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은 의지, El Cóndor Pasa
숨이 먼저 멈칫할 때가 있다.
이유를 찾기도 전에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순간이다.
<El Cóndor Pasa>를 들을 때면
나는 늘
한 박자 늦게 숨을 고른다.
어린 시절,
사이먼과 가펑클의 음반에서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그것은 그저 낯선 언어의 선율이었다.
의미는 알지 못했고,
귀에 남는 것은 멜로디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 음악은 점점
한 번에 들리지 않는 노래가 되었다.
들을 때마다
이전에 지나간 숨들이 겹쳐졌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설명 없이
한 곡의 만가를 떠올리게 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같은 슬픔이었지만,
다른 언어로 울고 있었다
그 슬픔의 방식은 달랐고,
선택 또한 달랐다.
그 패배의 자리에
설명 대신
노래가 놓였다.
기억을 더듬다 보면
나는 안데스에서
슬픔을 넘어선
저항의 노래와 마주한다.
<El Cóndor Pasa>는
말 대신 남겨두고 간 노래였다.
다른 대륙, 다른 시대의 노래들은
같은 방식으로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했다.
모두 패배 이후에 태어났고,
모두 침묵 대신 노래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소리만이 끝까지 남아
공중을 건넜다.
그 노래가 사라지지 않은 데에는
한 사람의 기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다니엘 알로미아 로블레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의 아들이 붙인 가사를 읽으며
이 노래가 무엇을 견뎌왔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 곡은
더 이상 이국의 선율이 아니었다.
패배했으나 꺾이지 않은
의지의 높이였다.
2025년 4월 9일,
나는 리마의 페루국립극장 앞에 서 있었다.
밤새 이동했고,
택시는 길을 헤맸다.
안개비 ‘가루아’가 천천히 걷히자
숨이 조금 트였다.
페루국립극장 Gran Teatro Nacional del Perú
유리와 금속으로 지어진 극장은
현대적이었고 단단해 보였다.
잔디밭에 서 있으니
지금 들리는 소리보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더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전해지지 못한 것들,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
이곳에서는
말보다 먼저
음악이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그 앞 잔디밭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이 도시보다 오래된 선율이었다.
“El cóndor de los Andes despertó…”
안데스의 콘도르가 깨어났다고,
그 노래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어난 콘도르의 그림자가
땅 위에 잠시 머무는 듯했다.
그것은 싸움의 표식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고
하늘을 선택한 존재의 높이처럼 보였다.
그 노래는 나를 다시
대륙 건너의 기억으로 데려갔다.
그 노래가 건넌 하늘 아래, 또 다른 삶이 있었다.
남미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입양된 한 잉카 후손의 삶을
『El Condor』라는 이름으로 기록한 작가가 있다.
그 후손의 삶에는
끊어진 혈통과 언어,
되돌릴 수 없는 이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불렸지만,
처음 대답하던 언어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패배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애나는 콘도르예요.
죽지 않는 생명의 상징이죠.”
그 말 앞에서
나는 이 노래가 왜
끝내 하늘을 향하는지를 이해했다.
2024년 늦여름,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의 그의 정원에서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었다.
초대에 대한 감사로
나는 이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는 춤을 추었고,
음악과 문학, 몸짓이
한 자리에 포개졌다.
그래서 그날 정원은
설명 없이 충만했다.
<El Cóndor Pasa>는
안데스를 떠돌던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케나의 소리는 능선을 따라 멀리 갔고,
다른 언어를 만나며
더 넓은 하늘을 건넜다.
그러나 가장 깊은 울림은
여전히 케추아어에 남아 있었다.
공항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나는 그날,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운전하던 기사는 말없이 듣다가
휴대폰을 들어
내 노래를 조심스레 녹음했다.
내릴 즈음 그는
이름과 번호를 적은 메모를 건네며 말했다.
“다시 리마에 오면, 연락하세요.”
그 짧은 인사는
말보다 먼저 울린
노래가 만든 교감이었다.
땅을 잃고, 말을 빼앗긴 이들의 넋은
이제 음악이 되어 난다.
콘도르는 오늘도
안데스 위를 지난다.
그곳에서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노래가 지나온 자리에
잠시 서 있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