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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Apr 02. 2024

잃어버린 초심 찾습니다

#7 눈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1년이 훌쩍 지났고

지극히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간은 정말 쏜살 같이도 흐른다. <온 더 비트>의 감동을 품에 안고 쭈뼛거리며 처음 드럼을 배우려고 상담을 잡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어느새 1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 됐다. 처음 수업을 받으러 가서 의자에 앉아 스틱을 잡아보며 내가 이걸 진짜 쳐도 되는지 삐그덕댔던 게 1년하고도 2개월 전이라니.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드럼을 쉬었다가 치다가 쉬었다가 치기를 반복하면서 게으름과 열의를 동시에 불태우는 모순도 한껏 즐겼고, 대충 꽉 채운 1년을 초보 드럼 연습인으로 살았다.


그 1년 여의 시간 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나를 매우 사랑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긴 하지만 요새 말로 하면 T 중에서도 대문자 T, 쌉T이기 때문에 내 실력을 평가하는데 있어 그리 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못하는 건 아닌데 잘하지도 않는다. 그거야 당연하지. 겨우 1년을 취미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뚱땅뚱땅 치고 드라마틱하게 실력이 늘길 바란다면 그건 내가 도둑놈 심보인 거지. (물론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로또 당첨을 노리는 썩어빠진 근성답게 일확천금 바라듯이 노력 없이 천재적인 연주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양심에 털 난 마인드도 18% 정도 존재하고 있음) 이런 의식의 흐름 속에서 지난 토요일, 늘 치던 본사 연습실이 아니라 새로 연지 얼마 안되는 다른 지점 연습실에 처음 방문해 드럼을 치기 전 가만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뼛속까지 전형적인 한국인인 나는 무심코 취미생활마저도 '열정적으로' '아주 열심히' '불타오르듯'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멍하니 거울 속에서 엉성하게 드럼 스틱을 쥐고 있는 나를 마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잘 치고 싶은 마음, 향상심, 그런 거야 뭔가를 시작했을 때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마음이겠지만 내가 드럼을 배워서 갑자기 밴드를 결성해서 슈퍼밴드에 나갈 것도 아니고 어디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연주를 할 것도 아닌데 나는 은근슬쩍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겨우 1년 쳤는데 이만큼이라도 칠 수 있게 되다니 제법인걸?'이 아니라, '1년이나 쳤는데 내가 제대로 칠 수 있는 게 뭐지, 이렇게 치는 게 맞나?' 같은 의문의 절벽에 스스로를 자꾸 등떠밀고 있었다는 느낌.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드럼 스틱으로 스네어 드럼의 배를 한 번 퉁, 하고 때렸다. 세게 내려치지 않았기 때문에 잔잔하게 떨리며 퍼져나가는 두우우웅, 하는 그 울림 같은 소리. 한 번, 두 번 더 팽팽하게 당겨진 드럼의 뱃가죽을 내리치면서 1년 여 전의 초심을 떠올렸다. 재미있게 살자. 재미있게 살고 싶으니까, 재미있게 치자. 틀려도 되고, 느려도 되고, 지지부진해도 되니까 그냥 좀 신나게 치자. 


요즘 연습하고 있는 그린데이의 21Guns 전주를 틀어놓고 다시 거울을 봤다. 입꼬리를 양쪽으로 쭉 당겨본다. 그래서 올해 내 목표는 웃으면서 드럼 치기다. 박치지만, 그루브도 좀 타보고. 누가 봐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그리고 드럼 파트 도입과 함께 힘껏 스틱을 내리치는데, 아. 그 순간 직감했다. 이게 더 어려운 목표겠구나. 어깨 들썩들썩 고개 까딱까딱하면서 신명 나게 드럼치는 법 알려주실 분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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