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Mar 14. 2021

결국 환상일 수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4

마지막, 태국 MOCA

보통 우리가 메트로폴리탄이라 부를 수 있는 크기의 도시들에는 거의 대부분 현대 미술관이 있다. 여기서 일컫는 현대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너무 밑도 끝도 없으니 그 부분은 대충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 한다. 그냥 간단하게는 그 지역에서 동시대의 대표성을 가진다고 보고 있는 작가, 작품들을 모아 놓은 곳이 도시의 현대 미술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현대 미술관의 정의를 그렇게 내렸을 때, 내가 직접 방문해 본 곳 중에서 가장 독특한 색채를 지닌 것은 방콕의 MOCA(Museum of Contemporary Art)였다.



이 곳의 독특한 개성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풀뿌리(?) 미술의 일환이라거나 권위에 기대어 인지도를 퍼트리고 작품을 거래하는 수직적 구조의 미술계에 민주적 시스템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등의 사회적 의의로 설명해야 할까? 사실 별로 그런 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리고 사실 지역색이라든지 고유의 개성을 논할 때 그런 식의 시선이 반드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그런 식의 시선- 로컬, 풀뿌리 같은 개념 자체도 사실은 1세계와 기존의 기득권에 발을 딛고 선 시선인 것이고 엄밀히 따지자면 불교 색채 같은 문화색은 태국에서는 주류 중 주류지, 풀뿌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태국이 작은 나라냐면 그것도 당연히 아니다. 방콕은 사이즈나 인구수, 그 외 여러 가지 지표로 봤을 때에도 아시아의 대표적 글로벌 메트로폴리탄 중 하나다. 그런 도시가 이렇게 한 가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도 아주 특이한 현상인데, 주 언어는 한국어고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는 다른 외국어는 고작해야 영어 정도인 내 기준에 그런 의미에서 방콕이란 도시에 대해 현대적(comtemparary) 시각에서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게 고찰한 콘텐츠는 지금까지도 잘 없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힙스터'들 사이에 방콕이 한창 뜰 때에도 그냥 거기 가면 무엇을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지-그것이 얼마나 '새로운 힙'인지 강조하는 이야기만 많았을 뿐이었다.

방콕만의 독특함이라 할 수 있는 대도시에 스며든 소승불교 문화에 대해 분석한 글이 많이 없는 것은 아마 1세계의 언어(외국어, 모국어를 일컬을 때의 언어뿐만 아니라 언어 그 자체)로 풀어 해석하기에 충분치 않기도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는 외부인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겠지. 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만약 그런 해설을 읽는다 해도 <기생충>이나 <미나리> 같은 영화에 대해 영어로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이는 백인들을 지켜보는 한국인 같은 기분일 것이고 말이다.



결국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일을 반복하며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불현듯 내 시선이 기존에 익숙한 기득권의 언어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게 되면 현존하는 익숙한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고 '평가'하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분명히 뭔가 이런 현상을 일컫는 학술적 용어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을 하면 할수록 이 단어의 의미도 저 단어의 의미도 내가 전하고자 하는 실제 현상이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 그래서, 방콕 MOCA가 도대체 어땠다는 건데?"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오히려 좀 더 원색적이고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말해야 할 것 같다. 기존의 미술관과 미술 관련 책자들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들은 그 무엇을 갖다 써도 안 어울린다. 일단 기존의 에스테틱에 익숙해진 눈에는 미술관 공간과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 모두 세련됨이나 멋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냥 색달랐다. 당연히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개념인 미니멀리즘이나 추상표현주의 같은 것과는 좀 거리가 있었고, 소장품 중 추상화도 몇 점 있지만 '미술사의 족보'를 가진 나라들에서 표현하는 추상과는 의미의 레이어나 표현 방식 자체도 굉장히 달랐다. 

하지만 그냥 색다른 것 자체를 볼 때에는 굳이 꼭 그것을 해석하는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낯설고 신기하면 된 것이지, 그에 대해 나보다 더 깊은 속내와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굳이 내가 입을 열어서 그것에 대해 떠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종교적 아트의 영역은 이미 서양 기준 중세 시대 너머로 사라졌다고 믿는 포스트모던의 자아를 가진 현대인의 눈 앞에 압도적 크기의 탱화를 여보란듯 '현대미술관'에 걸어둔 방콕의 이 공간을 거닐며 나는 깊은 반성과 함께 좀 더  입을 다무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모든 것은 기호를 덧입은 환상이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환상일 수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