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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OD Life

PC한 나라의 데브

넷플릭스 <마스터 오브 제로>

by Good night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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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오브 제로는 막장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드라마다. 뉴욕에 사는 주인공 데브와 친구들은 종종 바보 같고 지질한 언행을 하지만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갈등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부모님과의 의견 차, 연인과의 이별 등) 정도고, 국적을 불문하고 드라마들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인 복수나 치정 따위는 없다. 로맨스에도 진전이나 후퇴, 혹은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뿐, 다중으로 꼬인 관계라던가 서로 돌아가면서 사귄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없다. 어떤 회차에서는 아예 종교, 페미니즘, 성소수자 같은 다양성을 주제로 다룬다. 이러한 주제들을 다룰 때도 최대한 PC(politically correct)한 입장을 취하며 항상 소수자의 시선에서 이야기 하지만, 특정 그룹을 강력하게 비난하지도 않는다. 데브의 세상에선 모든 소수자들이 존중받고, 모든 갈등 주체들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결국에는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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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오브 제로에는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싶어 하지만 볼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라이프 스타일은 즐겁고 여유롭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자는 아니지만, 괜찮은 옷을 입고 파티에 가고 때로는 외국에서 머물기도 하며, 최신 유행 차트에는 절대 없을 그러나 매니악 하지 않은 80–90년대 음악을 듣는다.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모두 특별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주말과 휴일을 보낸다. 소수자 차별처럼 치열한 문제도 이 시리즈 안에서는 점잖게 다뤄지고 연애 관계를 비출 때는 로맨스를 가장 극대화 한다. 파티가 끝난 뒤프란체스카와 함께 우버를 타고 돌아가다 그녀가 내리고 혼자 남은 데브의 모습이 5분 가량 계속 비춰지며 Soft Cell 의 Say Hello, Wave Goodbye가 끊김 없이 흘러나오는 시퀀스는, 마스터 오브 제로 시즌2 전체가 가장 잘 집약된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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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실이 가장 자극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엽기적인 혐오 범죄 뉴스를 들어야 하고, 직장이 없는 것이나 직장에서 일하는 것 모두 힘들고, 주변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례하고 이상한 사람들만 넘쳐난다. 많은 컨텐츠들, 특히 TV 나 스트리밍 연속극들이 계속해서 말초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을 담는 이유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일상 속의 자극에 지친 사람들에게서 반응을 이끌어 내려면 이미 그들이 겪은 것보다 더 센 자극을 주어야 하니까.


마스터 오브 제로의 세계는 그의 대척점에 서있다. 더 강력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보다 반대로 은은한 수준의 냄새를 유지한다. 한 회 한 회 플롯이 주는 긴장감에 고취 돼 다음 화를 기다리기보다, 아무 때에 아무 회차나 틀어도 비슷한 흥미도를 유지하며 감상하게 된다. 전혀 PC하지 않은 현실 세계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스터 오브 제로를 보며, 여러 종류의 향수를 시향 하다가 커피 냄새를 맡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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