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빛나고, 나는 건넜다

E lucevan le stelle

by 김환
어떤 노래는
처음부터 삶의 끝을 이야기한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3막에서

주인공 카바라도시는

처형을 앞두고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빛나고,

그는 지나간 사랑을 떠올린다.


죽음보다 더 또렷해지는 기억.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선명해지는 감정.


<E lucevan le stelle>는

그 순간을 붙잡아 두는 아리아다.



사하라 사막 투어 둘째 날 저녁,
나는 그 노래를 불렀다.




모래 위로 어둠이 내려앉고

별빛이 천천히 번질 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곡이 먼저 나를 불렀다.


푸치니의 음악은

피할 수 없는 지점을 건드린다.


그때의 나에게

아름다움은 위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하게 하는 빛이었다.


나는

삶의 끝을 상상했고,

내 존재의 연약함을

처음으로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라나다에서 시작된 질문은

론다를 지나,

사하라의 모래 위까지

나를 데려왔다.


과거와 현재,

타자와 자아,

예술과 삶이

한 줄로 이어지는 길 위로.


사흘 전,

푸엔테 누에보에 섰을 때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눈을 감자

다리 아래 흐르던 과딜레빈 강처럼

오래 맺혀 있던 갈망이

천천히 풀려 흘러내렸다.


그때 들려온

두 젊은 여행자의 대화가

마음 한편을 건드렸다.


사막의 광활함,

그 안에서 얻는 자유와 고요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보다,

그들이 잠시 멈추던 침묵이

더 오래 남았다.


그날 저녁,

여정의 방향이

조용히 틀어졌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한 여인.

한국에서 직장을 내려놓고

세계를 걷고 있다는 말은

담담했다.


그녀는

다음 날 탕헤르로 건너갈

동행을 찾고 있었다.


잔에 남은 와인이

천천히 흔들렸다.


제안은 반가웠다.

그러나 쉽게 답할 수는 없었다.


익숙함에 머물면서도

낯선 곳을 갈망하던 나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지중해의 끝에서

북아프리카로 건너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1997년 여름,

하이파에서 미뤄졌던 계획 이후로

그 방향은

오래 남아 있었다.


『이방인』,

『연금술사』,

장 그르니에와

김화영의 여행기.


그러나 나는

그 이름들보다 먼저

하나의 방향을 향해

조용히 기울고 있었다.


그 책들을 읽어서가 아니라,

읽고 싶어질 만큼

북아프리카를 동경하고 있었다.


망설임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지중해를 건너는 배를 떠올리면

가슴 어딘가가 먼저 굳었다.


아프리카를 ‘타자’로 남겨두려는

오래된 시선,

혹은 병 이후

발끝이 아직

단단한 바닥을 찾지 못한 감각.


성찰은

늘 답보다 먼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나는 ‘호모 비아토르’가 되기로 했다.



결심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의 선택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러나 거슬림 없이 이어졌다.


무어인-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과 아랍계 무슬림들-은

한때 유럽의 어둠을 밝힌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 빛의 흔적을

직접 마주할 차례였다.


타리파에서

탕헤르까지,

페리로 한 시간 남짓.


아침이 밝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행이 되었다.


메르주가에서 시작된 사하라 투어의 마지막 밤.


모래벌판 위로 별빛이 쏟아지고,

모닥불가에는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았다.


베르베르인들의 북소리와 박수가

밤공기를 흔들었다.

단순한 리듬이 반복되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오래된 기억 속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하늘은 맑게 개었고

은하수는 또렷했다.


사구의 윤곽이 어둠 속에서 살아나고,

모래 위의 바람 자국이

달빛에 희미하게 드러났다.


나는 한동안

그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로 붙들 수 없는 것이

가슴 안쪽에서 천천히 차올랐다.


그 고요 속으로

자코모 푸치니의 아리아가

스며들었다.


와인이 몇 잔 오간 뒤

누군가 노래를 청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르베르의 리듬 위에

내 호흡을 얹고 싶었다.


사하라 사막캠프(별은 빛나건만).jpg

사막 캠프의 밤


로마의 카바라도시 -《토스카》의 비극적 화가-와
그라나다의 마지막 술탄 보아브딜-역사의 끝자락에 선 군주-을
나는 마음속에 불러냈다.




두 남자의 상실과 비애가

사막의 별빛 아래

내 목소리로 되살아났다.


사막은

카바라도시도, 보아브딜도,

그 이름들의 무게를 구분하지 않았다.


별은 침묵했고,

바람은 노래를 실어

내 몸을 천천히 감쌌다.


그 소리는

말보다 먼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스스로 흘러나왔다.


“E lucevan le stelle~

E muoio disperato”


“별들은 빛나고 있었고~

나는 절망 속에서 죽어가네”


노래는

허구와 사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한 점으로 모였다.


박수와 앙코르는

곡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체험에 대한 공명이었다.


마지막으로

아구스틴 라라의 <그라나다>를 불렀다.


먼 길을 떠난 이들의

그리움과 기억이

모래 위에 내려앉듯

노래 속으로 스며들었다.


북소리는 멀어지고,

사막은 다시 고요해졌다.


<별은 빛나건만>은

죽음을 앞둔 인간이

마지막으로 삶을 붙드는 고백처럼 들렸다.


“별은 빛나건만,

사랑은 사라졌네.”


그러나

별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사막의 밤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다만 오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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