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7살 때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다. 그 때는 물 속에서의 기억보다는 수영장까지 어떻게 갔었는지, 락커룸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그런 것이 주로 기억 난다. 수영하는 법을 처음에 고생하며 배웠으면 그 첫 느낌들이 생생히 기억날 것 같은데 처음 물 속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운 것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무엇이든 어릴 때 배울수록 두려움이 없는 법이라 그런지 몰라도 물에 뜨는 것, 물 속에서 호흡을 참는 법, 모두 자연스럽게 배운 모양이다. 물 속에 들어가면 땅 위에서 느끼던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좋았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편했다.
어릴 때 몇 년간 배워 익숙해서인지 지금도 여러 신체 활동 중에 특히 수영을 즐기는 편이다. 평소에 몇 군데에 스포츠 센터의 수영장에 가면 보이는 것들은 정해져 있다. 레인이 나눠져 있는 성인 풀장에서 수영모를 쓰고 물안경을 낀 사람들이 줄과 속도를 맞추어 수영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 센터 수영장은 바깥으로 거대한 채광창을 내 놓았다. 그래서 누워서 배영을 할 때면 해가 어떻게 기울고 있는지가 보인다. 새벽이나 아침에 수영을 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아침잠이 많은 탓에 사실 아침에는 의미 있는 활동은 거의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수영장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배영을 하며 발장구를 치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의 언제나 이제 곧 서쪽으로 넘어가 사라질 준비를 마친 햇빛이었다. 아침의 푸르스름함과는 다르게 어딘지 좀 더 노랗고, 더 게을러 보이는 빛 속에서 항상 수영을 한다.
실내 수영장들의 물은 대체로 항상 미지근한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물 속에 몸을 담글 때는 새로운 기분이 든다. 공기가 아닌 물의 밀도와 온도가 살갗을 둘러싸는 그 느낌은 물의 온도가 어떠하든 항상 그렇다. 때로는 아늑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종류의 신체 활동들처럼 물 속에서 팔다리를 움직이는 일은 힘이 들고 호흡이 가빠지는 동시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준다.
나는 휴가든 일로든 호텔에 머물게 될 때는 꼭 수영장이 있는지 체크한다. 수영장이 있으면 수영을 하던 안 하던 반드시 수영장에 간다. 도심 속에 있는 호텔들에는 수영장이 대부분 높은 층에 위치해 있는데, 기분 탓인지 실제로 물이 있는 곳은 주변보다 온도가 낮기 때문인지 수영장 선베드에 앉으면 쾌청한 느낌이 든다. 꼭 한 번 이상 수영을 하거나, 수영을 하지 않으면 선베드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마치 내가 그 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식 같은 거다.
2013년에는 처음 혼자 휴가라는 것을 갔다. 숙소는 홍콩섬에 위치한 무난한 비즈니스 호텔이었는데 로비에서는 강렬한 민트에 약간의 대나무가 섞인 냄새가 났고 5층 즘에 꽤 큰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짐을 풀자 마자 수영장으로 갔다. 이번에도 수영장에 들어서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 라이프가드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고 수영장에 들어가 그냥 하늘을 바라보고 물에 몸을 띄웠다. 햇빛이 점차 사라져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고 물에 담갔다 공기에 맞닿은 살갗의 온도는 그보다 더 빠르게 식었다.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빌딩숲을 바라보며 Pacific!의 Reveries 앨범을 들었다. 거의 처음으로 나는 ‘어른이 돼서 너무 좋다’고 느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가고 싶은 때 언제든 수영장에 갈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에게 여름 바캉스는 홍콩 하버플라자 호텔의 민트 풀 냄새와, Pacific!의 노래와, 피부 위에 남아있는 미지근한 물이 공기 중에서 식으며 소름이 오소소 돋는 감촉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손이 잘 닿지 않는 일상의 구석들에 찌든 때가 끼는 것 같을 때 나는 수영장에 가고, Pacific!의 노래를 듣고, 방에 혼자 앉아 풀 향기가 나는 향초를 켠다. 그렇게 하면 코와 귀와 피부에 남은 기억들이 되살아나 일상의 찌든 때들을 모두 닦아 내 주는 기분이 든다.
수영장에 갈 수 있는 생활이란 절대 오랫동안 우울할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