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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앤디 Mar 29. 2021

대청소를 하지 않는 사람이 일요일에 대청소를 하는 법

대청소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대청소를 하게 만드는 사람


아빠가 오신다. 나의 아빠가.

코로나 전에는 일 년에 두세 번씩 꼬박꼬박 부모님 댁에 내려갔는데 작년에는 겨우 딱 한 번 뵈었다. 아이들과 한 번 다녀오려고 할 때마다 양쪽에서 번갈아가며 확진자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동네에서 말 많이 나오니 아예 올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러다 작년 가을, 아프던 고모가 돌아가셨고 아빠와 동생이 급히 올라왔다. 그 해의 첫 상봉이었다. 용인에서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를 모시고 다 같이 시골집으로 내려가 며칠을 지냈다. 올해도 첫 만남이다. 우리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파서 오신다. 지방에서 그동안 다니곳과 연결된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요일. 평소 같았으면 그저 느긋하게 아점을 먹는 시간이지만 남편과 나는 결코 느긋하지 않다. 우물거리며 대청소 작전회의를 한다. 치우긴 해야 할 같은데... 그래도 어디를 먼저 치우는 것이 좋을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늘 생각하지만 아빠가 오시는 건 급이 다른 문제다.


사실 나는 대청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크고 시간도 너무 아깝다. 그래서 대청소가 아니라 날마다 하나의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택했다. '날마다 하나의 나눔과 비움'이라니. 말은 되게 있어 보이지만 소소한 비움은 공들인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가족수만큼 필요에 의해 들이게 되는 물건과 교구 및 종이(각종 알람장, 워크지 등)책이 쌓이는 속도는 참 빠르다. 마치 "참 애쓴다 애써." 하며 짐을 툭 던지고 비웃으며 지나가는 직장 상사 같다. 나는 멍하니 짐꾸러미를 바라본다. 남편의 말처럼 한 번씩은 뒤집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래, 오늘 한 번 뒤집어보자.







집이 가장 말끔하고 비어있던 때는 처음 이 집에 입주했던 날이다. 겨울씨가 갓 6개월을 지나 사방을 기고 잡고 서서 온갖 물건들을 입으로 가져가곤 했다. 가을씨는 '형아 되기'라는 거부할 수 없는 미션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다. 새 동네라 아직 어린이집도 없던 이 곳에서 나는 아이들과 늘 집콕 생활을 했다. 수시로 환기를 하고 미친 듯이 물걸레질을 했다. 새집 냄새와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가루 먼지 때문에 또는 그 덕분에.


그 뒤로 하나둘씩 필요한 물건을 들였다.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원룸에서 18평 아파트로, 그곳에서 다시 30평대 아파트로... 집이 커지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갔다.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울릴 정도로 텅 비었던 이 곳은 이제 이사할 엄두가 안 날 정도다.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아쉬운 대로 그냥 눌러앉을까, 당분간 이사는 못할 것 같다.

 



다음으로 가장 말끔했을 때는 공부방을 하던 때이지 않았나 싶다. 보이는 곳 위주로 말끔하게 비워냈고 학생들이 올 시간이 가까워오면 다시 점검을 하곤 했다. 선반에 예쁜 그림책과 액자도 올리고 어항 앞에 놓인 식탁을 깨끗이 닦아 귤을 올려두었다. 아이들은 수업 전후, 그 짧은 시간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거실을 돌아다니며 자기들 나름대로의 품평을 한다.


쌤네 집은 왜 이렇게 예뻐요?

쌤은 왜 이렇게 책이 많아요?

이거 다 우리 읽히려고 작전 짠 거죠?


쌤, 루이보스 차 정말 맛있어요. 엄마한테 끓여 달라고 해야지.

쌤, 귤 하나 가져가도 돼요? 아니 동생도 주게 두 개 가져가고 싶어요. :)




그리고 아주 가끔 누군가를 초대했지만 위드 코로나 덕분에 1년 넘게 그럴 일은 없었다. 덕분에 집구석은 엉망이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비워내고 정리하기보다 내 할 일부터 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있다. 정해진 짧은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뒤돌아보면 어질러진 공간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할 일 다 했어? 우리는 어쩔 건데?"라고 묻는다. 뜨끔하지만 시선을 돌려 애써 무시한다. 아니면 아이들과 5분 정리 신공을 펼치거나.







무튼 길었던 미룸 속에서도 황금 같은 일요일에 비워내기를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빠가 오시기 때문이다. 나의 아빠가. 한 때는 경외의 대상이었고 전부였던 나의 아빠. 어떨 때는 왜 저러시나 싶을 정도로 진지하고 까칠했던 나의 아빠. 깊고 여린 속이 다 보이는데 여전히 표현은 꼬장꼬장한 사람.


