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보내는 시간에

Bésame Mucho

by 김환

이 글은 누군가를 보내는 시간에,

사랑이 어떤 태도로 남을 수 있는지를 적은 것이다.


<Bésame Mucho>는 1940년,

멕시코의 여성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콘수엘로 벨라스케스가

열여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만든 곡이다.


‘나를 많이, 자주 입 맞춰 달라’는 제목처럼

이 노래에는 사랑을 미루지 않으려는 마음,

잃기 전에 붙잡고 싶은 충동이 담겨 있다.


노래는 세대를 건너 불리며 살아남았고,

2001년에는 라틴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까지 올랐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고려가요 <가시리>가 떠오른다.

이별을 앞두고도 사랑을 놓지 못하는 마음.

멕시코의 열정과 동양의 절절함이, 이 노래 안에서 엉킨다.


제목만 보면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멕시코 사람들에게 <Bésame Mucho>는

진솔하고도 정직한 사랑의 노래다.


처음엔 나 역시 이 곡 부르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곡의 배경을 알게 되었고,

안드레아 보첼리의 무대를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그 이후로 이 노래는 내게

부부의 사랑을 가장 단순하고도 깊게 말해주는 노래가 되었다.


1949년에는 가수 현인이 번안한 한국어 가사로도 불리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나는 칠순을 맞은 처남에게 건강과 행운을 빌며

이 노래를 불러 랜선으로 전했다.


2023년 가을,

미국 그랜드 서클 여행 중에는

밴쿠버 인문학 모임 회원들 앞에서 다시 불렀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울린 <Bésame Mucho>는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전령사 같았다.


2025년 4월 8일,

나는 이 노래가 처음 세상에 울려 퍼진 곳,

멕시코 시티의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를 찾았다.


토론토에서 리마로 향한 짧은 여정 속에서도,

작곡가의 음악 인생이 시작된 이 자리는 외면할 수 없었다.


멕시코예술궁전(베사메무초).jpg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Palacio de Bellas Artes)


멕시코 시티는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 위에 세워진 도시다.

스페인 식민의 흔적과 현대의 소음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안,

창밖은 혼란스러우면서도 생기가 넘쳤다.


정오의 햇살 아래,

아르 누보 양식의 예술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상 마야나 아즈텍의 유산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유럽의 흔적이 더 짙었다.


광장에는 꽃을 파는 여인이 있었고,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이 있었다.


맞은편에는

베니토 후아레즈를 기리는

반원형 기념비가 서 있었다.


1934년 개관한 이 건물은

멕시코 문화예술의 상징이다.


내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외관만으로도 충분했다.


언젠가 다시 와

그 안의 빛과 호흡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남았다.


벨라스케스(1916~2005)는

이곳에서 열여섯의 나이로

<Bésame Mucho>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녀는

그라나도스의 오페라 《고예스카스》에서

영감을 받았고,


작곡 당시

한 번도 키스를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상상과 음악만으로

삶의 가장 절실한 순간을

그려낸 셈이다.


그 오페라의 아리아는,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여인의 노래였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선율 속에 스며 있다.


마하의 마음은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곧 사랑한다면 그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선율은 추상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 한 장면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한 지인 부부의 마지막 순간이 떠오른다.


우리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내가 여러 해에 걸쳐 박사학위를 마쳤을 때,

그들은 가장 먼저 와

말없이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가 큰 뜻을 품고

세상 한가운데로 나섰다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기러기 시절을 건너던 그 무렵,

그는 정치가의 꿈을 품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떠나간 내 아내를 그리며

작은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그때 우리는

오래 앉아 있었고,

각자의 말을 아껴 두었다.


기쁠 때도,

일이 기울 때도

그렇게 시간을 함께 건넜다.


말기 암으로 요양하던 그는

아내의 무릎에 누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기러기 가족이던 우리에게

그 소식은

계절을 건너 도착했다.


더 전하지 못한 마음은

바닥에 가라앉은 채 남았고,


십수 년이 지났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한켠에 빚처럼 얹혀 있다.


사랑은 이별을 막는 힘이 아니라,

떠나는 순간에도 다정할 수 있는 태도임을

이 노래는 가만히 가르쳐 주었다.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의

뜰을 걷던 중, 문득 나는


생의 끝에서

서로를 돌보던

그 부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Bésame, bésame mucho…”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음절마다

배어 있었다.


도심의 소음이

마지막 프레이즈를 삼킬 즈음,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벨라스케스가

조용히 작별을 건네는 것처럼.


그날

멕시코 시티의 햇살과 선율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바닥에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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