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 아리아가 머문 자리

by 김환

2022년 11월 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길을 마친 뒤 파리로 돌아오는 여정은 빌바오와 산 세바스티안, 바욘으로 이어졌다.


지도에서만 보던 지명을

실제의 풍경과 사람으로 만나는 일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대한 내 관심은

도니체티(1797~ 1848)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시작되었다.


서툰 이탈리아어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의 가사를 외우며,

언젠가 그 무대의 배경이 된 땅을

직접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어떤 확신을 얻기 위해

노래에 매달리고 있었다.


노래는 그렇게

장소에 대한 상상을 키웠다.


도니체티는 이탈리아 베르가모 출신으로,

군 복무 중 완성한 첫 오페라 《볼로냐의 엔리코》를 계기로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오페라 부파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벨칸토 창법의 매력을

유럽 무대에 펼쳤다.


《사랑의 묘약》은

시인이자 대본가 필리체 로마니의 극본에 곡을 붙인

2막 오페라로,


햇살과 풍문이 오가는

19세기 바스크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탈리아 작곡가의 오페라가

이탈리아가 아닌 바스크를 무대로 삼았다는 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클래식 음악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 없는 나에게

오페라는 한동안 낯선 세계였다.


그러나 이를

‘선율로 엮인 인간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자,

음악은 점차 말을 걸어왔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그렇게,

이해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래서 물었다.

하필이면, 왜 바스크였을까.


그 질문이

곧 이번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빌바오는

바스크의 중심 도시 중 하나다.


철광과 항구를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 도시였고,

네르비온강을 따라

산업과 금융이 축적되었다.


한때 침체를 겪었지만,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을 계기로

도시 재생에 성공하며

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다.


바스크는

오랜 시간 스페인 안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지켜온 땅이다.


독재 정권 시절, 이 도시는

정치적 폭력과 무장 투쟁을 겪었고,

2011년 영구 휴전으로

긴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네르비온강의 고요함은,

총성이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이 다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그 이후 이 지역은

자치권을 토대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 왔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장소였다.


11월의 빌바오는

차분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네르비온강을 따라 걸었다.


주비주리 다리를 지나

미술관 앞을 스치듯 지나,

전통 식당들이 모인 거리로 향했다.


시에스타 시간,

문을 연 식당은 많지 않았지만

한 곳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주방 벽에 그려진 벽화 속,

쟁반에 저두(猪頭) 요리를 나르는

종업원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바스크 빌바오(남 몰래 흐르는 눈물).jpg

빌바오의 한 전통식당에 설치된 벽화


이곳에서 음식은

생계가 아니라 문화였다.


바스크에는

‘츠오코’라 불리는

미식가 협회가

1,500개에 이른다.


밤이 되자

다시 미술관으로 향했다.


13미터 높이의

꽃 강아지가

불빛 속에 서 있었다.


강물과 건물, 조형물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 앞에서

잠시 발걸음이 멈췄다.


쇠락을 딛고

재생된 도시의 표정은

과장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과장되지 않은 이 회복의 표정은,

네모리노가 소리 높여 외치지 못하고

혼잣말처럼 흘려보내던 그 아리아와 닮아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네모리노의 노래가

입술에 맴돌았다.


확신 없이 시작된 사랑,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마음.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이 도시의 서사와 닮아 있었다.


상처를 지나

회복으로 나아가는

느린 곡선.


“Una furtiva lagrima

negl’occhi suoi spuntò”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그녀의 두 눈에 고였소”


그날의 바람과 맛, 그리고 노래는

오래 침묵하던 목소리와

쉽게 포기해 왔던 시간들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묘약’이었다.


짧았지만 선명했던 그 경험의 아리아는,

삶을 다시 긍정하게 만드는

조용한 찬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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