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내 말 전해 주오 Dicitencello Vuie
나폴리 앞바다의 깊고
느린 감정을 품은 노래가 있다.
<그녀에게 내 말 전해주오>,
말보다 늦게 도착한 마음의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사랑보다 기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나폴리 방언으로 쓰인 이 노래는 사랑의 고백이지만,
끝내 직접 닿지 못한 마음의 독백에 가깝다.
말은 입술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다 사라지고,
남은 것은 정념이 스며든 음률뿐이다.
이 곡을 처음 들은 것은 2018년 가을,
성악 아카데미에서였다.
테너의 음성은 맑았고,
기교를 앞세우지 않았다.
감정은 과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절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사를 이해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이 노래는 말보다 늦게 도착한 마음,
어쩌면 끝내 제때 도착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 남자는
타인의 입을 빌려 자신의 고백을 전한다.
잠을 잃고,
상상마저 고통이 된 끝에서
그는 마침내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애끓는 선율은
나폴리 특유의 운율과 서정을 품은 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2024년 9월 20일 아침,
나는 나폴리 근교의 고대 도시 폼페이를 찾았다.
한때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였던 이 도시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하루 만에 재 속에 묻혔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화산재가
도시의 시간을 깊이 잠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파괴 덕분에 폼페이는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남았다.
죽음이 기억을 보존한 셈이었다.
포장도로와 징검돌,
빵집과 세탁소,
간편식을 팔던 가게들이
줄지어 드러나 있다.
공공수도와 분수,
신분을 가리지 않는 목욕탕은
이미 일상이었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폼페이의 고대 원형극장
폼페이는
폐허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극적인 순간,
심연에서 말을 건다.
그것은 기억이며
성찰의 지렛대이고,
자연과 시간 앞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겸허함의 목소리였다.
도시 중심부의 포럼과 신전,
법정과 평의회 건물은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벽에는 선거 구호와
정치적 비판의 낙서가 남아 있다.
사라진 사람들의 생각이
아직 벽에 붙어 있는 듯하다.
폐허는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로마는 스스로를 완전한 문명이라 부르지 않았다.
부족함을 인정하며,
타인의 것을 받아들여 도시를 만들었다.
폼페이의 번영 또한
그런 조율 위에 놓여 있었다.
폐허를 걷다
문득 안나 마냐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에서
그녀는 파시즘에 맞선
민중의 얼굴이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울 줄 아는 배우.
시대의 슬픔을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
평론가 한창호의 말처럼,
그녀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함께 울 줄 아는
동정심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기 79년,
폼페이 사람들 또한
기쁨과 슬픔 속에서
살아 있었을 것이다.
그 참상을 애도할 얼굴을 떠올린다면,
나는 가장 먼저
그녀를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 본 오마주 영상에서도
이 노래는 배경으로 흐르고 있었고,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그녀의 표정은
음악과 놀라울 만큼
어울렸다.
폼페이 원형극장은
2만 석 규모였다.
증폭 장치 없이도
소리는 맑게 울린다.
극장 맨 위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았을 때,
흙먼지 섞인 바람과 함께
사라진 공연과 관객의 숨결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 순간,
평소 즐겨 부르던 이 노래는
더 이상 사랑 노래가 아니었다.
폼페이 최후의 날을 기리는
애가哀歌가 되었다.
“Dicitencello a 'sta cumpagna vosta
C'aggio perduto 'o suonno e 'a fantasia,”
“그녀에게 내 말 전해주오.
나 항상 그녀를 생각하기에”
갈망과 상실이 겹쳐진 이 고백은
시간을 건너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노래는
1930년, 작사가 엔조 푸스코와 작곡가 로돌포 팔보가 함께 만들었다.
수천 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돌이나 재가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품은
노래와 예술이다.
폐허 위에 남겨진 폼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끝내 남는지를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