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비아 <La Novia>
<La Novia>를 처음 들은 것은
사회 초년생 시절, 어느 야유회에서였다.
직장 선배가 불러 주던 그 노래에서
나는 가사의 뜻보다 먼저
감정의 결을 느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였지만,
낯설다는 이유로 밀어낼 수 없는 정서가 있었다.
그 울림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다.
그 무렵 내가 알고 있던 이탈리아 노래라곤
번안곡 <산타 루치아>와
<돌아오라 소렌토로> 정도였다.
익숙하고 정서가 분명한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La Novia>는 그들과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선율은 절제되어 있었고,
감정은 과장 없이 스며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곡의 정서적 배경을 알게 된 뒤,
나는 ‘사랑’보다 ‘헌신’을,
‘열정’보다는 ‘고귀함’을 말하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La Novia>는
내 노래가 되었다.
아내가 가장 자주 청한 곡이기도 했다.
그 이유를 묻진 않았다.
말로 옮기는 순간 사라질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며 이 곡은
특정한 시공을 넘어,
기억 그 자체로 남았다.
지금도 부르면
따뜻함이
몸 어딘가에서 되살아난다.
2021년 겨울, 밴쿠버의 평화 통일 모임에서
팔순을 맞은 한 회원을 위해
나는 다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날 한 사람이 이 곡을
<Non Ho L’eta>로 착각했고,
이후 종종 그 곡으로도 청을 해왔다.
그제야 나는
이 노래가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여러 언어와 삶을 건너온
오래된 목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곡은 1958년,
칠레 작곡가 호아킨 프리에토가 남긴 노래로,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건너 전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토니 달라라와 밀바가 불렀고,
영어권에서는 아니타 브라언트가
<The Bride> 혹은 <The Wedding>이라는 제목으로 노래했다.
이후 이 선율은
여러 언어와 음성으로 건너가며
각기 다른 결혼식과 이별의 순간을 지나왔다.
그러나 언어가 바뀌어도
노래의 중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가사에는
축복과 함께
조용한 상실이 겹쳐 있었고,
영어 가사에서는
결혼식의 서약처럼
밝고 단정한 사랑이 앞에 놓였다.
그 차이가
이 노래를 더 오래 붙잡게 했다.
축복의 노래였지만
마지막에는 늘 ‘Ave Maria’로 귀결되었다.
기쁨은 거기서 멈췄고,
남은 것은
보내는 사람의 침묵뿐이었다.
그날, 핀치오에서
그 정서를 곱씹던 어느 날,
나는 로마의 카시나 발라디에를 찾았다.
핀치오 언덕 위,
로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정결한 신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다.
보르게세 공원 안에 자리한 이 건물은
오래전부터
로마 연인들의 결혼식과 피로연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트라팔가 해전 당시
넬슨 제독이 지휘한 함선을 본떠지었다고 한다.
2024년 9월 21일 아침,
나는 바티칸 근처 숙소를 나서
산탄젤로성을 향해 걸었다.
성벽은
세월을 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푸치니의 《토스카》 3막을 떠올렸다.
성곽을 돌아
테베레강을 건너자
길은 포폴로 광장으로 이어졌다.
광장 중앙의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는
정복과 전유의 역사를 묵묵히 드러내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왜 이 노래가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계단을 따라 핀치오 언덕에 오르자
카시나 발라디에의 출입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핀치오 언덕의 카시나 발라디에(Casina Valadier)
철문 너머로 보이는 붉은 카펫과
고풍스러운 건물은
이곳이 축복의 장소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했다.
언덕 끝에서 내려다본
테베레강과 산탄젤로성은
한 몸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 순간,
영화 속 신부가 부르던
‘아베 마리아’가 떠올랐다.
기쁨 뒤에 숨겨진 슬픔,
밝음 속에 가려진
침묵 같은 노래.
나 역시
그리움과 희망 사이를
조용히 오가고 있었다.
침묵으로만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었고,
<La Novia>의 첫 소절이
부드럽게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Bianca e splendente va la novia..”
“하얗고 빛나는 노비아가 가고 있네요”
노래가 절정에 이르고
‘Ave Maria’로 마무리되자
지나가던 부부가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나는 안다.
완전한 이해도,
영원한 위로도
없다는 것을.
다만
스쳐 간 영혼의 울림이
잠시, 마리아께 닿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