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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상욱 Nov 03. 2017

마루노우치 아침대학

자기계발로 공동체 일구는 즐거운 사회참여운동

월요일 아침 7시30분. 일본 경제의 중심지 마루노우치([丸の内)는 벌써부터 북적인다. 1년 평균 1만 7000명이 다니는 아침대학(朝大学) 덕분이다.


아침대학은 정식 교육기관이 아니다. 회사 업무시간에 앞서 매일 아침 7시 사람들이 만나 무언가 공부하는 커뮤니티다. 식품, 여행, 몸과 마음의 건강, 재정, 화장, 소셜 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에 일가견 있는 강사를 초청해 수업을 연다. 온천 여행을 기획하는 수업도 있다.


학생은 계절마다 학기가 열리면, 그 안에서 관심 가는 수업을 찾아 등록한다. 수강기간은 수업마다 다르다. 보통 4~8주다.  수업료는 8주 수업 기준 평균 4만 엔(40만 원)이다. 2009년 4월 1일 문 연 아침대학은 이제 수업료만으로도 자립 가능한 건실한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언뜻 보면 흔한 자기계발 동호회 같지만 속내는 더 깊다. ‘1000년 동안 지속될 거리를 만든다’라며 시작한 마루노우치 개발 계획이 간과한 부분, 바로 사람 간 교류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아침대학을 기획한 사회적 기업 바움(Baum)의 유키 우다가와 대표와 팀원이 서울시 청년허브가 주최한 2017 글로벌 콘퍼런스 ‘Back to Basics’ 발표차 한국을 찾았다. 10월 13일 오후 콘퍼런스 무대에서 그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공유한다.

서울시 청년허브가 주최한 2017 글로벌 콘퍼런스 Back to Basics에서 유키 우다가와 바움 대표가 이야기하는 모습 (신병곤 촬영, 서울시 청년허브 제공)


마루노우치

마루노우치는 일본 황궁 앞에 가장 발전된 비즈니스 구역이다. 도쿄역 앞이기도 하다.  옛 모습을 간직한 도쿄역과 사무실 빌딩이 늘어선 풍경이 공존한다. 금융기관이 많이 있는 거리라 은행이 문 닫는 시간에는 사람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하다. 90년대 후반에 고층빌딩이 많이 들어서면서 지금 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다. 입주한 회사가 늘어나 120헥타르 면적에 25만 명이 일한다.


일본 사람이 생각하는 마루노우치의 이미지는 세련되고 멋있는 곳이다. 명품샵 매장이 있고, 소개팅할 때 갈만한 멋진 가게도 많은 곳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런 지구가 되면 1층이나 저층은 음식점이나 상업 시설로, 고층은 업무 지구로 쓴다.


마루노우치를 처음 기획할 때 의도는 '1000년 동안 지속될 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1000년 유지되는 거리, 마을을 만들겠다는 콘셉트를 부동산 회사가 만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한 회사나 음식점이 들어와도 1000년 동안 유지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오래갈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삭막한 도심에 나무도 많이 심고 건물도 멋지게 꾸몄다. 2007년 상징적으로 신마루노우치 빌딩이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2012년 리노베이션을 마친 도쿄 마루노우치역 전경(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東京特許許可局)


아침

도쿄나 마루노우치뿐 아니라 한국도 그럴 거다. 보통 아침 8~9시에 출근해 밤 9~10시까지 일한다. 직장인은 친구를 만나거나 무언가 배울 때 밤 시간을 이용한다.


2007년 시험적으로 일주일 동안 이벤트를 열었다. '아침 엑스포'라는 이벤트였다. 카페나 주위 사무실에서 시범 수업을 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왔다. 사람들이 이런 걸 원한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마루노우치 아침대학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도 디자이너이자 카피라이터로 일 할 때 오전 10시에 출근해 늦은 밤까지 일했다. 아침대학 만들면서 아침 5시에 일어나야 해서 힘들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 즐겁게 해보자고 생각했다. 


