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ot 5-6월
누군가에게 인정 받은 경험에 대해 쓰는 것은,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어려웠다. 스누트 스쿨 과제 뿐 아니라 여태 적어 온 모든 글을 통틀어 가장 어려웠다. 나는 인정에 목 말라 본 적이 없어 타인에게서 인정 받은 일을 마음에 기록하지 않았다. 자식이 낫 놓고 기역자만 읽어도 호들갑 떨던 우리 열정적 부모님이 여러 이유 중 하나일테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모님이 팔불출처럼 굴어 나를 창피 주지 못하도록 단속하기 바빠 추가로 타인의 인정을 바랄 겨를이 없었다. 엄마는 "넌 천재로 태어났는데 내가 잘못 키워 이렇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가 어떻게인데?"라며 내가 버럭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이제는 하지 않는 말이지만.
"넌 글을 잘 쓰는구나"라는 칭찬을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때부터 들었다. 대학교 졸업 후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말을 참 잘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그런 코멘트들은 현상에 대한 서술이었을 뿐 인정으로서 충족감을 준 건 아니었다. 나는 언어를 잘 활용하는구나, 그럼 잘하는 걸 연마해야지. 그것이 효율적이니까, 그 정도였다.
6월 중 어느 토요일, 스누트 수업 후 수강생 분들과 교실에 남아 해 질 때까지 맥주를 마셨다. 학생 중 사주를 공부한 분이 계셔서, 나도 덩달아 생년월일을 알려 드렸다. 나는 살면서 한번도 사주나 점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동안 한번도 궁금한 적 없던 내 사주가 문득 알고 싶어진 건, 올해 나의 최대 숙제가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간 스스로가 자의식 없는 성숙한 어른이라 자부해 왔다. 동시에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외부 세상만 바라보았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고 나를 그에 알맞게 대접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내가 외면해 온 특질들은 잘못 삼킨 생선 가시처럼 목구멍 안에서 나를 긁어댔다. 어떤 사람이 괜시리 아니꼽고 필요 이상으로 짜증이 솟구칠 때마다 생리 주기를 확인하며 호르몬 탓을 하거나 눈 앞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비난했다(속으로만).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가사처럼 나에겐 태양을 맨 눈으로 바라볼 무모함은 있지만 거울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는 없었다. 추하고 비뚤어진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덜 괴로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 날 내가 태어난 시간을 정확히 몰라 생년월일만 알려 드렸는데 절반 정도 '소견'은 나온 듯 했다. 그 분은 내가 '한여름의 태양' 사주라고 했다. 연예인처럼 끼를 펼쳐야 하는 성격이고, 촛불처럼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불빛이 아니라 대지의 열기를 섭씨 30도까지 올리는 한여름의 해처럼 오로지 혼자서 타올라야 하는 불이라고 했다. 생전 처음 내가 시샘이 많고 스스로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사람이란 걸 인정했다. 어떻게 다 잘하겠어, 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은연중에 '늘 보통 이상은 해낼거니까'라는 자만이 있었다. 영업 일이 재밌는 것도, 뜬금없이 스탠드업 코메디를 하는 것도, 사람들 앞에서 재주 부리고 박수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내게 마땅한 건 칭찬이었지 못해서 욕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인정하자 나를 둘러싼 세상의 논리가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에 걸린 생선가시가 쑥 내려간 듯 했다. 나는 모난 성격의 소유자니까 더 조심하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 어떤 평가에 슬퍼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내가 사람들한테 주목 받고 싶어 한 짓의 후일담일테니. 전부 1+1=2만큼 쉬운 인과관계다. 이렇게 선명한 진실을 알기 위해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 했던 걸까. 아무리 고개를 끄덕여도 인생에 쉬운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