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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이야기

연말에 싯타르타를 읽으며 적은 노트

책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by Good night and

이 책은 싯다르타가 인생의 전반에서 거친 깨달음의 순간, 더 정확히는 깨달음이라기보다 깨달음에 대해 배워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배움의 순간에 싯다르타와 주변 인물들은 자신이 몰랐던 영역으로 한발짝 나아가거나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참이 아닐 수 있다는 경험과 사유를 하면서 매 챕터마다 정반합의 결론을 내린다.


책 한 권 내내 이 과정을 쭉 지켜보다 보니 결국 깨달음은 '받아들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빈다>에서 말하는 부분,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그러니까 지혜는 언어로 그 본질을 지칭할 수 없고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언어로 전수될 수 없다는 것, 그 이유가 바로 깨달음은 받아들임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하는 개념이기 때문인 것이다.


받아들임은 무심해짐과는 다르다. 더 포용적인 적극성이 내포돼 있는 개념이다. 관대해지는 것 또한 받아들임이라는 개념 안에 들어갈 수 있겠다. 내 감정을 깨닫고, 소화하고, 그 감정과 장기간 공존할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을 운전해 가는 것- 이 모든 과정과 관념이 받아들임이다.


연말(2023년쯤 쓴 글이다)에 나는 육체적으로 지치고 정신적으로 꽤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애쓰고, 반대로 희망적인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지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무나 지쳤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다는 사실 자체를 말이다. 나는 이 세상에 필요에 의해 태어난 인간이 아니며 내가 올라타 있는 나의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외발 자전거기 때문에, 내가 계속 발을 굴러야 할 이유를 찾든 못찾든 상관없이, 변치않는 단 하나의 진리는 내가 발을 멈추면 세상은 넘어지고 나는 땅에 떨어진다.


()하지만, 이 괄호 속에 내 감정을 나타내는 어떤 형용사가 들어가는지에 상관 없이, 나는 받아 들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만이 생을 지속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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