2009년 매일 운영하는 아침대학을 만들었다. 우리가 지향한 지점은 많은 사람이 오는 것뿐 아니었다. 아침에 배우고 싶은 것을 익히며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 연결 고리를 만들자는 것. 아침에 일어나 만날 친구가 많아지게, 알은척할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마루노우치 아침대학 홍보영상

대학

일단 다 같이 만나 재미있는 것을 배우고, 그걸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마을이나 각 지역에서 새로운 활동을 하는 게 기본적인 구조다. 단순한 자기계발 강의처럼 지식을 습득하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배운 능력을 활용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대학을 제안하고 있다.


소셜 디자인, 로컬 디자인, 몸과 마음의 건강 등 마루노우치 아침대학에는 독특한 학부가 많다. 마루노우치 안에 마을 만들 때 1000년 지속될 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고 말씀드렸잖나. 이런 학부를 만들 때는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마을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가 성실히 연구해서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자”라고 하면 귀찮고 하기 싫은 것 같다. 반면 아침대학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 재미있는 게 많다고 하면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에 참여할 사람이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수강생 수는 10년 가까이 증가했다. 1년 평균 1만 7천 명이 수업을 듣는다. 1반이 대략 40명 정도다. 한 수업을 들으면 친구 40명 만들 수 있다. 한 학기로 따지면 700명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벤트도 종종 열어 다양한 사람과 어울릴 기회도 마련한다. 학생 70%가 여성이고, 연령대는 20대 후반에서 30대다.


수업

각 수업은 이렇게 개설한다. 일단 재미있는 분을 발견해 그 사람이 정립한 새로운 학문을 배운다. 내게 나누고 싶은 바가 있으면 새로운 수업을 만들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형태다. 대자연을 같이 걷는 수업이 있는가 하면, 일본 우주항공 연구개발기구 작사(JAXA)와 우주를 연구하는 수업도 열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수업을 만들기도 한다. 1000년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 한다고 말씀드렸다. 마루노우치에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 25만 명이 밀집해 일한다. 이런 인재가 그 훌륭한 재능을 회사를 위해서만 쓰기는 아깝잖나. 자기가 사는 지역이나 자기가 자란 고향을 위해 자기 재능을 쓸 수 있도록 지자체와 연계한다.


지금은 일본 전국에 수업을 열었다. 도쿄 뿐 아니라 오키나와까지 전국적으로 확장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도 커뮤니티를 조직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수업을 열었다. 네덜란드와 뉴질랜드에는 농업 관련 수업을 열었다.

마루노우치에 본사를 둔 기업이 4천 곳이다. 이 회사가 일본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한다. 이런 기업과도 수업을 개설한다. 물론 기업만 위한 일은 아니다. 기업과 손 잡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수업을 개설한다.


아침대학은 인터넷 방송도 운영한다. 지자체∙기업과 수업을 같이 개설하거나 물품을 제공받기도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데도 협력한다.

마루노우치 아침대학 2015년 일정표 (마루노우치 아침대학 연례보고서 인용)


지속가능성

아침대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지역 매니지먼트 단체와 손잡았다. 비용은 그 단체가 부담하고, 운영은 우리가 하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독립적으로 채산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독립한 상태다. 일찍부터 언론에 노출돼 빨리 자리 잡았다. 지역 중소도시에서도 아침대학이라는 이름을 도용해 비슷한 일을 시작했는데 잘 안 됐다. 인구가 적어서 힘든 것 같다.


마을 만들기라고 해도 정권이 바뀌면 영향을 받기 쉽다. 이걸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지가 중요한 평가 축이다. 아침대학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가 100쌍이 넘는다. 한국도 일본도 저출산이 심각하잖나. 본의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인연을 맺은 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도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울시 청년허브 주최 2017 글로벌 콘퍼런스 Back to Basics에서 바움 유키 우다가와 대표 및 팀원이 청중과 둘러앉아 얘기 나눴다 (신병곤 촬영, 서울시 청년허브 제공)


참고자료

마루노우치 아침대학 공식 웹사이트

마루노우치 아침대학 공식 페이스북



이 글은 <나는 1인 기업가다> 매거진 11월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나는 1인 기업가다> 매거진은 이곳에서 무료로 내려받아 볼 수 있습니다. PDF 파일입니다. 과월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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