 빠지는 순간 뿐이다. 죽음 말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 묘사한다. 고통스러운 이 생의 삶에 마침표를 찍고,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영원히 깨지 않는 잠에 드는 것.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한 <아가멤논>의 알베르트가 그렇고, 고통 속에서 죽여달라 쉭쉭 휘파람처럼 새는 소리로 울부짖다 마침내 조용해진 <모르가나>의 가레스가 그렇다*. 잠들지 못하는 불안의 밤을 헤매던 병사들은 살해당한 뒤에야 겨우 안식에 든다. 그들을 사랑한 이들이 그들에게 안겨줄 때 바랐던 건 그런 결말이 아니었겠으나, 베개는 결국 돌고 돌아 마침내 조금은 왜곡된 방식으로 그들에게 안식과 구원을 준다. 관념적 의미의 '잠'이라는 안식과 구원을. 그야말로 '나를 죽이러 온, 나의 구원자' 그 자체다.
생각보다 더 촘촘하게 구성된 극과 극 사이의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쓰고 싶고, 극을 끌어가는 배우들의 대단함에 대해서도 한 번쯤 쓰고 싶은데 <맥베스> 못사라는 것이 마냥 마음에 걸려 이 글은 여기서 접고자 한다. 부디 빠른 시일 내에 <맥베스>를 보고 다시 한 번 <벙커 트릴로지>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한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베개를 베고 잠들지 못하는 가웨인조차, 모르가나의 무릎을 베고서야 겨우 잠이 든다. 그들 스스로 모르가나라 이름 붙인 그 여신은 천만 명의 병사들의 꿈이 아닐까
**그러니까 <맥베스> 양도표가 보인다면 제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1588-른달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