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운동장을 떠나, 무대에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고 쓴다는 것
기자를 그만 둔 지 벌써 1년하고도 반 정도가 지났다. 이제 더 이상 기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스스로도 다소 어색해하던 시간들이 그만큼이나 흘러갔다는 뜻이다. 어쨌든, 일을 그만 둘 때부터 스스로에게 수없이 강조했던 말이지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제 나는 더 이상 축구 전문 스포츠 기자가 아니다.
이런 곳에 앉아 90분 동안 22명의 남정네(가끔은 여자 선수들도)들이 공 하나 쫓아 우르르 뛰어다니는 걸 지켜보며 살았던 9년 여의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은 건 의외로 필드 자체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축구를 볼 수 있고, 여전히 축구계 사람들-스스로 족쟁이라고들 부르는-과 술을 마시고, 여전히 축구에 관한 글을 쓴다.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물론 고맙게도 일을 그만 둔 뒤, K리그 사진집과 네이버 스토리텔러 기획 등으로 인해 짧게 짧게 인터뷰 할 기회들이 생기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운동장 안의 선수들과, 감독들과, 그리고 때로는 선수도 감독도 아닌 그 어떤 관계자들과, 정해진 이야기들을 형식적으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 속내를 짚어내고, 가끔은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무례한 대답을 받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나눈 대화, 질답을 정리해서 하나의 글로 만들어내고 나면 느껴지던 인터뷰만의 뿌듯함이 있다. 만나서는 대화에 집중하고,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 녹취록에서 뒤엉키는 목소리를 가닥가닥 따라잡아 나가며 찰흙놀이하듯 한 덩어리의 글로 뽑아내고, 그 안의 문장들을 육성으로 된 구어에서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어로 다듬어낸 뒤 완성해 낸 인터뷰 기사를 보고 인터뷰이가 수줍게 하트 이모티콘 하나 보내오면 그게 그렇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진행해가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꼭 선수가 아니라도 좋았고, 꼭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도 좋으니 사람과 만나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느낀 감정과 이야기를 덧붙여 글로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일을 그만두기 직전, 모 서울 지역지의 객원기자 자리를 권유한 친구의 제안에 흔쾌히 그러마고 했던 건 아마 인터뷰에 대한 이러한 애정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몸담았던 스포츠라는 영역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연극과 뮤지컬이라는 세계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배우들과의 인터뷰는 여러모로 내게 많은 것들을 남겨주었다. 객원기자 일을 하면서 만나본 무대 안팎의 사람들에 대한 소고를 어딘가에 남기고 싶다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중 하나다. 마음 먹은 지 1년이 넘어서야 겨우 브런치에 한 꼭지를 쓰게 됐지만, 지난 인터뷰들을 백업하며 만나왔던 배우들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덧붙여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