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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Aug 18. 2022

이석준, 연극이 끝나면 꼭 앓는 배우

2020-10-28, 연극 <아들> 인터뷰


내가 원래 연극 하나 끝내고 나면 이틀 정도 호되게 앓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평소보다 좀 더 많이 아플 것 같아요.



인터뷰 일시:2020년 10월 23일 

인터뷰 발행:2020년 10월 28일


배우 이석준을 생각할 때마다 이 말이 함께 떠오른다. 이 말은 그가 인터뷰 때 했던 이야기인데, 단 한 마디로 그가 무대에 얼마나 온힘을 기울이는지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어서인 것 같다. 2년 전 가을, 지금은 없어진 대학로의 카페 엘가에서 배우 이석준과 처음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연극열전의 8번째 시즌 세 번째 작품이었던 <아들(Le fils)>와 관련한 인터뷰였다. 서울자치신문(당시에는 강남신문과 함께 나가는 자매지였던) 객원기자로는 처음으로, 스포츠가 아닌 연극/뮤지컬계 인물과는 처음으로 갖는 인터뷰였기에 질문지도 나름 꼼꼼히 준비하고 제법 긴장도 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철칙 중의 하나로 생각했던 게 취재원과 사진을 찍지 않는다, 였기 때문에 서울자치신문에서 객원기자로 재능기부(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으니까 재능기부 외의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군)를 하면서도 결코 배우들과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석준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로 만났을 때는 더 자신을 단속하게 되는 성격이다보니 평소 좋아하던 배우였음에도 내 수중엔 그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아쉽지만 일에 있어서 이게 내 폴리시라면 폴리시니까. 그래도 분명한 건, 그날 인터뷰를 진행하는 40여 분 남짓한 시간 내내 '연극, 뮤지컬 쪽에서 진행한 첫 인터뷰가 이석준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다.


워낙 말 잘하는 배우인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수년간 대학로에서 '이야기쇼'를 이끌어 온 진행능력으로 검증된 배우인데다,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배우로 지낸 '짬'만 생각해도 갓 데뷔한 신인들이나 말재간 없어서 인터뷰할 때마다 진땀을 흘려야 했던 스포츠 선수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이석준은, 정말 말을 잘했다. 언변이 화려하다거나 고급스러운 수사를 많이 쓴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가장 적확한 답을 진솔하게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천포로 빠지는가 싶었던 수다도 어느새 원래의 길로 돌아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로 끝낼 줄 아는 사람. 진지한 이야기로 훅 치고 들어왔다가 농담 한 스푼 섞어 가볍게 흘려보낼 줄 아는, 그런 인터뷰이가 바로 이석준이었다. 


인터뷰를 브런치에 백업하기 위해, 당시 썼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새삼 그와의 인터뷰가 참 알찼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9년 가까이 스포츠라는 필드 안에서 진행했던 무수히 많은 인터뷰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결이 다른,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다시 읽어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 인터뷰를 하게 해줘서 배우 이석준에게 매우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연극열전

[캐스팅보드] 이석준 “<아들>, 끝나면 한동안 많이 아플 작품”


“다른 작품도 모두 그렇지만, 이 작품만은 정말 전력을 다했어요. 쉴 새 없이 달렸죠.”

배우 이석준(48)은 요즘 그를 걱정하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한창 상연 중인 연극 <아들(Le fils)> 때문이다. 연극열전8의 세 번째 작품인 <아들>은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가족 3부작’ 중 <아버지>, <어머니>에 이은 마지막 작품이다. 우울증에 걸린 아들 니콜라(강승호·이주승)를 둘러싸고 엄마 안느(정수영), 그리고 이혼 뒤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빠 피에르(이석준), 피에르와 재혼한 소피아(양서빈)는 그를 깊은 우울 속에서 끌어내기 위해 100분 내내 애쓴다. 그러나 결말은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고, 무대 위 배우들은 극이 끝난 뒤 커튼콜까지 치밀어 오르는 슬픔에 휩싸여 박수를 받는다.

