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의 내용은 동기부여와 분석하기였다. 그 두 가지는 중요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들고 손을 움직이며 공부하는 순간에 명심해야 할 내용은 아니다. 여기서는 실제로 공부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이 내용을 꽤 깊게 신뢰하고 있다. 소위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다고 꼽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수학 개념 공부를 하든, 영어 독해 문제를 풀든, 국어 오답노트를 하든, 어쨌든 당신이 앉아서 공부를 할 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하나의 원칙에 대한 것이다.
뇌를 '진짜로' 써라.다른 말로 하면, 순도 높은 집중력을 유지한 채 공부하는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
혹시 글을 읽는 당신이 학생이라면, 자신이 한번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 시간을 재 본 적이 있는가? 꼭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집중은, 매우 순도 높은 집중을 의미한다. 음악을 듣고 있다면, 너무 집중해서 음악이 잘 안 느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시시콜콜한 잡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오직 책상 위의 종이에 집중해서 눈과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이 시간을 재 본 적이 있다.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던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내 100% 집중력이 유지되는 최대 시간은 1시간 10분이었다. 여러 번 시도해 보았는데, 전부 이 정도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1시간 10분 정도가 지나면, 몸이 불편한 게 느껴지면서 괜히 기지개를 켜고 싶어졌다. 괜히 다른 음악을 찾아 듣고 싶어졌다. 괜히 옆 자리 친구에게 말이 걸고 싶어졌다. 이렇게 순수 집중 100% 상태로 공부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며 아플 때가 있다. 뇌를 혹사시키는 것이다. 마치 근육을 키우는 사람이 과격하게 운동을 해서 근육을 억지로 찢고 그것이 다시 회복되면서 탄탄한 몸이 되어가는 것처럼, 공부할 때 뇌를 조금 과격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은, 집중하며 공부한다는 것은 절대 앉아있는 시간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뇌를 혹사시키라고 해서, 밥도 안 먹고 쉬지도 않고 열 시간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정말로' 뇌를 쌩쌩 돌리면서 공부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의자에 반쯤 구부러진 채로 앉아서 흐느적거리며 오랜 시간 버티는 것은 절대 효과적이지 않다. 쉴 때 쉬더라도, 놀 때 놀더라도, 공부하는 순간에는 최대한으로 집중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플래너에 매일매일 공부한 시간을 기록하는 학생이라면, 별 소득 없이 문제집을 들여다보며 보낸 10시간, 12시간을 기록한 후 자랑스러워해선 안 된다. 진짜 내가 공부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항상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 집중한다는 것이 대체 뭔지 감이 안 잡히는 학생들을 위해 예시를 하나 들어 보겠다. 당신이 중간고사 사회 시험을 위해 역사 연도를 외우고 있다고 해 보자.
- 조선 건국 : 1392년
- 세종 즉위 : 1397년
- 임진왜란 : 1592년
위 내용이 내일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서, 열심히 암기한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잘못된 공부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일단 내용에 막 밑줄을 긋고, 노트에 조선 건국 1392..1392.. 세종 즉위는 1397... 임진왜란은 1592... 같은 내용들을 별 생각 없이 반복해 쓰는 것이다. 물론 쓰면서 암기하는 것은 효과가 있다. 우리 뇌는 정보를 기억할 때 다양한 감각을 사용할수록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마치 받아쓰기 기계처럼 외워야 할 내용을 적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순도 높은 집중력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이기에, 글로써 설명하는 것에 상당한 제약이 있겠으나 한 번 시도해 보겠다. 위의 내용들을 암기한다고 하면, 내 머릿속에서는 대략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조선 건국은 천 삼백 구십 이년이군. 1392. 천 사백년(1400)이 되기 거의 직전에 조선이 딱 건국됐구나. 1392년. 천 삼백 구십 이년. 아 그리고 세종대왕은 천 삼백 구십 칠년에 왕이 됐구나. 조선 건국되고 나서 5년만에 세종이라는 왕이 등장한 거구나. 생각보다 빠르네. 세종 즉위는 1397년. 그리고 임진왜란은 천 오백 구십 이년이네. 1592년. 아 보니까 조선 건국이 1392년이고, 임진왜란은 1592년이네. 조선이 건국되고 딱 이백 년만에 임진왜란이 터졌구나. 조선 건국은 천 사백년 되기 거의 직전인 1392년. 세종이 왕이 된 건 고작 5년 뒤인 1397년. 그리고 임진왜란은 조선 세워지고 딱 200년 후니까 1592년이구나.
