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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un 29. 2020

픽션 #1

2017년 2월

언니, 잘 지내세요? 언니에게 편지를 쓰게 되다니,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도 따로 연락해 본 적도 없는 제가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 보내는 이 편지에 많이 놀랄지 모르겠어요. 언니 저는, 언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요. 저도 왜 언니가 떠올랐는지는 사실 논리적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요. 언니도 제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길 하는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답장을 받고 싶거나 언니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언니, 이 편지는 읽고서 버려도 되고 아예 읽지 않아도 괜찮아요. 혹시 언니가 답장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서 언니의 근황에 대해 묻지도 않을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예의없이 제 얘기만 한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그냥 저는 이 편지에 답장을 바라지 않을 뿐이에요.


언니, 우리가 마지막 동아리 공연을 마치고 여름방학 전 마지막 뒷풀이를 하던 날 기억나세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날은 그 날, 2년 전 여름이었어요. 소나무길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우리는 너댓개 정도의 테이블을 붙여 앉아서 소주와 맥주를 시켜놓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어요. 인원수보다 한참 모자란 치킨을 몇 마리 시켜놓고 술 게임을 하다가 몇 명이 집에 가고, 몇 명은 테이블 위에 엎드리고, 나머지는 삼삼오오 되는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언니는 그 때 우리 사이에서 ‘특이한 사람’으로 불렸었어요.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특이하고 유별난 것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냥 그 당시에는 언니가 조소과에 다니고, 학교에 다닌지도 오래됐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얻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다들 언니를 특이하게 봤더 것 같아요. 언니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에 대한 그 시선을 매우 즐기는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받곤 했어요.


그 때 치킨집에서 언니는 그 때 이렇게 말했었죠.

“나에겐 두 부류의 친구가 있어. 하나는 내가 이름 있는 대학교에 갔다고 나를 부러워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들, 하나는 내 미래를 걱정해 주는 친구들. 전자인 친구들은 대부분 고향 친구들이야. 난 깡촌에서 자랐고 서울에 상경해서 대학에 다니는 애들은 정말 몇 명 없거든. 취직하고 자리잡고 살아도 그 지역을 멀리 벗어나지도 않고. 고향에 가면 친구 부모님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자식 자랑하듯이 해. 후자는 내가 이 학교에 와서 만난 친구들이지. 대기업에 취직하고 가끔 동방에 술 사주러 오는 걔네 있잖아. 퇴근하고 왔다면서 양복 입고 와서 회사 이야기 하고, 취업 조언 해주는. 너희도 이제 그런 친구들이 되겠지?”


언니,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모두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골목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멈춰서서 눈물을 터트렸어요. 집까지 가지도 못하고 가로등 밑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엉엉 울었어요.


언니, 저는 얼마 전 1년여간 그토록 염원하던 취직을 했어요. 생긴지 오래 되지 않은 중소기업이고 눈에 띄게 빨리 성장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금방 망할 것 같지도 않은 유통 회사에요. 저는 영업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잠에서 깨어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출근해서 컴퓨터를 두드리다가 회의를 하러 외출하고, 종종 회식을 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요. 언니, 저는 이거면 됐다고 생각해요. 제가 바라던 생활은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어딘가로 향해서, 부모님에게서 완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더라도 다달이 저금도 하고 용돈도 넉넉히 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은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일을 하고 있는 이런 것이었으니까요. 졸업을 한 뒤 영어 학원에 다니고, 취업 스터디를 하고, 매일 구직 사이트와 취업 커뮤니티를 샅샅이 훑던 지난 1년여 간 그토록 바라던 생활이었어요.


그런데 언니, 도대체 왜, 언니가 그 날 했던 이야기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걸까요? 매일 출퇴근 길 지하철을 탈 때마다 저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언니가 이야기했던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눠보곤 해요. 양복을 입고 피곤한 얼굴로 핸드폰 게임을 하는 남자들을 보면 ‘저 사람은 친구를 걱정하는 사람’, 대학교 점퍼를 입고 토익 교재를 잔뜩 들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저 사람은 걱정을 받는 사람’, 이런 식으로요.


언니, 제가 정말 되고 싶었던 것은, 목에 사원증을 걸고 친구들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었을까요? 한번도 저는 음악이 하고 싶다거나 미술이 하고 싶다거나 혹은 지금까지 했던 공부와 아주 다른 기술을 배워 직업으로 삼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어릴 때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는데 그것도 정말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항상 누군가가 저에게 장래희망을 말하거나 쓰도록 강요했는데 그럴 때마다 가장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직업을 고른 것 뿐이었어요. 제가 언제나 원한 것은 그저 무난하게 살아남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바라던 대로 지금 평범하게 매일 살아남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왜 조금도 기쁘지 않은 걸까요. 저는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살기 위해 그 오랜 시간 동안 영어 단어를 외우고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는 법을 익혀 온 걸까요. 언니,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걱정을 하는 사람, 걱정을 받는 사람. 저는 이제 이 외에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있을지 상상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걸요.


언니, 편지를 시작할 때 말했듯 저는 이 두서없는 이야기에 답을 바라지도 않고, 함께 마주앉아 신세한탄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건강히 잘 지내시라는 말로 이만 줄일게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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