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루클린, 2022년 6월 29일 수요일
월말까지 회사 영수증을 처리해야 하는데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오전 내내 부랴부랴 모든 영수증을 처리하고 점심때가 다 되어 노구치 뮤지엄으로 향했다. 이사무 노구치에 대해선 사실 아무 정보가 없이 그냥 다짜고짜 좋다는 추천만 받고 노구치 뮤지엄으로 향한 건데 뮤지엄 공간 자체가 정말 멋졌다. 노구치의 조각들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지금 인류가 사실은 지구와 태양의 나이로 따지면 고대 인류에 가깝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흔히 추상 미술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추상이 발전한 문화의 산물일까? 잉여 자본 없이 귀족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던 산업혁명 이전 시대 사람들도, 왕족이나 귀족 같은 전통적 무산계급도 추상적 세계를 살지 않았을까? 종교나 뭐 다른 형식으로 말이다. 몇 천년(그 때까지 지구가 무사하다면) 뒤의 인류가 노구치 뮤지엄이 있던 자리에서 출토된 조각품을 보고 뭐라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종교적 제의를 치를 때 쓰던 제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아니, 선형적 역사 속 선대인들이 종교와 미신을 믿었다는 것도 지금을 살고 있는 고대 인류(가 될) 사람들의 환상이니까, 진짜 후대인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는 상상도 어렵다.
맨해튼은 그 안에 있을 때보다 브루클린에서 강 너머로 바라 볼 때 더 아름답다. 맨해튼에서는 절대 못 살겠는데 브루클린에서는 완전 살고 싶다. 물론 이 메모를 남기는 지금은 날씨가 굉장히 화창하고 때문에 아름다워 보이는 걸 수 있지만. 아무튼 브루클린이 너무 좋다. 길도 넓고, 동네도 깨끗하고, 자전거 도로도 잘 돼있고, 거리에서 대마 냄새도 안 난다. 여기에 비하면 맨해튼은 똥통이나 다름없다. 클린턴 힐에 있는 집들이 너무 깨끗하고 예뻐서 깜짝 놀라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다. 클린턴 힐에서 브루클린 뮤지엄 주변 일대에 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훨씬 정감가는 외모와 차림새다. 물론 브루클린 자체가 베드 타운에 가까워서 그런 거겠지만, 어쨌든 맨해튼 보다 훨씬 아시안도 않고 인종 다양성도 높다고 느껴졌다.
센트럴 파크 지나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가는 길에서 느낀 위화감에 반해 여기서는 훨씬 편안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브루클린은 맨하탄에서 물리적으로도 진짜 멀다. 직선거리로는 그렇게 멀지 않은데 중간에 강이 있어서(사실상 바다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맨하탄에서 브루클린으로 이동하는 것이 정말 오래 걸렸다. <섹스앤더시티>에서 미란다가 브루클린으로 이사 가겠다고 했을 때 캐리가 왜 그렇게 질색팔색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브루클린 뮤지엄에서도 큰 만족감을 받았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제국의 박물관이라면, 브루클린 뮤지엄은 완전히 민속 박물관이다. 유색인종 혹은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몇 백배 더 환영 받는단 감정을 느낄 것이다. <마스터 오브 제로>에서 데브가 프란체스카를 데리고 브루클린 뮤지엄 투어를 시켜줬을 때, 프란체스카가 보고 싶어했던 작품은 바로 주디 시카고의 <The Dinner Party>였다. 이 대형 설치물 주변에는 Baseera Khan의 페미니즘 작업이 설치 돼 있었다. 큐레이션 구성이 그랬던 건지, 브루클린의 분위기에 내가 완전히 젖어 들어서인지, 구겐하임의 세실리아 비쿠냐 전시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웠다. 그만큼 좀 더 직설적인 표현들이기도 했고. 한국엔 이런 곳이 있었던가? 'Fine Art'처럼 사회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더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대형 미술관이 서울에 있었는지 바로 떠올리기 어렵다.
브루클린 뮤지엄 뒷마당에서 그릴 치즈 샌드위치를 사서 점심을 먹었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야외 학습을 나와 있었다. 깔깔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트에 무언가 적고, 서로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 다인종의 10대 아이들을 보며 이 곳이 '미국 희망편'이 아닐까 싶었다.
이번 뉴욕 여행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누가 물으면 브루클린에서 자전거를 탔을 때라고 하겠다.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나와, 덤보 근처까지 시티바이크를 탔다.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한껏 느끼며 브루클린 공공 도서관을 지나 난생 처음 보는 주택가를 지나 한국 전쟁 베테랑 공원까지 갔다. 웅장하게 디자인된 입구를 가진 브루클린 공공 도서관 앞에서 스케이트 보드로 점프하는 기술(기술명을 모른다)를 몇번 연습하다가 세네번 만에 성공하는 남자 아이와 그 애를 계속 찍어주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자 며칠간 뉴욕에 대해 가졌던 시니컬한 감정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공공 자전거를 타고 조용하고 소박한 주택이 줄지어 늘어선 브루클린의 길을 지나고 있으니, 달구지 같은 기동력을 가진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점점 뉴욕이 좋아졌다.
한국전쟁 베테랑 공원 앞에서 리프트를 타고 맨해튼으로 돌아올까 했는데, 차가 너무 늦게 오고 차비도 비쌌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올 거리는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여전히, 미친듯이 더러웠다. 발바닥이 아파 서 있기가 힘들어 빈자리에 앉기는 앉았지만 정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았고 최대한 지하철 안의 어떤 것도 내 손에 닿지 않게 애를 썼다. 뉴욕 지하철의 개찰구에는 티켓조차 제대로 긁히지 않는다. 열차 안에서는 1분도 졸면 안된다. 자기가 내릴 정거장까지 계속 손가락 꼽으며 숫자를 세야 하기 때문이다. 열차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안내 방송도 제대로 안 들리고 정차역에서 문이 열릴 때 머리를 빼고 한껏 두리번 거려야만 지금 역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찾을 수 있다. 정말 웬만하면 안 탔는데 브루클린-맨해튼 간 이동에는 지하철 밖에 효율적인 방법이 없었다. '브루클린에서 살게 된다면, 맨해튼에 출근해야 하면 어떡하지?'같은 쓸데 없는 상상을 해봤다. 이미 내 영혼은 클린턴 힐 앞의 집을 알아보고 있다.
홀푸드Whole Food에서 과일과 집에 가져갈 기념품을 사려고 타임스퀘어 역에서 내렸다. 42번가를 지나오는데 보건소 사무실 앞에서 안티 백서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행인들이 그들에게 큰 소리로 시비 걸면서 말싸움을 했다. 그냥 거의 광화문이랑 똑같았다.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해서, 길에 있는 검사소 천막에 가서 코로나 신속 항원 검사를 하고(30불이나 냈다) 마트에 들어가 다 먹지도 못할 과일과 초콜렛 같은 걸 잔뜩 샀다. 뉴욕을 향한 이 따스한 애정을 좀 더 이어가고 싶어 밤에 <마스터 오브 제로>를 다시 봤다. 이전에는 그냥 평범하고 점잖은 코메디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열린 마음으로 도시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뉴요커라면, 외국에서 놀러온 친구에게 구겐하임과 모마보다는 브루클린 뮤지엄과 휘트니 미술관, 뉴뮤지엄을 먼저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불행히도 뉴뮤지엄은 월,화,수에 쉰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못 갔지만!). 떠날 때가 되니까 뉴욕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