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부동산에다 집을 내놨다. 아파트 단지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부동산이었다. 여자 사장님이 있었는데 나만 믿어라 하는 분위기였다.
한 달 뒤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이 좀처럼 팔리지가 않았다. 제일 탑층이라서 층간소음 걱정 없이 정말 조용했다. 그렇지만 집안 구조가 복도식인 타워형 구조였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마다 집은 깨끗해서 좋은데 구조가 정말 특이하다는 말을 하곤 연락이 없었다.
어떡하지. 이사 가야 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고 갔는데, 하나같이 구조가 정말 특이하다는 말을 하곤 집을 산다는 사람이 없었다.
근데 그날 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백발이 무성한 90살 가까이 되어 보이는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와 60대로 보이는 남자분이 함께 집을 보러 왔다. 부동산 아줌마도 아주 깍뜻하게 대하는 게 평소랑 조금 달랐다.
집 근처에 성당이 있었는데, 성당 수녀님들이 살 기숙사를 구하고 계신다는 거였다. 우리 집은 이사를 가면서 옷방에 있던 붙박이장을 놔두고 가려고 했는데 그 부분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리고 에어컨도 혹시 놔두고 갈 거냐고 물어보시길래 원하시면 에어컨도 드린다고 말했다. 정말 좋아하셨다.
그렇게 집을 보러 온 지 십 분도 안되어서 바로 계약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다행히 집을 팔고 이사를 갈 수 있었다. 이사 가는 날 아침에 차를 타고 동네를 떠나는데 기분이 정말 묘했다.
눈물이 나는데 슬픔의 눈물도, 그리움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먼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쌓이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래. 좋았던 일들도 정말 많이 있었지. 끝이 어떻게 되었던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들도 있었고. 첫 아이를 키우고, 둘째는 임신하고 출산하고. 연년생인 두 아이를 신생아 때부터 6살이 될 때까지 그 집에서 키웠으니까 말이다. 나의 육아는 온통 그 집과 함께 했다. 뒤집기, 기기, 일어서기, 걸음마까지.
지긋지긋하게 너무나도 싫었던 그 집을 막상 떠난다고 하니. 즐거운 추억들이 떠오르는건 왜일까? 그렇다고 다시 그 집에 살라고 말한다면 너무 싫다. 그렇게 그 동네를 떠났다.
그러고 나서도 일 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다시 그 동네로 돌아왔다. 예전에 놀았던 놀이터에서 놀거나 근처에 있는 자주가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갔다. 그렇게 처음으로 갖게 된 내집에서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