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22년 7월의 첫날
해외에 안 나가고 있을땐 몰랐는데 인천 공항에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눈에 들어오자 3년이나 한국 밖으로 안 나갔단 사실이 실감 되며 기분이 이상해졌다. 거의 2주 간 해외체류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주 오래전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출장을 갔다가 홍콩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올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서 일주일 정도 동남아시아를 떠돌다 마지막으로 휴가를 보내러 홍콩에 들렀고, 이 때 리펄스 베이에 갔을 때 평생 그 장소를 사랑하게 될 걸 알았다.
이번 미국행에서 출장 기간을 빼면 온전히 여행지를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근 1년 정도는 며칠을 계속 놀기만 해 본 적이 없었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겠다는 당찬 계획도 세우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상은 여행 일정만 다 소화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지만.
왜 쉬는 동안 굳이 글이 쓰고 싶었는지는,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의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의 마지막 장에서 에세이에 대한 그의 견해를 기술한 챕터 속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글을 쓸 때 픽션은 더 겁이 나지만 논픽션은 더 어렵다. 논픽션은 현실에 기반하고 있고 오늘날 느껴지는 현실은 압도적으로, 회로가 터질 정도로 거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반면 픽션은 무에서 나온다. 그런데, 말하자면, 사실 두 장르 모두 겁이 난다. 둘 다 심연 위에 걸친 줄을 타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심연이 다르다. 픽션의 심연은 침묵, 허무다. 반면 논픽션의 심연은 '완전 소음', 즉 모든 개별 사물과 경험의 들끓는 잡음, 그리고 무엇을 선택적으로 돌보고 표현하고 연결할지 어떻게, 왜 할지 등에 대한 무한한 선택의 자유다.
내 주변에 들끓고 있는 이 잡음들을, 휴가라는 억지 여유를 틈 타서 어떻게든 붙잡고 정리해 보고 싶었다.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몇 방울의 시간을 쥐어 짜서라도 노력했다는 점에서 괜찮았던 것 같다.
연초에 조앤 디디온과 존 버거의 책을 읽으며 나는 문장을 쓸 때 '어떻게 읽힐지' 고민하는 것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문장이라는 것은 내가 단시간에 머리를 굴린다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장은 나의 사고회로를 대변한다. 단순하되 명료하게 생각해야 하고, 친절하되 헤프지 않게 설명해야 한다. 묘사는 풍부해야 하지만 군더더기는 없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요즘의 나는 말초적인 짜증을 표현하기보다 입을 다물고 한 번 더 생각하고자 한다. 화가 날 때에는 내가 왜 화가 나는지를 더 깊이 탐구한다. 그리고 자주 달리고, 많이 웃기 위해 여러가지를 공부한다. 하지만 동시에 둔감해지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 감각은 예민하게 벼리되 표현 방식은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지도록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까지 인간이 성숙하기가 참 쉽지 않다. 여행을 하고 에세이로 경험을 적어내는 연습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