작년에 보았던 내 아빠는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늘 어렵고 데면데면한 부녀 사이. 그렇지만 아빠 앞에서는 일부러 명랑한 척, 철없는 척을 한다. 이제는 귀도 잘 안 들리고 낮잠을 더 많이 주무신다. 안쓰럽지만 그래도 기쁜 순간이 있다면 아이들 덕분에 미소를 짓거나 크게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을 보게 될 때이다. 그런 아빠가 오신다니 이것은 설렘일까, 두려움일까.


남편과 나는 마치 혼날까 봐 동동거리는 아이들 같았다. 남편은 식기세척기를 전담하기에 주방과 재활용품 파트를 맡았고 나는 광활한 거실에 쌓인 책과 종이들, 놀이방 언저리를 맡았다. 두 어른 아이는 종종거리고 때론 끙끙거리며 빠른 손놀림으로 구석구석 정리를 하며 비워낸다.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우리가 평소와 다르다며 이상하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자기들 노느라 관심도 없다. 레고를 정리하기로 한 가을씨는 몇 피스 정리하곤 다시 조립을 한다. 겨울씨는 부기 보드와 옥토넛 책을 들고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데 푹 빠져있다.







바닥에 널브러진 레고 부품들이 계속 그 자리에 놓여 있다. 남편과 나는 돌아가면서 '지금은 정리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고개를 떨구며 시무룩해졌다가 이내 불만을 토로한다.


할아버지는 깨끗한 집만 좋아해요? 우리 집은 원래 이랬는데......

그럼 저는 언제 레고 기차 마을 만들어요? 그리고 왜 겨울이는 정리 안 해요?



끙. 몇 번째지? 도돌이표다.


아이는 어떤 상황이던 자기표현을 하는 편이다. 좋고 기쁜 순간에도 크게 표현하고, 싫다는 표현도 숨기지 않는다. 남편이 안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나온다. 나는 그 와중에 '우리 집은 원래 이랬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오늘 좀 별스러워 보이기도 하네. 그러나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할아버지가 오시는 한, '우리 집은 원래 깨끗한 집' 이어야 하니까.


잠깐 쉬자. 둘이 주방에 서서 커피 한잔을 마신다. 아이가 첫 심부름으로 사 온 믹스커피다. 용돈이 필요하다며 심부름을 하겠다고 졸라댔고 딱히 필요한 것이 없던 던 나는 집 앞 편의점에서 '엄마가 마시던 노랑 커피믹스'를 사다 주면 좋겠다고 했다. 심부름의 대가로 이백 원을 쥐어주었다는 말에 남편은 너무 짜지 않냐며 타박한다.


커피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어린 시절로 옮겨간다.


자기도 이런 상황에서 엄마나 아빠한테 불만을 표현하고 그랬어??


무슨 소리야, 짤 없지. 엄마한테 바로 등짝 맞고 그랬지. 암말 않고 조용히 정리했던 것 같다.


그렇지? 우리 집도 아빠가 절대권력이라 대부분 '네에...' 하고 말았던 것 같아.

한 번씩 반항할 때도 있었지, 그런데 눈앞에서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편지로 쓰윽 통보하곤 했어. 그러고 아빠를 피하면서 또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그때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빠나 나나, 엄마와 동생들이나 모두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참 짠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다. 글도 공개로 쓰고 말도 하고 강의도 하니까. 억눌리고 억울한 마음이 어찌나 컸던지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겠다고 미리부터 다짐하곤 했다. 부모를 생각하면 고구마 먹다가 콱 막힌 심정. 우리 사이는 그렇지 않았으면 해서.



시계를 쳐다본다.


헉. 벌써 여섯 시야? 나는 딱 두 시간만 하려고 했어. 


무슨 소리야, 나는 하루 종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 쪽 마무리할게. 자기가 저녁 차려줘. 이불도 남은 거 하나 마저 빨자. 저녁 먹고 참치 준비할게. 내일 혹시 내가 늦으면 자기가 좀 썰어드려.



대청소 시작한 지 여섯 시간이나 지났다니. 이럴 땐 좀 객관적인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일 저녁과 모레 아침 메뉴를 미리 다 정해놓았지만 참치 이야기를 하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참치 매운탕도 끓여드려야겠다. 많이 드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좋아하실 것 같다. 맵지 않고 삼삼하게. 순두부도 넣어야겠다.

그러니 조심히 와요. 아빠.




@글쓰는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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