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성벽에 울린 노래

그라나다 <Granada>

by 김환

어떤 도시는

발로 가기 전에

먼저 노래로 도착한다.


아구스틴 라라의 <그라나다>가 그랬다.


그 노래는

도착이 아니라

나를 더 먼 길로 불러내고 있었다.


그라나다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자리한 도시였다.

그 동경에는 언제나

노래와 장소가 겹쳐 있었다.


하나는 머물게 했고,

다른 하나는 나를 떠나게 했다.


하나는 기타의 떨림으로 시간을 붙잡는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다른 하나는

멕시코 작곡가 아구스틴 라라의 노래 <그라나다>였다.


서로 다른 시대와 대륙에서 태어났지만,

두 곡은 같은 이름의 도시로

나를 이끌었다.


사춘기 시절 처음 들은

타레가의 트레몰로는

음악이라기보다 숨결에 가까웠다.


사라지기 전의 음 위로

또 다른 음이 겹쳐지며

알람브라는 아직 닿지 못한 풍경으로 자라났다.


그곳은

머무는 음악이 닿을 수 있는 끝이었다.


라라의 <그라나다>를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11월,

성악 발표회에서였다.


한 발표자가 무대 위에 섰다.

그는 마치 자신의 성에서

걸어 나오는 영주처럼 당당했다.


연습 과정에서

음정이 흔들리던 나에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고음 내는 법을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사실과는 달랐지만,

그 말은 나 자신을 믿어보라는 격려로 남았다.


그날 이후 이 노래는

내 마음속에 하나의 지명을 각인시켰다.


그라나다!

아직 가보지 않은 땅이었으나,

이미 노래로 먼저 도착한 도시였다.


“Granada, tierra soñada por mí.”


"그라나다 나의 꿈의 땅"


첫 소절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심장을 두드리는 문장이었고,

동시에 하나의 약속이 되었다.


2022년 12월 18일.

파리를 떠나

그라나다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창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알람브라로 향하는 길을 서둘렀다.


2킬로미터쯤 오르막을 지난 뒤에야

궁전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원과 분수는

비에 젖어 있었고,

소리는 낮아졌다.


시간도 함께 느려진 듯했다.


알람브라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야 했던

시간의 성채처럼 서 있었다.

알람브라(그라나다).jpg

알람브라에서 내려다본 그라나다의 시가지


그 순간,

이 건축이 만들어낸 시간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


입장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그 여백을 안고 알카사바 요새로 향했다.


가파른 언덕 위 성채에 오르자

그라나다 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석류를 닮았다’는

도시 이름의 유래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요새 안을 거닐다 보니

폐허보다 먼저

사람들의 생활음이 떠올랐다.


불을 지피고, 몸을 씻고,

명령을 기다리던

수많은 하루들이

이 성벽 안에 쌓여 있었다.


이른 아침의 성곽은 조용했다.


그 침묵 속에서

아구스틴 라라(1897~1970)의 <그라나다>가

자연스럽게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라나다, 나의 꿈이 깃든 땅,

그대를 위한 내 노래는 집시의 노래가 되고,

환상으로 빚어진 이 노래는

우수의 꽃으로 피어나네.”


노래는

도시의 역사와 자연,

사람들의 체온을

함께 품고 있었다.


라라는 1932년에 이 곡을 발표했지만,

정작 그라나다를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스페인의 정서를 정확히 짚어냈고,

수많은 음악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곡을 불렀다.


다시 나스르 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리석 기둥과 종유석 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코란 구절의 조각은

압도적이었다.


햇빛이 기둥 사이를 옮겨 다니는 동안

그늘도 함께 자리를 바꾸었다.

시계 없이도

시간이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 사자의 정원을 지나

헤네랄리페로 향했다.


물길과 정원이 어우러진 풍경은

과장 없이도 충분했다.

절제된 장식은

오히려 긴 여운을 남겼다.


알람브라를 거닐다 보니

두 음악의 성격이 문득 또렷해졌다.


타레가의 트레몰로는

붙잡는 손처럼

이곳에 나를 머물게 했다.

사라지지 않으려는 음들이 겹쳐지며,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기억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반면 라라의 〈그라나다〉는

언제나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그 노래는 풍경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고,

도착보다 갈망을,

정착보다 이동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라나다는

그에게도, 나에게도

머무는 땅이 아니라

떠나기 위해

불러야 했던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1492년,

알람브라는

긴 침묵 끝에

다른 언어를 받아들여야 했다.


한동안 버려져 있던 알람브라는

이야기 속에서

먼저 숨을 되찾았다.

그 숨결이 남아,

오늘의 성을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오후가 되자 비는 잦아들었다.


거리에서

페스카토 프리토를 맛보았다.


바삭하게 튀긴 생선과 오징어,

새우가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양념은 많지 않았고,

맛은 오래 붙잡지 않았다.

기름의 온기만 잠시 남았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 도시의 음식은

머무르지 않았다.


기억을 붙들기보다

다음 걸음을 재촉하는 맛이었다.


저녁에는

알바이신 지구로 향했다.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람브라는

석양에 잠겨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좁은 골목과 작은 광장이 이어진

이 동네에는

중세의 호흡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밤 8시,

플라멩코 공연이 시작됐다.


석회암 동굴 안에서

울림은 벽을 치지 않고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무희의 발은

땅을 붙잡는 듯하다가

곧바로 밀어냈다.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리듬은 앞으로 쏠렸다.


그 가운데서도 일흔을 넘긴 노무희의 춤이

오래 남았다.


그 춤에는

설명이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버텨온 시간뿐이었다.


그의 표정과 몸짓에는

세월의 무게와

집시의 역사가 함께 스며 있었다.


기교보다 태도가 먼저였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

라라의 가사가 다시 떠올랐다.


‘반항적 꿈을 품은

무어인의 눈빛을 가진 여인이여.’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박해와 유랑의 시간을 보았다.


그 순간,

무어인에 대한 궁금증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호기심이라기보다

내 노래가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까웠다.


알람브라를 세운 이들은

노래로 슬픔을 견뎠고,

리듬으로 시간을 건너갔을 것이다.


나는 이미 한 번,

노래에 기대어 시간을 건넌 적이 있었다.


이베리아를 떠나

마그레브와 사하라로 이어진 길 위에서

그들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잃어야 했을까.


그 질문들은

이후 여정을 바꾸어 놓았다.


지도 위의 다음 목적지는 달라졌지만,

먼저 바뀐 것은

노래를 부르는 나의 태도였다.


그라나다는

하나의 도착지가 아니었다.


나에게 그것은

노래를 내려놓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지점이었다.


그것은

다음 여정을 향해

열려 있는 문이었고,


음악이었으며,

누적된 역사였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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