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앤디 Jun 05. 2021

읽고 쓰는 그대에게 조르바가 묻는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나


조르바가 물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해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낸 게 도대체 무엇이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 준엄한 물음이다. 우리가 읽고 쓰고 하는 뜻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많은 종이를 씹어 삼키면서 얻어낸 게 과연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삶의 본질과 이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한낱 종이 벌레에 그치고 만다. (1986)


법정 스님, 샘터, 스스로 행복하라 중에서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지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읽고 쓰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는가. 그 뜻은 어디에 있는가. 


때때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일부러 거창한 질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목마름이 느껴질 때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궁금증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지 막막하고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한쪽이 답인 줄 알고 파고들었더니 반대편의 이야기도 못지않게 논리적이고 탄탄하다. 


두 가지가 다 사실이고 맞는 말인데 서로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한다. 윈윈이라는 말 모르나?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면 되지 않나, 숲도 보고 나무도 보라던지, 소통, 교류, 연대, 협력, 과 같은 좋은 말들이 왜 현실에서는 그저 텍스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상반되는 두 가지 방향을 동시에 품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중간에 서 있다. 가만히 서서 양쪽을 관찰하고 있지만 중간에 있다는 이유로 오해받기 딱 좋은 자리다. 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혼란스럽다. 






때때로 소화불량으로 괴롭다. 정신이 혼미하다. 토할 것 같다. 아, 그 책 여러 권을 동시에 읽지 말았어야 해, 그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지 말았어야 해. 뭘 그렇게 보고 들었던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넘은 날, 종이 벌레가 된 날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순간 통제력을 잃었다. 


먹었으면 제대로 소화를 시켜야 하고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로 살아가고자 고군분투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종일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시간을 썼다. 이 또한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같다. 내가 책과 폰을 가지고 논 건지, 그 녀석들이 나를 가지고 논 건지. 웃프다.


굳이 식사에 비유를 해 보자면 한 끼의 참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국에 말아서 허겁지겁 먹었다. 배가 고파서. 빨리 먹었더니 허기가 채 가시질 않는다. 이어 과일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 이내 입이 심심하다고 누룽지를 컵에 담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다. 이제 나를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먹으니 졸리고 속은 더 불편해진다.



부디 한낱 종이 벌레에 그치는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헛된 짓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하지만 헛된 짓이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모든 경험은 재산이라는 말, 보고 들은 것들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 자기 위안과 위로에 가까울 때가 있다. 이 생각의 구슬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내지 않는 한 이내 흩어져 버린다. 


제대로 사유하고 소화하고 나를 통과한 것들만 나의 일부가 된다. 내 피와 살이 된다. 그런 경험과 지혜가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불쑥 다가와 말을 걸겠지. 까맣게 잊은 줄 알았는데, 나 여기 있었다며 반갑게 손을 흔들겠지. 그러니 맥락을 만들자. 인풋 하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삽질하면서라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내일은 이불킥 할 지도 모르지만 일단 글을 쓰기로 했으니 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하루만 살아보자. 그러다 보면 삶의 본질에 가 닿을 수 있겠지. 아니 그런 거창한 건 모르겠다. 일단 이 순간이 즐겁고 유쾌했으면.




@글 쓰는 별사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