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월 홍콩
구룡성채를 처음 본 것은 한 블로거의 여행 후기에서였다. 사실 ‘구룡성채’를 본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진 건물 터 위에 지어진 ‘구룡성채 공원’을 봤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잘 조경된 공원은 아늑하고 예뻤다. 날렵한 검은색 기와를 얹은 청나라 양식의 건물들과 열대 기후 특유의 무성한 나무가 잘 어우러져 정돈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공원 입구에 있는 옛 구룡성채의 모습을 축적으로 재현한 디오라마였다.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고층건물의 모습을 재연한 네모난 작은 기둥들이 한치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디오라마의 모습은 이질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구룡성채’를 구글링하자 생전 처음 보는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룡성채의 모습을 숫자로 묘사하자면 이렇다. 0.03㎢의 구역 안에 5만 명이 모여 살았고, 2차 대전 이후 계속 안으로, 위로, 불법증축을 하며 건물과 사람의 밀도가 점차 높아지다 1994년 당국에 의해 철거 되었다.
내부 주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림과 문장으로 묘사하자면 아래와 같다.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기 때문에 건물 안에는 빛도 바람도 들지 않았다. 치외법권 구역인 탓에 구룡성채 거주 주민들 중에는 출생신고나 주민 등록 등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고 마약이나 삼합회의 검은 돈 거래가 일상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은 점점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해 갔다. 구룡성채 내부에는 학교, 병원, 부동산 등 여느 주거지역이나 상권에 있는 인프라들이 주민들의 손에 의해 생겨났다. 물론 모두 무면허, 무허가였다.
성채 안쪽에 살던 주민들은, 엘레베이터도 없이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바깥까지 나가 쓰레기를 처리하고 올 엄두가 나지 않을 땐 성채 가운데 자그마하게 남아있던 청나라 양식 기와 건물 위로 쓰레기들을 던지곤 했다. 옥상에는 자신들의 정원과 놀이 공간을 가꾸었다. 화분이나 토끼, 새 등의 동물을 키웠다. 지금은 없어진 카이탁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구룡성채의 옥상을 스치듯 낮게 날아다녔다.
그 모습들에 그토록 끌린 이유는 뭐였을까? 어쩌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두운 세계에 대한 안일한 호기심이었을까? 지금도 그곳에 집착한 이유를 한 가지로 설명하진 못한다. 어쨌든 일상 속에서 마주쳤다면 일말의 죄책감까지 느껴 고개를 돌렸을 풍경이었지만 ‘이미 없어진 곳’이었기에 나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끈질기게 구룡성채에 대한 자료를 뒤진 결과, 철거되기 전 성채 내부에서 촬영한 독일 다큐멘터리의 유튜브 링크, 그리고 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린 내부 단면도 여러 장을 찾을 수 있었다. 다시 홍콩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룡성채는 더 이상 그 곳에 없지만 그 흔적이라도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
두 번째로 찾은 홍콩에서의 셋째 날은 아침부터 잔뜩 흐렸고, 부슬비가 간헐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받쳐들고 지도에서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흐린 아침 하늘 아래 구룡성채 모형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이상하게 감동했다. 이 전지 크기만한 금속 모형을 그토록 직접 눈에 담고 싶어 이 곳까지 찾아온 것이었고, 마침내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상상했던 여러 이야기들을 다시 천천히 되뇌어 보았다.
구룡성채에 대한 이야기는 낭만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오히려 기이하고 무서운 구전동화에 가까웠다. 인터넷에서 찾은 블로그들에는 ‘마계’라느니 ‘한번 들어서면 나올 수 없는 곳’ 등 과장이 잔뜩 섞인 표현들이 쓰여 있었다. 빛도 바람도 한점 들지 않는, 미래 도시 같은 형태의 거대한 슬럼가는 그런 상상력들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서는 그런 외부인들의 상상력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운 주민들의 일상이 이어졌다. 그들은 컴컴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만두를 빚고, 국수를 뽑고, 닭장 같은 이층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더러워졌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복도와 계단을 오가며, 그저 살고 있었다.
구룡성채 철거가 결정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기로 결정했을까? 아마 그들 중 대부분은 구룡성채보다 무엇 하나 나을 것 없는, 더 깊숙하고 더 어두운, 더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어느 골목의 좁은 방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숨죽여 성채 안에서의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구룡성채의 철거가 그들의 존재를 지울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테다. 나의 상상력은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 성채와 그 주민들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모르게 되어, 나는 공원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벌써 정오가 가까워 오고 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