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겨울 나그네'

보리수(Der Lindenbaum)

by 김환

<보리수>를 떠올리면

오래된 웃음이 먼저 떠오른다.


학창 시절,

“독일인들도 보리수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수행을 할까.”

어린 상상이었다.


가벼웠던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왔다.

곱씹을수록 그것은

하나의 비유처럼 남았다.


절제와 성실, 의무와 규율.

베를린의 거리와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런 태도가

오랜 습관처럼 배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내게

수도승의 서약을 떠올리게 했다.


슈베르트의 <보리수> 속 청년은

나무 그늘 아래서 멈춰 선다.


그곳은 휴식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시험의 자리다.


머물 수 있지만

머물지 못하는 곳.

그의 여정은 방랑이 아니라

성찰로 기울어진다.


‘보리수’는 독일어로 린덴바움(Lindenbaum),

라임나무다.


유럽의 도시들은 이 나무를

길가와 광장에 심어

그늘을 남겼다.


사랑과 우정, 충성.

보리수에는 공동체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우리에게 당산나무가 그랬듯,

보리수는 독일인의 삶을

묵묵히 지탱해 온 존재였다.


슈베르트는 1827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여

《겨울 나그네》를 완성한다.


그 곡에 이르면

발걸음이 잠시 가벼워진다.


나그네의 노래인데도

선율은 뜻밖에 환하다.


하지만 그 환함 속에서

마음은 쉬어가지 않았다.

돌아설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만

더 분명해졌다.


그렇게

밝음으로 고독을 드러내는 노래.


《겨울 나그네》 스물네 곡 가운데

다섯 번째에 놓인 <보리수>다.


2022년 5월,

나는 베를린 운터 덴 린덴 거리를 걸었다.


보리수가 늘어선

1.5킬로미터의 산책로.

봄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은

<보리수>의 전주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췄다.


그 떨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겨울의 나그네가

봄의 거리 위에 겹쳐졌다.


슈프레 강가에는

백조 한 쌍이 떠 있었다.

움직임은 있었지만

소리는 없었다.


방황을 끝낸 나그네처럼.

슈프레 강변의 백조(보리수).jpg

보리수가 비친 슈프레 강가의 백조들


벤치에 앉아

그의 말을 떠올린다.


“가장 슬픈 음악에

나의 행복이 있다.”


그리고

첫 소절을

조용히 되뇐다.


"Am Brunnen vor dem Thore,

Da steht ein Lindenbaum."


“성문 밖 그 우울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보리수 아래서

나그네는 잠시 쉰다.


나는

다시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길을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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