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를 다시 듣는 이유

by 김환

<My Way>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지루하게 들렸다.


그럼에도 그 곡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오십을 넘기고 육십에 접어들 무렵,

그 인상은 조용히 바뀌었다.


이 노래의 화자는

삶을 다시 살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는다.


부족함을 남 탓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그 길을 긍정하며,

죽음마저 감정의 과잉 없이 받아들인다.


그 태도는 단념이 아니라

수용에 가깝다.


그 태도를 곱씹다 보니,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2018년 12월,

나는 암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이후의 시간은

회복이 아니라 조정의 과정이었다.


몸과 마음의 균형

그리고 남은 삶의 속도를

다시 정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반년 동안

은퇴와 해외 이주가 겹쳤고,

삶의 좌표는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었다.


회복은 더뎠고,

불안은 종종 찾아왔다.


그 시기에

자주 떠올린 문장이 있다.


“균형과 변화의 순환에

면역이 된 사람은 없다.”


그렉 브레이든의 말처럼,

나는 거스를 수 없는

전환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틈을 메운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감정을 위로하지 않았다.

다만 흐트러진 숨을

다시 고르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호흡을 배웠다.


외국곡의 서툰 발음이

입안을 맴돌 때마다,

파열음을 내던 성대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숨이 고르게 이어지자,

리듬은 다시

차분해졌다.


성악가도 연주자도 아니지만,

음악은 오래전부터

내 삶의 언어였다.


상실의 순간 곁을 지켰고,

다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등을 밀어주었다.


그즈음, 나는 스스로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

곧 음악 하는 인간이라 여겼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삶이 빠를 때는

일부러 느린 노래를 택하고,


흔들리는 날에는

박자가 분명한 곡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 속에서

고통과 희망,

상실과 회복을 오간다.


병중에도 음악을 놓지 않은 데에는

나의 기벽도 한몫했다.


어르신들의 수연 자리에서

권유를 받거나

때로는 자청해

노래를 불렀다.


서툴렀지만

그 한 곡에는

존경과 감사가 담겼다.


1969년,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며 널리 알려진

<My Way>는

프랑스 노래에서 출발한 곡이다.


시나트라의 대표곡이 되었지만,

정작 그는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반복되는 공연과

자기 확신에 찬 가사는

그에게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My Way>는 오래 살아남았다.


선택과 책임,

후회와 실수를 견디며

자기 삶을 끝까지 끌고 가는

태도의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비판도 있다.


이 노래는

시대착오적인 자기 확신의 노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삶의 끝에서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정서적 균형이다.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아도,

이해받지 못해도,

그날의 말을

마음속에서

다시 고쳐 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


삶의 마지막에서

“이만하면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길이

혼자였든,

함께였든


죽음을 앞두고도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아 통합의 징표일 것이다.


영광과 치욕을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받아들이며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잘 살아왔다.”


<My Way>는

자기 과시의 노래가 아니다.


삶의 끝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백에 가깝다.


이 노래가 다시 떠오른 것은

제주에서 만난

한 사람의 삶 때문이었다.


2024년 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우리는 제주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은퇴 후 홀로 살아가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혼자였지만

고립되어 있지는 않았다.


제주를 떠나기 전날 밤,

나는 그의 고독에

어울릴 법한

<My Way>를 불렀다.


노래가 끝난 뒤

우리는 포옹했고,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람 사이에도

향기가 있다면,

아마 이런 순간일 것이다.


시나트라가

이 노래를 자주 불렀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것은

두 번이었다.


2007년 여름,

그리고 2023년 가을.


베니시안 리조트의

운하 옆을 걸으며

나는 무심코

<My Way>를 흥얼거렸다.


“And now, the end is near."


그 문장은

노래라기보다

하나의 시간처럼

지나갔다.


베니션리조트(마이웨이).jpg

라스베이거스의 베니션 리조트 Venetian Resort


<My Way>는

삶의 파고를 건너온 이들만이

조심스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나는 믿는다.


그날 밤,

제주 바람은 잔잔했다.


노래가 끝난 뒤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우리가

서로의 노래에

귀 기울일 수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숨이 막히지 않게

한 박자 늦추고,

오늘은

이 음까지면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때처럼.


서툴고 불완전 채로도,

지나온 시간에

미소를 건네며

오늘도 그 노래를

낮게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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