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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Aug 10. 2023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그 거짓말

#6. 근손실만큼 무서운 감손실

뭔가를 한 달 이상 지속하지 않는다는 건, 그 '뭔가'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걸 뜻한다. 가끔 사람들은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엄청난 시간과 노력-말 그대로 인이 박일 정도의-을 기울인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채 반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것도 많아봤자 주 3~4시간 드럼을 친 것 정도로는 '몸이 기억하는'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거다. 나는 그 사실을 2주 전 목요일에 깨달았다... 


앞서 썼던 바와 같이, 한 달 반 넘게 드럼을 쉬었다. 습관처럼 연습실이 비어있는 시간을 체크하고, 퇴근 후 갈 수 있는 일정을 조율해 한 시간씩이라도 꾸역꾸역 연습시간을 욱여넣던 행동들이 한 달 반 넘게 멈춰섰다. 스틱을 잡은 지도, 킥 페달을 밟은 지도 한 달 반이 지났다. 그래서 7월 말, 아주 오랜만에 스튜디오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떠올린 생각은 '드럼 치는 법을 다 까먹었으면 어떻게 하지?'일 수밖에 없었다. 


까닭이 아예 없는 걱정은 아니었다. 나는 극한의 N으로, 일이든 취미생활이든 뭐든 대부분의 것들을 머릿속에서 굴려보는데 매우 익숙한 사람이다. 상상하고 또 상상하기, 상상 속 이미지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돌리기, 행동해보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드럼은 내 머릿속에서 좀처럼 온전히 구현되지 않았다. 집에 굴러다니는, 끝이 다 까져 바꿔야 했던 드럼스틱을 양손에 쥐고 소파를 두들기며 에어 드럼이라도 쳐보려고 했는데 악보를 눈으로 보면서 실제 드럼을 칠 때와는 달리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악보가, 리듬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나는 얌전히 스틱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혼자 연습해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한 달 반의 공백은 나를 위축되게 하기 충분했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 방음을 위해 손잡이를 돌려 닫고, 에어컨을 틀고, 보면대에 악보를 내려놓은 뒤 심호흡을 길게 했다. 페달을 밟고 괜히 둥, 둥, 둥 몇 번 울려보고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이리저리 어깨를 꺾어보다가 겨우 연습곡을 틀었다. 아주 오래 멈춰있었던 기분이 드는 나의 다섯 번째 연습곡, '나는 나비'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고 고개를 까딱이면서 도입부 리듬을 찾다가 또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


그 뒤로 연전연패, 고군분투의 시간이 이어졌다. 21도로 시원하게 맞춰놓은 연습실 안의 공기가 덥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수천 번 들어 익숙하게 느껴져야 마땅할 '나는 나비'가 이렇게 낯설게 들릴 수 있는지 의아해하며 헛손질과 헛발질을 이어나갔다. 아니, 분명히 이게 이렇게 쳤던 것 같은데. 여기가 이렇게, 오른손으로 라이드를 치고, 잠깐 여기 킥이 두 번 둥둥인데 왜 이렇게 둥두둥이 되지? 정신 차려, 오른발! 제발, 너 그래도 전에는 말 잘 들었잖아?


너덜너덜해진 채로 엉망진창인 연주, 아니 연습을 끝내고 연습실을 나서는 길, 후텁지근한 밤공기에 휘감긴 채 나는 생각했다. 뭔가를 잘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역시 뭔가를 꾸준히 하는 일이라고. 한 달 반씩이나,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겨우 한 달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새까맣게 까먹을 일인가? 이건 역시 내가 쌩쌩한 10대, 20대가 아니라서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을 찾아 헤매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뭔가를 익히고 기억하는 속도에 나이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리야 없겠으나, 나는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몸이 기억할 정도'로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라고. 


축 처진 어깨로 무더위를 짊어진 채, '나는 나비' 한 곡을 무한재생하며 집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나는 내가 치던 드럼의 감각을 떠올렸다. 스틱을 쥔 손에 들어가던 힘, 라이드 심벌을 내려쳤을 때 공기 중에 퍼져나가던 굉음, 잘못 밟은 페달 때문에 둥, 하고 둔중히 울리던 베이스 드럼의 앓는 소리 따위. 그리고 손 안에 쥔 무기가 이것 하나밖에 없다는 듯, 긍정을 잡아채 그것으로 드럼을 마저 두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럼, 나는 아직 '몸이 기억할 정도로' 드럼을 치기 위해 노력해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인 거다.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 스스로에게 일으키고자 하는 어떤 변화의 시작 단계에 있는 거지. 그러니까 나는 계속 드럼을 칠 거다. 치기 싫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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