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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상욱 Mar 17. 2022

워케이션 가면 놀면서 일할 수 있다고? 양자택일하시길!

"놀거나 일하거나 하나만" 강릉 워케이션 '일로오션' 솔직 참가 후기

재택 근무와 워케이션

2020년 신종 코로나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평일 낮 동네 카페에서 랩톱으로 일하는 건 더 이상 프리랜서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재택 근무(Work from Home·WFH)를 도입하지 않는 조직이 유난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다. 


트위터 창업자겸 최고경영자(CEO) 잭 도시는 신종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2020년 5월 “원하는 직원에게는 영구히 재택 근무를 허용하겠다"라고 발표하며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도했다.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필수 인원이 아니라면 부서장 재량하에 재택 근무를 허용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도입하며 코로나 시국에도 활로를 모색했다. 바다 건너 실리콘밸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한국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직방은 2021년 2월 아예 사무실을 없애고 전 직원이 원격으로 일한다고 발표했다. 직방은 가상 사무실을 메타버스로 구축해 '메타폴리스'라고 이름 붙이고, 일부는 직접 사용하고, 공실은 원격 근무 솔루션이 필요한 다른 기업에 임대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워케이션! 어차피 사무실 안 나가니 휴가 가서 님도 보고 뽕도 따자고? (사진 Dessidre Fleming on Unsplash)


재택 근무가 낯설지 않은 2022년, ‘워케이션’이라는 새로운 업무 방식이 떠올랐다. 일과 휴가(Work & Vacation)를 합친 말로 여행지에서 일하며 휴식도 만끽한다는 뜻이다. 


휴가지에서 일한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휴가 가서 업무 카톡 받고 호텔 로비에 랩톱 펴 놓고 일하는 비자발적 원격 근무와 워케이션은 다르다. 워케이션은 업무를 고스란히 정식으로 처리하는 와중에 휴가지의 이점도 누리는 업무 방식이다. 


워케이션은 재택 근무의 대안이라기보다 상위 호환판으로서 등장했다. 재택 근무에 꽤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재택 근무가 가장 효율적인 업무 방식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통근이 사라져 출퇴근길 지옥철에서 해방됐으나, 이웃집 리모델링 공사 같은 생활 소음에는 더 취약해졌다.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 각종 집안일이 업무 집중도를 갉아먹는다. 애초에 거주용 공간인 집에서 직장만큼 생산성을 내기에는 책상과 의자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직장에서 당연히 제공하던 업무 환경을 구축하기엔 집이 턱 없이 좁다. 그러니 아예 생활이 스며들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 일에 집중하고 제대로 쉬자는 게 워케이션의 골자다.

이런 상황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나 (사진 charlesdeluvio on Unsplash)


‘일로오션', 강릉에서 워케이션 경험담

친구가 초대해 준 덕분에 지난 1월 워케이션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강원도 로컬 크리에이터 기획사 더웨이브컴퍼니(TWC)가 로컬 여행 잡지 소도시(so.dosi)와 손잡고 강릉에서 준비한 4박5일 워케이션 프로그램 ‘일로오션' 11기였다.

[DISCLOSURE] 이 글은 더웨이브컴퍼니(TWC)와 소도시가 기획한 강릉 워케이션 프로그램 ‘일로오션' 11기에 참가비만 지원받고, 원고료 등 현물성 대가는 일체 없이 작성하는 숙제임을 미리 밝혀둔다. 감안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일로오션 참가자는 일과 휴식을 겸하는데 필요한 제반 시설을 모두 제공받았다. 숙소는 강릉 송정해변이 창 밖으로 보이는 호텔 단독실이었다. 숙소에서 차로 10분, 도보로 1.5시간 거리인 강릉 구도심 코워킹 스페이스 ‘파도살롱'에 5일 간 쓸 지정석을 각자 배정받았다. 1실 뿐이지만 회의실도 있어 화상회의하는데 좋았다. 숙소 호텔 로비에는 일로오션 전용 업무 공간 3석 있었다. 날씨가 궂은 날이나 늦은 밤 숙소를 떠나지 않고도 집중해 일할 수 있어 좋았다. 무려 데스커 스탠딩 데스크를 구비해 둔 데서 일하는데 진심인 기획의도가 엿보였다. 

