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으로 남은 그리움

음악과 여행이 엃힌 기억들, <Non ti Scordar di me>

by 김환

이별의 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이

더 오래 마음을 붙들 때가 있다.


노래는

그 시간을 기억 속에

가장 조용히 묶어 두는 방식이었다.



2021년 가을,

우리 집 뒤뜰에서 열린 작은 가든파티에서

<나를 잊지 말아요>를 불렀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한 임원을 기리며

이 곡을 택했다.


그는 예전에 내가 부른 <오 솔레미오>를 기억하며

나를 ‘공동체의 파바로티’라 불렀다.

손수 가꾼 채소를 이웃과 나누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2023년 3월,

역이민을 떠나는 지인 부부의 송별회에서

이 노래는 다시 불렸다.


어린 아들은

자기 몸만 한 지게를 졌고,


부친은 씁쓸했다.


말없이 받아들였을 그의 표정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가족사의 무게가

내 노래 속에 조용히 더해졌다.



2025년 2월 말,

그 부부와 2년여 만에 다시 만났다.


강원도 원주 근교의 산촌 전원주택에는

긴 노동과 성실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틀 동안 탄금대와 중앙탑을 둘러보았다.


가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고 전해지는 탄금대.

절벽은 말이 없었고, 강물은 제 길을 흘렀다.


임진왜란 당시, 장수 신립은

이 절벽을 오르내리며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진 그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 고요히 남아 있었다.


나는 강 너머 들판을 바라보며

다시 이 노래를 떠올렸다.


역사와 음악,

두 겹의 서늘함이 몸을 스며들었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에르네스토 데 커티스와

도메니코 푸르노가 만든 나폴레타나 칸초네다.


1935년 동명의 영화

Non ti scordar di me의 주제가로 발표되었고,

이후 수많은 성악가들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나폴레타나’는 나폴리의 고향 의식과 사랑, 이별의 정서를 담는 전통 가요 양식이다.


1958년에는 같은 제목의 음악영화가 다시 제작되었고,

영화에서 페루치오 탈리아비니가 부른 장면은

“나를 잊지 말라”는 호소를 깊이 각인시켰다.


가사는 제비를 매개로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네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별의 슬픔은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점차 고조된다.



이 곡을 들은 건 2018년 성악 아카데미에서였다.


무대에 선 이는 여든을 앞둔 단원.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살며

늘 미소로 후배들을 격려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는 기교로 빛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 무대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었다.


노년의 삶이 지닌 고요가

그날의 공기를 붙들고 있었다.



2024년 가을.

포지타노를 여행하던 날,

이 노래는 다시 마음속에 울려왔다.


나폴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아말피 해안의 작은 마을.

좁은 골목 아래로 바다가 열리고,

산타마리아 아순타 성당이 햇빛 속에 서 있었다.


이 성당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진다.

풍랑에 휘말린 배에 실려 온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가

“포사 포사(나를 내려놓으라)” 속삭였다고.

아순타성당(나를  잊지 말아요).jpg

포지타노의 산타마리아 아순타 성당


전망대에 서자 햇살이 바다 위에서 부서졌다.

영화 속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바다에서 밀려온 성모의 전설과

떠난 이를 기다리는 노래가

한순간 겹쳐졌다.


나는 지중해를 향해 조용히 노래를 흘려보냈다.


“Partirono le rondini dal mio paese...”


“제비들은 햇살 없는 이 땅을 떠나버렸네”


노래가 끝나자

포르투갈에서 온 두 청년이 다가와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문화란 거창한 제도나 유물이 아니라

스쳐 가는 인연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로마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티레니아 해의 햇살은 등 뒤로 내려앉고,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이미 떠난 제비처럼 빈 둥지에 남겨졌다.


음악과 전설, 그리고 짧은 만남이 엮어낸 이 순간은

여정에 말없이 스며든 한 점 바람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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