120분의 무대 위에는 내내 긴장감이 휘몰아치고,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딛는 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과 깊은 슬픔이 배우들을 짓누른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눈물을 터뜨린 채 극을 마무리하는 피에르 역을, 매일 같이 원 캐스트로 소화하고 있는 이석준에게 걱정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23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석준은 “그 어떤 공연보다도 ‘어떻게 이걸 원 캐스트로 하냐’ 이런 얘기를 제일 많이 듣는 것 같다”며 웃었다. 실제로 <아들> 개연을 앞두고 이석준은 ‘지금까지 해온 극 중 가장 진 빠지는 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힘든 극을 많이 했지만 <아들>은 시작부터 도입부가 없이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해서 숨 쉴 부분이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걱정했던 게 <킬 미 나우>였고, 몸이 힘들었던 건 <M. 버터플라이>였다. 하지만 그 극들은 힘든 부분으로 가는 과정 전에 밝은 부분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들>은 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외줄을 타는 작품이다. 이석준은 “처음 대본을 읽을 때부터 불안, 긴장감이 있었다. 지금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아이(니콜라)가 너무 가는 선 위를 걷고 있으니까, 배역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다른 식으로 틀거나 워딩 하나만 바꿔도 휘청거린다”고 묘사했다.


- 아버지와 아들, 누구의 시선을 따라갈 것인가

이석준이 연기하는 피에르는 관객들에게 가장 미움 받는 캐릭터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석준은 조심스럽게 답을 내놨다. “공연을 본 관객들 중에 니콜라의 입장에 놓여본 젊은이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한참 말을 고르던 이석준은 “우리 팀 내에서도 리딩을 하고 또 연습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만 해도 젊은 배우들은 ‘나 정말 피에르를 이해 못하겠다’고 하고, 나나 어른들은 ‘이 이상 뭘 더 해줄 수 있나’고 고민스러워했다”며 “소위 말하는 ‘옛날 꼰대 마인드’로 접근했었던 거지. 그러다가 점점 ‘대체 어떤 말로 이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석준이 말하는 <아들>이라는 극의 좋은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아버지(피에르)와 아들(니콜라), 양 쪽의 밸런스가 다 갖춰져 있다. 보는 사람이 누구의 시선을 쫓느냐에 따라 작품의 색깔이 완전히 바뀐다”고 설명했다. “병에 대해 무지했다는 측면을 배제한다면, 피에르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사실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느냐에 따라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말한 그는 “세대 간에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렇게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른의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그리고 서로가 생각하는 위로와 공감을 어떤 말로 해줄 수 있을까 찾아봤다”고 돌이켰다.

확실한 건 이석준 본인도 아직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는 “제작사에서 이 작품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말을 적어달라고 했다. 다른 작품은 늘 쉽게 썼는데 이 작품은 너무 어려웠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같이 찾아달라고 썼다”며 “지금처럼 피에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도 좋고, 공감도 좋고. 모든 반응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 답을 찾아가는 것 같아 의미있다”고 미소를 보였다.


