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억지로라도 픽션과 고전들을 읽어야겠다 생각한 것은, 점점 사유적 언어를 쓰는 능력이 퇴화하고 밈적 사고와 어휘 형용으로 모든 걸 설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옛날에 읽어본 적이 있었고 시각적 묘사가 풍부한 책이기 때문에 읽는 데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이번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 챕터, 네 챕터가 넘어가고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나갈 수록 내 머릿속엔 한 가지 티비 프로그램만이 떠올랐다.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였다. 이 생각을 떨치고 풍부하고 유려한 단어로 독후감을 쓰고 싶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한번 떠올린 순간부터 나는 망령에 사로잡힌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한자 한자 책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말벌 아저씨의 이미지 외에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지리산에 사는 대한민국 국적의 자연인과 조르바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의 로망스는, 그걸 품고 있는 본인 외에는, 타인이 바라 봤을 때 이해가 불가능 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웃음도 살 법한.. 그런 것들이 인간의 로망스인 것 같다. 개인의 로망스를 말로 풀어내 설명한 것을 듣거나 읽게 되면, 군데군데 '아 그런 것은 정말 멋진 일이지' 혹은 '나도 그런 일을 하며 살고 싶어'란 생각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찝찝함이 남는다. 목적성도 생산성도 없이 그저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는 일견 삶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듯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진부한 본질이 로망스기 때문이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명작이 된 것은 그리스의 자연이 인종, 국적 불문 누구나 동경할 멋진 풍광을 담고 있고 책의 배경 또한 그런 배경을 성실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냉소적인 관점이라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방종과 도덕에 대한 사유보다는 자연인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심리가 더 재밌는 것 같다.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을 검색해 보니 1차 세계대전 시기, 왕정들이 무너지고 유럽의 국가들이 속속들이 공화국으로 탈바꿈 하던 혼돈의 시기이고 자유진영(영국)과 파시즘 진영(이탈리아, 러시아..)도 가세해 지원국으로 복잡하게 싸우던 시절이다. 전쟁 중이니 자연히 민중들의 삶도 팍팍하고 여러가지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2023년 쯤 쓴 독후감이다) 대한민국도 휴전 중인 분단국가고, 경제는 공황으로 치닫는 듯하고, 위정자들은 마치 같은 틀에 대고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나라 말아먹는 짓'- 사회 안전망에 관련된 모든 예산을 삭감하는.. -들을 하고 있고, 인접한 옆 나라 중 한 군데는 주석이 종신 통치를 하겠다 하고... 혼란의 레벨로 따지자면 못지 않은 것 같은데 이래서 사람들이 자연인이 되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려는 건가, 싶다. 나에겐 수익성이나 커리어에 상관없이 그냥 재미로 기획해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몇가지가 있는데(안정적인 수익 자동화를 구축하거나 떼돈을 벌면 재미로 그런 것이나 하며 살고 싶다고 공상하는 일들) 하나는 코메디 극을 써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도 어떻게 보자면 그 창작을 위한 자료 조사의 일환일 수도 있는데,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모큐멘터리 코미디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