눈뽕탓에 아침 6시에 강제 기상당하는 오션뷰 숙소와 1층 로비에 마련된 일로오션 전용 업무 공간. 무려 데스커 스탠딩 데스크(사진: 안상욱)
TWC 최지백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가 일로오션 1일차에 공유 오피스 '파도살롱'을 소개해 줬다. 오른쪽은 5일 간 나만 쓸 지정석 (사진: 왼쪽 소도시, 오른쪽 안상욱)


나는 강릉에 처음 갔다. 일면식이 없는 도시지만, 일로오션 운영자와 다른 11기 참가자에게 맛집과 카페를 추천 받아 다닌 덕분에 거의 실패 없는 식도락을 즐겼다. 유일한 실패는 숙소 근처에 눈의 띈 해물라면집을 충동적으로 간 저녁 식사였다.


강릉은 휴가지로서 퍽 매력적인 도시였다. ‘영감을 받는다'는 명분(혹은 핑계)으로 5일 동안 일은 거의 안하고 사실상 ‘베케이션’을 즐긴 나도 다 가보지도 못할 정도로 명품 카페와 맛집이 즐비했다. 서울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경험도 강릉에서는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다. 아르떼 뮤지엄 같이 큰 스케일의 문화 공간이 곳곳에 있다. 동해 바다와 대관령을 아우르는 자연 환경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뽐낸다더라. 한겨울 내 경험만 갈무리하면 이렇다. 밤새 쏟아지던 눈보라가 자취를 감춘 목요일 새벽, 인기척 없는 송정해변 소나무 숲을 홀로 걸을 때 뽀드득 내 눈 밟는 소리만 들려오는 고요함. 반짝이는 동해 바다에 눈 부셔 일어나는 아침. 숙소 옥상에서 보는 일몰 뒤 보라빛 하늘.

강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 둘. 왼쪽은 아르떼 뮤지엄. 오른쪽은 눈 덮인 채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 송정해변(사진: 안상욱)


강릉 4박5일 워케이션에 내가 들고 간 업무는 2022년 사업 기획, 풀어 말하면 “올 한 해 뭐 먹고 살지 결정하기”였다. 2015년 덴마크와 한국을 잇는 글로벌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했으나,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고 흩어진 뒤로 홀로서기 2년 간 시행착오만 거듭해 온 내가 1인분이라도 하며 재기할 길을 찾던 중 강릉에 갔다. 글로벌대신 로컬, 성장세는 느리더라도 의존 대신 자립하는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 오디언스 대신 커뮤니티 등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울 망원동에서 하이퍼 로컬 미디어를 꾸리자는 생각이 있었으나, 어떻게 할 지 구체적인 그림은 그리지 못한 터였다.


운이 좋았다. 마침 일로오션을 만든 TWC과 소도시, 두 팀 모두 한국 로컬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타트업이어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내겐 로컬 창업자 선배의 OJT 같았다. TWC가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 파도살롱은 외지에서 온 원격근무자가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파도살롱과 일로오션 숙소 로비 책장에는 이들이 큐레이션한 강릉·로컬 콘텐츠가 가득해 이 자료를 살펴보는데만도 시간이 모자랐다. 미리 점찍어 둔 책을 다 훑어보느라 하루는 새벽 2시가 지나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강릉 로컬 전문가가 큐레이션한 책장에서 알짜배기만 쏙쏙 뽑아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만 읽다 5일 다 보내겠다 싶었다(사진: 안상욱)


사람도 좋았다. 4박5일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동참했다는 이유 만으로 서로 일면식 없는 참가자 사이에 유대감이 싹트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운영진은 5일 중 짬짬이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마련해 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내일의 대화'다. 목요일 저녁 숙소 로비에 일로오션 11기 5명과 김리오 디렉터가 둘러 앉아 일을 주제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질투 날 정도로 멋진 팀워크, 일을 대하는 진지한 혹은 쿨한 가치관을 들으니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7년차 프리랜서로서 홀로 일하며 쌓인 외로움을 조금 덜어냈달까.

'내 일의 대화'에 몰입해 얘기하느라 바빠 사진이 없다. 1일차 OT 사진으로 갈음한다(사진: 소도시)


강릉과 동해 바다, 그리고 일로오션에 영감과 응원을 받아 흐릿한 아이디어가 한결 뚜렷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로컬 콘텐츠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다. 워케이션 참가자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놀고 쉬며 일은 거의 안 했으면서 이렇게 큰 성취를 누려도 되는지, 후기를 써가는 지금까지도 멋쩍다.