사진:연극열전

- ‘대학로 아들 부자’ 이석준이 말하는 두 아들

이석준은 대학로에서 소문난 ‘아들 부자’로 통한다. <킬 미 나우>, <킬롤로지>, <아들> 등을 거치며 ‘아버지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다. 여러 아들을 둔(?) 이석준은 “원래 이 나이 되면 다 아버지 역할을 하기 마련이고, 책임있는 어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내가 ‘아버지 전문 배우’가 된 유일한 이유는 내 나이대 배우들이 다 없어져서 그렇다”고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그는 “방송에서 좋은 역할 맡아서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배가 안 아픈데, 무대에서 좋은 역할을 내 또래 배우가 하면 배가 심하게 아프다. 이게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망했다”고 농담을 던지곤 “덕분에 감사하게도 좋은 작품을 손에 쥐게 돼 영광”이라며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에서 ‘아버지’ 이석준이 본 두 ‘아들’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이석준은 “본질은 다르지 않고 스타일이 다른 것뿐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갖고 있는 감정적, 정신적 폐해에 대해 같이 언급하고 얘기 나누고 공유를 하는 과정에서, 본질은 변하지 않았는데 두 배우의 결과물이 달라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매번 똑같은 공연을 하면서 겪는 매너리즘을 두 아들이 해소시켜준다. 젊다보니까 공연이 계속 발전하고 점점 좋아진다. 충격을 받을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석준은 두 아들 중 이주승과 2018년 연극열전7 <킬롤로지>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호흡을 맞췄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이)주승 씨는 연극을 많이 해본 사람이 아니다.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이고, 내가 봤을 땐 영화에서도 굉장히 본능적인 연기를 하던 친구다. 묘한 슬픔과 공포감이 공존해있는 이미지가 니콜라와 잘 맞지만 테크니컬한 부분은 아직 거칠어서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런데 이 작품은 맞춤옷 같다. 처음부터 느낌이 그랬고, 그 친구의 화술에서 살짝 무너지는 부분도 니콜라 같았다. 연습할 때도 감정이 직접적으로 치고 들어와서 ‘뭐지?’ 싶을 정도로 동물적인 게 있었다”고 말한 이석준은 “이걸 연결시켜서 두 시간 동안 끌고 나가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조각조각 나있었던 게 어느 순간부터 붙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가 이 인물로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것 같더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강승호에 대해선 “워낙 테크닉이 좋은 친구다. 공연 뮤지컬 계에서 워낙 잘 ‘굴러먹던’(웃음) 친구라 능글능글한 게 있다”고 말문을 연 뒤 “이 인물을 본인이 너무 사랑해서 잘 표현하고 싶은 거다. 테크닉을 살려서 인물 외적인 표현을 굉장히 잘하는데, 니콜라는 실제로 내면적인 인물이다 보니 드러나는 것보다 숨겨야 하는 게 훨씬 많다. 야구에서 투수들 공 던질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속도가 안 나오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 있더라. ‘좋은데 힘 좀 빼고 하자’ 그랬는데 어느날 갑자기 힘이 확 빠졌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그렇게 되면서 갖고 있는 테크닉을 안쪽으로 훅 가지고 들어가니까 굉장히 좋아졌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많이 칭찬했던 것 같다”고 말한 이석준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색깔인데 밸런스가 굉장히 좋다”며 진짜 ‘아버지’같은 미소를 지었다.


- <아들>, 쉴 새 없이 달린, 그래서 한동안 많이 아플 작품.

수많은 작품에 쉬지 않고 도전해 온 이석준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학로의 ‘소’다. 전작 <라스트 세션>이 끝난 뒤 곧바로 <아들>을 시작했고, 차기작인 <세자전>도 연습이 한창이다. 그만큼 프로페셔널하고, 작품 간 ‘스위치’도 확실하게 넣었다 끌 수 있는 배우다. 하지만 <아들>은 그런 그에게도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이석준은 “이 작품이 끝나면 한동안 많이 아플 것 같다. 아마 몸과 영혼이 다 아플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연극이 끝나고 나면 이틀 정도는 꼭 호되게 앓는다는 그는 “이 작품은 평소보다 좀 더 아플 것 같다. 느낌이 온다. 한 달 지났는데 벌써 아프기 시작했다”며 장난치듯 웃었다. “사실 차기작인 <세자전>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하기 어려운 이유도 내가 아직 <아들>에 너무 잠겨 있어서”라고 말한 이석준은 “지금은 정말 활자 하나 보기가 싫다. 같이 연습하는 후배들도 날 보며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진심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아들>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강하다. 이석준은 ‘이 극을 꼭 봐달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짚어달라는 질문에 “세상 사람들 전부 다 보셨으면 좋겠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호불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작품은 우리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장치다. 지금은 전체가 우울감에 잠겨있고 인터넷 등을 통해 타인 앞에 내세우는 인격과 숨어있는 자신의 진짜 인격으로 나뉘어 살면서 점점 더 우울해진다”며 “이럴 때일수록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장치가 있다”고 손가락을 꼽았다.

“하나는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같이 보고 느끼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서로 공감을 나누며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는 아픔을 드러내는 이런 작품을 보고, 작품이 말하는 대로 직시하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아들>에선 어른과 아이가 주인공이고 우울증이라는 심각한 소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 극이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소통’”이라고 덧붙였다.

또 하나, 이석준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그는 “우리가 연습을 마무리할 때 공통적으로 했던 얘기가 있다. 이 극의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을 이은 뒤 “요즘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당신의 최선이 나의 최선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의 최선을 내게 강요하지 마라’…. 하지만 상대방의 최선을 무가치하게 끌어내릴 이유는 없다. 서로가 최선을 다한다는 걸 인정하는 게 이해다. 공감은 그 뒤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연극 <아들>은 오는 11월 2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발행한 기사 원문

http://www.onseoul.net/news/articleView.html?idxno=8225

http://www.onseoul.net/news/articleView.html?idxno=8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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