글로 풀어서 써서 이 과정이 매우 길어 보이지만, 사실은 머릿속에서 상당히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위 내용 전부를 컴퓨터처럼 머릿 속에서 그대로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내용을 생각한다고 해서 그 모든 내용을 언어로 바꾸어서 따박따박 생각하지 않듯이, 글로 풀어 놓은 위 내용의 일부는 아주 희미하고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간다. 요점은공부할 때 뇌를 쓰라는 것이다. 마치 돌에 글씨를 새기듯이, 지금 공부하는 내용을 당신의 뇌에 깊이 새겨야 한다. 단순 암기에만 한정된 내용이 아니다. 어떤 과목을 공부하든 최대치로 집중하는 순간은 꼭 필요하다.
시험을 잘 보는 것과도 연관된다
평소 순도 높은 집중 상태로 자주 공부하는 습관은,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물론 강력하게 집중하는 것 자체로 내용이 더 잘 이해되고 각인된다. 거기에서 오는 실력 향상도 분명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시험장 안에서의 실력 발휘에도 도움을 준다. 학교 중간고사 수학 시간을 상상해 보자. 어떤 자세로 문제를 푸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매우 집중해서 문제를 풀 것이다. 공부를 많이 했든 하지 않았든, 시험을 완전히 포기한 학생이 아니라면 시험 시간 50분 동안은 굉장히 집중해서 문제를 풀려고 노력한다. 만약 당신이 평소에 항상 느슨한 상태로 덜 집중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시험 순간에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을까?
평소에 대강 시간만 죽이면서 편하게(뇌를 돌리지 않고) 공부한 학생들이 시험 시간 50분 동안 풀 컨디션의 집중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시험에서 실수를 하고, 영어 듣기를 놓치고, 국어 비문학 지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갑자기 머리가 텅 빈 것처럼 하얘지고, 평소라면 충분히 풀었을 문제도 놓치게 된다. 시험을 망치는 수많은 요인 중에는, 그 시간 동안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본인의 집중력 부족도 분명 존재한다. 반면 매일 단 1시간이라도 높은 집중력으로, 강렬하게 몰입해서 공부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시험 때에도 평소와 같이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집중하기 너무 힘들어요
당연히 힘들다. 위에서 밝혔듯이, 나도 정말 제대로 집중해서 공부할 때는 한 시간 반을 넘기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집중은 깨지고 흐름이 끊긴다.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것은 높은 집중력을 가지고 공부한 후에, 다음 집중 타임을 위해서 중간에 약간의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라는 것이다. 책을 덮어 버리고 진짜로 누워서 쉬라는 말은 아니다. 공부해야 하는 것들 중에는,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영역이 있는 반면 살짝 힘을 빼고 공부해도 괜찮은 영역이 있다. 국어 비문학 / 영어 독해가 대표적으로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다. 영단어 암기 / 수학 공식 암기 등은 상대적으로 덜 집중한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는 영역이다.
만약 국어 문제를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풀었으면, 잠시 영어 단어 책을 들고 낮은 강도로, 살짝 긴장을 푼 상태로 단어를 바라보는 것이다. 혹은 내가 잘 푸는 단원의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좋다. 나는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 주로 영어단어들을 눈으로 슥 보곤 했다. 열심히 일한 내 뇌에게 잠시 휴식을 주는 것이다. 약간의 휴식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서서히 집중력을 높여서 효율적인 공부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집중 강화 - 이완(휴식)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설령 자신이 단 10분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공부 시간을 느슨하게 집중하며 보내 왔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익숙함과는 빨리 결별해야 한다. 대충 공부하는 습관에게 당장 이별을 통보해라. 오랜 세월 정말로 집중하지 않고 공부해왔던 습관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습성을 버려야 한다. 핸드폰을 꺼서 가방 안에 깊숙이 집어 넣어라. 우리의 마음은 유혹에 아주 약해서, 핸드폰이 패딩 주머니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걸 꺼내서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겨난다. 불안감과 집중력 저하의 상관관계는 이미 입증되어 있으므로, 불안감을 떨쳐내고 단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라. 올바른 방법과 충분한 노력으로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은 없다. 노벨상을 위한 공부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공부에서는 그렇다. 자신을 믿고 건강한 마음을 가져라. 자세를 똑바로 해라. 인간의 정신은 상당 부분 몸의 지배를 받는다. 집중이 안 된다면,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거나 물을 마시고 다시 의자를 당겨 앉아라. 허리를 등받이에 딱 붙이고 "까짓거 한번 해보자" 마음 속으로 말해 보아라. 집중력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정말 많고,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