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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ul 09. 2023

내 이름이 나에게 주는 감정

Snoot 7-8월

"내 이름은 수지가 아닌데 자꾸만 실수로 수지라 부를 때". 휴지기의 그룹 미스에이의 <Good bye Baby> 가사다. 말하자면 내 이름은 '지현'이나 '보람'처럼 동시대 가장 흔한 여자 이름 중 하나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연예인 '배수지'겠다.


<드림하이>라는 드라마는 지금은 각종 인터넷 밈의 원천이지만, 방영 당시에는 가장 잘 나가는 청춘스타 배수지와 김수현이 주연을 맡아 대중문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내 동생 이름은 수현이다. 우리 남매는 이 드라마 방영 시기, 온 동네방네 먹잇감이었다.


아빠는 갓 태어난 나의 이름을 친구들에게 수배했다. 영어로도 부를 수 있고, 한자도 붙일 수 있는 이름으로. 아빠의 친구들은 규합한 듯 '수지'라는 이름을 가져왔고 영어 철자는 'Susie'가 됐다. 성인이 된 나는 한국인 중 아무도 이 철자를 수지라는 병음으로 읽지 못하는 것을 보고 'Suzy'로 바꾸었지만 내 여권에는 여전히 Susie로 붙박혀 있다. 한자는 빼어날 수, 지혜 지가 붙었다.



내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만 구구절절 영원히 얘기하는 이유는, 난 그것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거나 싫어한 적도 없고 이름에 대해 특별한 의견이 있던 적도 없다. 어떤 이들은 이름에 들어간 한자 획이 운명을 좌우한다던데, 실제 인생이 딱히 그리 돌아가진 않는 것 같다. 이름은 사회 구성원들이 나를 지칭하기 위해 임의로 지정한 기호일 뿐 어떤 의미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름의 진짜 의미는 타인이 쓰는 호칭이란 거다. 일본 홋카이도 벌판 위에서 부모님이 나를 카메라에 담으려 쉼없이 부를 때, 친구들이 초여름 파티에 날 초대하려 일정을 물을 때, 사내연애였던 (옛날)남자친구가 다른 사람을 수지라고 불러 우리 비밀이 들킬 뻔 했다며 웃었을 때.


나에겐 내이름의 뜻 같이 빼어난 지혜는 없다. 그러나 거기엔 지금까지 사람들과 함께 쌓아온 행복의 기억들이 장아찌처럼 공들여 재워져 있다. 내 이름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 뭘 주고 있을까, 상상해 보면, 대단한 건 아니어도 재밌고 따듯한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식 정신이 곤궁해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일 때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버텨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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