워케이션은 재택 근무 상위 호환

앞서 말했듯 워케이션은 재택 근무의 상위 호환판이다. 오롯이 나와 내 일에 집중하기에 최적인 근무 방식이다. 일상이 비집고 스며드는 재택근무에서 벗어난다. 숙소를 호텔에 잡으면 비용은 다소 추가되더라도, 방 청소나 침대 정리, 수건 빨래마저 맡겨둔 채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휴식의 질도 높아진다. 훌륭한 환경이 지척에 있어 자연을 누리기 쉽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자극을 받아 다른 관점을 깨우치기에도 좋다.


하지만 워케이션이 사무실 근무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생산성을 높이는데 맞춤으로 구성된 공간을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일하면 효율을 떨어지게 마련이다. 비용도 사무실이나 재택 근무에 비교하면 비쌀 수 밖에 없다. 워케이션 비용을 너무 절감하면 경험의 질이 떨어질 테다. 다만 일로오션 같이 치밀하게 설계된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올라타는 식으로 효율 저하폭을 최소화하고 프로그램의 질을 담보 받을 수는 있으리라.

일로오션11기 참가자가 각자 일에 열중하는 모습 (사진: 소도시)


그래서, 일과 휴가 양립 가능하다고?

워케이션에서 일과 휴가는 양립하기 어렵다. 내 경험으로 보면 그렇다. 적어도 ‘코시국’이 끝나기 전에는 그럴 거다. 11기 참가자 중에도 업무 시간을 지켜야 하는 조직 소속 2명은 강릉이라는 환경을 만끽하지 못해 안타까워 보였다. 식당은 저녁 9시, 술집은 10시면 문을 닫는 와중에 6~7시에 퇴근하면 식사 후 술 한 잔 걸치기도 시간이 모자랐다. 반면 나를 비롯해 프리랜서 및 창업자 3인방은 오전 중에 적당히 일을 처리해 두고 점심부터 강릉을 누비거나, 아예 하루 날 잡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놀러 다녔다. 덕분에 5일 만에 강릉의 매력을 조금은 느꼈다.

놀러 다니느라 분주한 발걸음을 기록 당했다?!?(사진: 소도시)


워케이션을 떠나려 한다면, 먼저 일과 휴가 중 무엇에 더 무게를 실을지 결정하시기 바란다. 나는 ‘일 5: 휴가 95’로 영감 여행을 다녀왔기에 워케이션에서 높은 효용을 누렸다. 반대로 일에 집중하고, 퇴근 후 짧지만 굵게 기분을 환기하겠다고 마음먹고 와도 워케이션의 가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택근무에 지친 리모트 워커가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주는 차원으로 워케이션을 가는 것도 의미 있겠다.


다만 ‘50:50’으로 둘 다 좇으려는 생각이라면 워케이션을 잠시 미뤄두길 권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 눈만 들면 창 밖으로 수평선이 보이는 해수욕장과 주문진 시장 물회의 유혹이 업무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지 모를 일이다. 반대로 차마 일을 놓지 못하고 휴가를 온 상황이어도, 마치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함을 내려놓지 못하면 낮에 열심히 일하는 다른 참가자에게 무언의 압력을 느껴 원치 않게 일을 많이 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나.

눈만 들면 송정해변이라는 어드벤티지 혹은 디스어드벤티지(사진: 안상욱)


7년차 리모트 워커에게 워케이션이란

2015년 11월 창업한 뒤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여러번 선정된 덴마크 코펜하겐(København)을 오가며 사무실 없이 일한 지 7년째인 나로서는 워케이션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일상적인 업무 형태라 내게 굳이 워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앉은 자리가 곧 일터였던 코로나 전. 위 사진은 모두 덴마크다 (사진: 안상욱)


하지만 완전하게 구축된 업무 환경을 내어 주고, 다른 참가자와 교류할 기회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일로오션 강릉 워케이션 프로그램은 확실히 혼자하는 한달살이나 평범한 원격 근무와 차별화돼 있었다. 여기에 TWC와 소도시가 마련해 둔 현지 인프라와 디테일을 겻들이니 사용자로서 십분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에 팸투어 형식으로 와서 눈 덮인 송정해변을 봤으니, 여름에 다시 올 참이다. 소도시 김가은 대표는 송진가루 날리기 전 3월에 오길 추천했다. TWC 최지백 대표는 여름밤 해변 정취를 만끽하려면 8월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오라고 강력 추천했다. 어쩌면 2022년에 처음 만난 강릉에 꽤 자주 갈 지도 모르겠다.

눈 쌓인 송정해변 방풍림에서 사진 찍는 나를 찍는 김가은 소도시 대표를 찍었다. 서로 피사체이면서 촬영자인 게 인생 아닐까(사진: 안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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